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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칼럼] 큰일 났다, 봄이 왔다
尹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인용한 강현국의 시구절
만물이 소생하는 경이로움을 담아낸 ‘숨은 명시’
계엄·탄핵에 멍든 한국 정치의 봄을 기다리며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04 00:02:55
  
▲ 조우석 평론가·전 KBS 이사 
거의 3년 전인 2022년 4월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그때 시 작품 하나를 언급한 바 있다. 시인 강현국의 짧은 시 ‘후렴’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당시는 국민통합위원회 첫 회의였는데, 회의 참석자 한 명이 “큰일 났다. 뭣부터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푸념을 했다. 그때 윤 대통령이 “‘큰일 났다, 봄이 왔다’는 시가 있다. ‘큰일 났다, 겨울이다’보다는 느낌이 좀 있지 않나?”고 말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니 시를 인용한 맥락이 다소 뜬금없었다. 작품을 충분히 이해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봄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 한 구절에서 대통령이 모종의 영감을 받았던 건 분명해 보인다. 시는 어떻게 알게 됐을까.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변양균이 기획예산처 장관일 때 작품 2점을 신정아로부터 구입했던 사실도 수사했었다. 그게 강현국의 시를 알게 된 계기였을 것이다.
 
작품 2점 중 하나가 원로 사진작가 황규태의 현대 사진 ‘큰일 났다, 봄이 왔다’였던 것이다. 흐드러지게 핀 초대형 매화나무를 가지고 그 안에 출렁이는 생명과 관능까지를 담아낸 참 멋진 작품이었다. 강현국의 시 제목은 ‘후렴’이지만, 그 한 구절인 ‘큰일 났다, 봄이 왔다’를 앞세워 사진의 제목으로 삼은 황규태의 감각도 대단했다. 당시 나는 신문기자 신분으로 그 사진 전시회를 관람했던 행운아였기 때문에 앞뒤 맥락을 좀 아는 편이다.
 
 
▲ 생명과 관능이 출렁이는 사진작가 황규태의 대형작품 ‘큰일났다 봄이 왔다’의 부분 그림. 흐드러진 매화꽃 사이로 원숭이가 날고 손수건과 브래지어 등까지 걸려있다. 시인 강현국의 시 ‘후렴’에서 영감을 얻었다. 필자 제공
 
 
어쨌거나 3월 초, 다시 꿈틀대는 봄기운을 느낀다. 좀 빠른 듯하지만 벌써 봄이다. 문제의 시 ‘후렴’을 음미해 보기 딱 좋은 시점이 지금이다. 실은 이 시는 숨어 있는 명시다. 시사(詩史)에 남을 만한 작품은 아니겠지만 봄의 경이를 이만큼 실감나게 표현한 시도 드물다. 우선 쉽다.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을 정도이며, 그런데도 읽는 순간 감전된다.
 
“큰일났다, 봄이 왔다/ 비슬산 가는 길이 꿈틀거린다/ 꿈틀꿈틀 기어가는 논둑 밑에서/ 큰일났다, 봄이 왔다/ 지렁이 굼벵이가 꿈틀거린다/ 정지할 수 없는 어떤 기막힘이 있어/ 색(色) 쓰는 풀꽃 좀 봐/ 벌목정정(代木丁丁) 딱따구리 봐/ 봄이 왔다, 큰일났다/ 가난한 내 사랑도 꿈틀거린다” (시 전문)
 
여기서 낯선 어휘 벌목정정은 큰 나무가 쓰러질 때의 모습과 소리를 뜻하는 의성어이자 의태어란다. 시인은 그걸 슬쩍 집어넣어서 시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요구한다. 실은 용쓰는 굼벵이 지렁이에서 풀과 꽃의 환희, 나무를 찍는 딱따구리 묘사가 시의 전부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큰일났다, 봄이 왔다”를 반복하며 그게 ‘가난한 내 사랑’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진다.
 
그게 묘미다. 다시 소리내 읽어 보시라. 흥미롭게도 풀과 꽃의 피어남을 ‘색 쓰는’으로 표현하며 냉큼 관능미를 불어넣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게 이 작품을 동요 봄노래와는 또 달리 어른들의 성숙한 세계의 이야기로 바꿔 주는 절묘한 장치다. 살면서 무뎌져 온 감성이나 숨겨 온 격정의 한 자락을 툭 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은근히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색 쓰는, 벌목정정의, 과하다 싶은 관능미조차도 다 용납되는 순간이다. 아니 용납이 아니라 기꺼이 나아가야 할 환장의 순간, 환장의 사랑이다. 누구나 그 가운데 서면 하늘과 땅이 온 힘으로 사랑하도록 북돋는 기막힘뿐이다.” 인터넷에 떠 있는 이 시 해설인데, 어떤 평론가의 글보다 낫다. 어쨌거나 이 시를 읽는 순간 우린 시적 쾌감과 함께 그동안 정형된 자아가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어쩌면 작은 ‘문학적 지진’ 같은 것일까.
 
사실 이 시를 읽은 상당수가 인생의 봄을 지나친 중·장년층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오는 봄이 더 귀하고, 이 시도 찌릿한 법이 아닐까. 아시는가.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도 결국은 봄의 노래로 시작한다. 단 그게 너무 디스토피아적 시각으로 무장을 했다면, 강현국의 ‘후렴’은 넉넉한 인생 긍정의 분위기인 점이 다르다.
 
무엇보다 이 시는 창비 백낙청류 민중문학의 때가 묻지 않아서 좋다. 민중문학은 옛소련의 문예 이론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짝퉁이다. 그런 싸구려 민중문학은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 중·고생들 시험문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함민복의 시 ‘긍정적인 밥’이 대표적이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로 시작되는 얼치기 시 말이다. 그와 달리 강현국의 ‘후렴’ 같은 게 좋은 시다.
 
자 이 글의 마무리다. 조선조 이래로 오는 봄을 노래하는 상춘시(賞春詩)는 꽤 많았다. 그와 달리 강현국의 ‘후렴’은 모던한 맛, 즉 동시대성이 좋다. 이쯤에 고백하자. 오늘 이 시를 다시 읽는 건 우리 모두가 계엄과 탄핵에 멍든 한국 정치의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법치와 원칙이 흔들린 이 나라가 다가오는 봄과 함께 부디 바로 서고 멋지게 부활하길 거듭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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