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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계몽주의의 여신 퐁파두르와 샹쉬르마른 성
파리 동쪽 20km에 있는 18세기 프랑스 건축의 보석
퐁파두르 부인과 계몽주의자들이 新사상 논했던 곳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11 06:30:50
▲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1745년 마담 퐁파두르는 공식적인 왕비가 됐다. 이는 하급 귀족 출신의 여성이 일으킨 진정한 궁정 혁명이었다. 악담꾼들은 그녀에 대한 왕의 사랑이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 베팅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빗나갔고 매력과 지성·유쾌함과 자비심이 넘치는 회색빛 눈의 자그마한 그녀는 왕의 마음을 변함없이 사로잡았다. 그녀는 골방에 처박힌 애첩이 아니라 정치적·예술적 영향력을 한껏 펼치는 막후 인물이 됐다.
 
그 비결은 그녀가 왕을 즐겁게 하는 데 매우 능숙했다는 데 있다. 루이 15세는 할아버지인 태양왕의 그늘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역시 프랑스의 예술적 영향력에 기여하고자 하는 야망이 충만했고 이를 세련되고 관찰력이 뛰어난 퐁파두르 부인이 아낌없이 충족시켜 주었다. 그녀는 왕에게 프랑수아 부셰와 같은 예술가를 소개해 줬고, 왕은 부셰에게 인테리어용 태피스트리 디자인을 의뢰해 큰 호평을 받았다.
 
어디 이뿐인가. 그녀는 친오빠인 아벨 푸아송을 왕궁의 건축 감독관으로 임명해 파리의 루이 15세 광장(현 콩코드 광장)을 신고전양식으로 설계하게 했다. 또 그녀는 자신이 직접 건축을 감독한 프랑스 극장(Théâtre Français)을 통해 장식 예술과 건축 분야에서 고풍스러운 스타일로의 복귀를 예고했다.
 
뿐만 아니라 퐁파두르 부인은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도자기의 자존심인 세브르 도자기 공장을 설립했다. 그리고 현재 엘리제궁으로 알려진 파리 에브뢰 궁을 인수해 장식과 가구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한껏 발휘했다. 그녀는 이처럼 루이 15세 시기의 예술을 심오한 경지로 끌어 올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 샹쉬르마른 성의 봄. 프랑스위키피디아
 
하지만 퐁파두르 부인의 위대함은 뭐니 뭐니 해도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을 옹호하고 그들을 지원한 데 있을 것이다. 그녀는 볼테르·몽테스키외·디드로·달랑베르 같은 당대의 위대한 작가와 계몽주의 작가·철학자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계몽주의를 꽃피게 했다. 이들은 세상과 사회를 조직하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종교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하고자 했고, 왕의 권한을 제한할 것을 제안했으며,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중시했다. 이는 절대왕정에 대한 도발이고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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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파두르 부인은 특히 볼테르에게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고, 궁정의 미움을 받는 그를 국왕과 화해시켜 다시 총애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볼테르는 계몽주의 최고의 작가가 될 수도 없었고 프랑스 위인들의 성전인 팡테옹 입성도 어림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파리 의회의 비난에도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 편찬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백과전서’ 첫 두 권의 출판을 장려함으로써 프랑스 백과전서파가 방대한 출판을 진행할 수 있게 첫 단추를 꿰어 주었다. 1748년에는 몽테스키외의 저서 ‘법의 정신’이 출판되었을 때 비판에 직면하자 그를 옹호하며 대변하기도 했다.
 
교양 있고 깨어 있는 정신의 소유자, 세련된 미적 감각을 지닌 그녀는 진정한 계몽주의의 여신이었다. 볼테르는 이런 그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리와 함께했고, 그녀의 능력이 닿는 한 우리를 보호했다.” 그리고 그는 “앙시앵레짐(구제도) 사회에서 퐁파두르는 교육을 통해 특권과 궁정에 앉을 권리를 획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모델이다”고도 했다.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지적인 면모로도 유명한 퐁파두르 부인은 문예 살롱에 단골로 참석하며 거기서 지식인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이들이 모임을 가졌던 곳 중 하나는 파리에서 동쪽으로 20km 지점에 있는 샹쉬르마른 성(Château de Champs-sur-Marne)이었다.
 
18세기 프랑스 건축의 보석인 이 성은 계몽주의 시대의 유흥가처럼 우아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85헥타르(ha)의 목가적인 환경에 자리 잡은 이 매혹적인 성은 수많은 유명 인사를  맞이했다. 볼테르와 같은 문인들과 백과사전 학자들은 1739년부터 1763년까지 이 성을 드나들었고 퐁파두르 부인은 1757년 여름, 이 성을 연간 1만2000파운드에 임대했다. 그녀는 이곳에 2년간 머물면서 다양한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중에는 루이 15세 왕도 있었다.
 
▲ 샹쉬르마른 성의 명예의 방. 퐁파두르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샹쉬르마른 성
 
그러나 이 성은 프랑스혁명 이후 카앵 당베르(Cahen d’Anvers) 백작 부부가 매입하여 유명 인사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이용했다. 이 부부는 여기서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스페인 왕 알폰소 13세·맨발의 댄서 이사도라 던컨 등을 맞이했다. 그러나 카앵 당베르 부부가 타계하자 그 후손은 이 성을 프랑스 정부에 위임하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이곳은 대통령의 거주지가 되었다. 샤를 드골 대통령은 이곳에서 수많은 국가 원수들을 접견했다. 드골 대통령은 임기 말에 이 성을 문화부에 위탁해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 성은 18세기식 인테리어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온갖 종류의 예술품과 그림으로 구성된 다양한 컬렉션 외에도 퐁파두르 시기 열풍을 일으켰던 중국식 살롱이 독특하다. 섬세하게 장식된 이 살롱은 서양인의 눈에 비친 극동의 환상적인 모습을 생생히 담고 있다.
 
성과 인접한 숲 공원 역시 사계절 내내 마법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이 혼합된 이 공원에는 장엄하게 조각된 화단·대칭적인 길·몇 그루의 과일나무, 그리고 무엇보다도 푸른 나무 사이사이에 점점이 박힌 수많은 조각상과 흉상이 있어 우리를 매혹시키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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