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란디제이션(Finlandization)을 흔히 ‘핀란드화’로 번역하지만 ‘핀란드(처럼) 하기’라 해야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핀란드로의 동화를 가리키는 핀란드화, 즉 피니시제이션(Finnicization)과 전혀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핀사람 아닌 소수민족(주로 스웨덴계 핀란드인)이 핀란드 언어·문화 및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게 피니시제이션이라면, 핀란디제이션이란 핀란드가 과거 소련에 취했던 외교 정책을 말한다.
1960년대 서독 학자·언론·정치인들이 ‘파시키비-케코넨 원칙’(1948) 이후의 핀란드·소련 관계를 공격하고자 만든 개념인 핀란디제이션은 차츰 국제정치학 용어가 됐다. 이는 강대국에 이웃한 약소국이 생존을 위해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권리들을 스스로 제한하는 상황을 뜻한다. 핀란드인들에겐 자연히 치욕적이며 불쾌한 표현이다. 십수 년 전 특정 정책 결정에 반대하던 핀란드 정치인이 지나가는 말로 이 단어를 들어 비유했다가 그 사실 하나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났을 만큼 트라우마가 깊다.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핀란드는 러시아혁명과 내전을 거쳐 독립했으나 1930·40년대에 구(舊)소련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른바 ‘겨울전쟁’ ‘계속전쟁’을 통해 당시 인구 400만 명의 핀란드는 한 세대 생존자가 뭉텅 줄었을 정도로 용감하게 싸운 끝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현실적 한계를 인식한 핀란드는 1948년 이래 중립국을 표방하면서도 냉전시대 내내 소련의 기색을 살폈고 ‘소련의 사실상 16번째 공화국’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의제민주주의 국가이건만 핀란드에선 늘 친(親)소련 정치인이 선택됐으며 한국 선거판의 ‘북풍’에 해당할‘모스크바 카드’라는 게 국내 정치를 좌우하곤 했다. 마셜 플랜(미국 지원의 전후 복구)을 거부했고 소련 사회의 부조리를 최대한 모른 척했다. 심지어 소련을 탈출한 정치적 망명자조차 되돌려보내 세계인권선언 위반으로 비판받았다.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듬해인 2023년에야 이뤄진다.
핀란디제이션이 ‘핀란드화’로 우리 사회에 널리 회자된 계기는 평론집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2009)였다. 저자 복거일은 중국의 궁극적 한반도 전략을 핀란디제이션으로 보며 이것이 사회 변질과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만간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듯하던 시절이었다. 일각에선 ‘한국의 핀란드화’를 대외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약소국의 생존전략이라고 긍정 평가한다. 대체로 친중·반미 경향이 그런 이들의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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