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우 간 ‘30일 부분 휴전’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실효성 있는 휴전 관리’ 명분을 내세워 미국의 개입을 더 많이 유도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가 부분적인 휴전안에만 동의한 채 계속 공세를 강화하는 상황을 피하려면 강력한 중재국인 미국이 휴전 감독관으로서 ‘확전 억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1시간가량 통화하며 부분휴전안 찬성 의사를 전했다.
미·우 정상은 부분휴전이 완전한 전쟁종식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각자 고위급 실무 대표단을 꾸려 부분휴전 및 휴전확대에 필요한 기술적 문제를 협상하기로 합의했다. 부분휴전이란 전날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통화에서 러·우가 30일간 에너지·인프라 시설 공격 중단에 합의한 것을 가리킨다. 앞서 미·우 고위 대표단 사이에 추진하기로 한 ‘30일 전면휴전’안은 러시아에 수용되지 못했다. 이에 전황이 유리한 러시아가 에너지 인프라만 제외한 채 공세를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젤렌스키가 부분휴전안을 받아들이며 미국에 요청한 것은 ‘휴전 감독관 역할’이다. 이날 미국·우크라이나가 실무 대표단 협상 준비에 나서기로 한 것은 부분휴전이 잘 이행되는지 관리할 기술적 방안을 함께 협의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측 희망이 일정 부분 받아들여진 셈이다. 실무대표단 협상이 부분휴전뿐 아니라 전면휴전까지 염두에 둔 것이란 점 또한 미국이 휴전관리에 단계별 관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읽힌다. 젤렌스키는 기자회견에서 이날 통화가 “가장 실질적 긍정적인” 대화였다면서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아직 원하냐는 질문엔 “그렇다. 종전 노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러시아 점령지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자포리자 원전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원전을 돌려받는다면 미국이 원전 현대화 및 투자에 참여하는 식으로 소유권을 가질 방안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하자 트럼프는 휴전협상의 일부로 미국이 우크라이나 원전을 소유·관리할 수 있다며 “미국의 전력 및 편의시설 전문 지식에 바탕해 원전 운영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화답했다. 영토협상이 본격화하면 러시아가 원전 소유권을 주장할 공산이 높아 향후 원전 운영에 미국을 끌어들임으로써 반환 문제를 유리하게 끌고가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역시 “미국이 (우크라이나) 원전을 소유하는 게 최선의 현지 인프라 보호 및 지원책”이라고 지적했다. 미·러 양측이 부분휴전시 공격중단 대상을 각각 ‘에너지와 인프라’ ‘에너지 인프라’로 다르게 써서 혼선이 빚어진 것에 레빗 대변인은 “백악관 제공 설명자료를 따르시라. 그게 우리가 이해한 바이며 진실”이라고 명쾌히 정리했다. 미국 측 표현이 에너지·수도·철도·항만 등 모든 기간 시설을 포함한다면, 러시아 측 표현으론 전기 등 에너지 인프라만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추후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젤렌스키 대통령과 아주 좋은 통화를 막 마쳤다. 러·우 측 요청과 요구사항을 조정하기 위해 어제(18일)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를 바탕으로 이뤄졌다”며 평화협상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 중”임을 강조했다. 트럼프가 젤렌스키와의 통화에서 전날 푸틴과 나눈 대화 내용과 주요 논의 사항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루비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언론에 배포한 설명자료에서도 전해졌다.
이에 따르면 미·우 정상 통화에서 “양국은 전쟁종식을 위해 계속 협력할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아래 영구적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러·우 간 격전지인 쿠르스크(러시아 영토) 상황을 검토했으며 전황이 심각해짐에 따라 양측 국방 담당자 간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이 사실을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짚었다. 군사지원·정보공유 중단을 내세운 푸틴의 요구를 거부한 셈으로 트럼프가 푸틴에 일방적으로 이끌리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우 정상은 통화에서 에너지 분야 관련 부분휴전에도 합의하면서 이것이 완전한 전쟁종식과 안보보장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뜻을 같이했다. 젤렌스키의 완전한 휴전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루비오 장관과 왈츠 보좌관이 밝혔다. 또한 젤렌스키가 추가 방공시스템, 특히 패트리엇 미사일 시스템을 요청하자 트럼프는 유럽에서 이용 가능한 시스템을 찾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고 루비오 장관 등이 전했다. 트럼프는 전쟁 중 러시아에 납치되거나 실종된 어린이들에 대해서도 물었으며 이들 어린이의 귀가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러시아 측에선 고아 상태에 놓인 어린이들을 보호해 왔다는 주장이다.
한편 휴전협정을 위한 미·러 양측 실무팀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나 에너지 분야 부분휴전을 흑해 휴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레빗 대변인은 “대통령 협상팀과 국가안보 전문가 팀이 이번주 후반 사우디로 가서 세부사항을 계속 검토해 해결할 것”이라며 “지금처럼 평화에 가까워진 적은 없었다. 오로지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광물협정 관련 질문엔 “광물협정을 넘어서서 평화협정에 집중하고 있다”는 대답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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