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오랜 기간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체는 다름 아닌 해충의 대명사 ‘바퀴벌레’이다. 무려 3억5000만 년 전 ‘고생대 석탄기’ 시대에 나타난 후 외형의 변화도 거의 없이 그냥 그때그때 환경 변화에 완벽히 적응하면서 생존해 왔다.
현재는 약 4000여 종의 바퀴벌레가 있으며 이 중 약 1% 수준인 30여 종류가 인간의 거주지, 즉 집집마다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문제로 다가온다.
바퀴벌레는 각종 박테리아·바이러스·기생충을 옮기고 퍼뜨리고 천식 및 기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알레르겐’까지 체내에서 생성하는 등 그 ‘위생적 불결함’으로 인간의 삶에 가장 크게 위협을 주는 해충으로 각인되었다.
3억5000만 년을 살아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생존력에도 불구하고 그 외형과 불결함은 혐오감 1순위에 등재되기에 충분했다. 오죽하면 ‘바퀴벌레 같은 인간’이란 욕까지 있을까.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빈틈만 생기면 슬금슬금 기어 나와 우리의 삶을 망치는 악의 세력들을 바퀴벌레로 칭하게 된 것도 그 혐오스러움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바퀴벌레 같은 인간’, 아니 ‘바퀴벌레만도 못한 인간’이 넘쳐나고 있어 한숨만 나온다.
약으로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체내 기생충과 달리 인간의 체내 밖 지근거리에서 언제나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바퀴벌레란 존재는 쉽게 구제(驅除)할 수도 없다. 그러나 역(逆)으로 수많은 바퀴벌레들을 인간에게 유익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달 미얀마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강진으로 수천 명의 사망자·실종자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싱가포르 정부는 실종자 수색을 돕기 위해 ‘사이보그 바퀴벌레’ 10마리를 미얀마에 파견했다. 사이보그 바퀴벌레란 바퀴벌레의 신경계통을 전극으로 통제하여 조종하는 사람이 의도하는 대로 방향을 바꾸며 이동시킬 수 있는, 살아 있는 바퀴벌레를 이용한 사이보그를 말한다. ‘사이보그’란 로봇과 달리 살아 있는 생명체에 전자 및 기계 장치를 연결하여 그 본래 기능을 복원 및 유지하거나 강화시키는 형태를 말하며 인공지능 로봇과는 다른 것이다.
이번에 재난 현장에 파견된 바퀴벌레들은 싱가포르 내무부 산하 ‘인공지능(AI) 연구소 HTX’와 ‘난양 이공대학, 클라이엔지니어링솔루션’이 공동 개발한 제품으로 바퀴벌레 몸통에 ‘카메라와 센서’를 부착해 실종자의 흔적을 찾는 데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미 구조인력 80명·구조견 4마리를 보냈으며 구조용 사이보그 바퀴벌레 10마리를 추가로 보냈다.
이러한 조종 가능한 바퀴벌레는 이번에 처음 개발된 것이 아니다. 이미 10여 년 전 생체 장난감으로 시판된 적도 있다. 그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바퀴벌레의 신경에 전극을 꽂아 전기 자극으로 이동 방향성을 조종하는 것이다. 바퀴벌레 장난감이 출시될 당시에도 해충이긴 하나 살아있는 생명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많은 환경단체들의 비난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전기 자극으로 행동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은 바퀴벌레뿐이 아니다. ‘갈바닉 자극(GVS·Galvanic Vestibular Stimulation)’에 의한 전정 신경정보의 선형적 이동 기술을 이용할 경우 장비를 장착한 인간도 걸어가는 방향을 바꾸는 등 행위를 제어할 수 있다.
바퀴벌레는 놀랍게도 진동을 감지하는 ‘초정밀 감각기관’도 가지고 있어 ‘원자 단위’의 진동을 느낄 수 있으며 이 감각기관은 미세한 털로 구성되어 있어 진동에 의해 털이 눕는 쪽으로 이동한다. 사실 인간은 아직도 이 작은 바퀴벌레가 가진 센서나 기관의 효율성·생존 능력을 가진 로봇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거의 혁명적으로 보일 만큼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반도체가 이처럼 발전한 시대에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가 인공지능(AI)·생명공학·로봇공학 등 어느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와 공무원들이 주도해서 될 일도 아니다. 정부는 오로지 기술개발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를 제거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공지능을 개발한다는 것, 로봇을 개발한다는 것, 그 모든 기술의 진보 위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류애’와 ‘철학’이다. 물론 이는 정치·사회·교육 등 다른 모든 분야에도 해당되는 명제이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그 모든 것 위에는 반드시 철학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철학 부재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세계와 사회를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사이보그 바퀴벌레처럼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오로지 해충으로서의 바퀴벌레와 같은 인간들에게 지배당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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