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상반되는 두 인물이 있다. 한 사람은 때와 상대를 가리지 않는 왕도(王道)만을 좇다가 패가망신했고, 한 사람은 왕도와 패도(霸道) 모두를 추구한 끝에 성군의 반열에 오른다.
송(宋)나라는 춘추시대 주(周)나라의 제후국이었다. 송나라는 주나라에게 멸망한 상(商)나라의 계승국이었다. 임금이 된 양공(襄公)은 상나라의 영광을 재현하려 했다. 출발은 좋았다. 패자(霸者)였던 제(齊)나라에서 왕좌의 게임이 벌어지자 양공은 출병했다. 그의 도움으로 효공(孝公)이 된 제나라 공자 소(昭)는 양공을 은인으로 받들었다.
양공은 초(楚)나라마저 굴복시켜 자신이 패자가 되려 했다. 그는 초나라와 긴밀했던 정(鄭)나라를 쳤다. 초나라는 정나라 구원을 위해 파병했다. 송군(宋軍)·초군(楚軍)은 홍수(泓水)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군세는 초군이 훨씬 컸다. 양공은 선수를 쳐 요지를 점유함으로써 우위를 잡았다. 초군은 송군을 공격하기 위해 도강했다. 예나 지금이나 강을 건너는 군대는 매우 취약하다. 이미 강을 건넌 부대와 강을 건너는 중인 부대와 강을 건너려는 부대 셋으로 쪼개져 각개 격파된다. 오자병법(吳子兵法)은 “도하 중인 적은 망설이지 말고 쳐라”고 못박고 있다.
그런데 양공은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다. “자고로 군자는 상대 약점을 노리지 않는다”며 전군 대기를 명한 것이었다. 초군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도강했지만 전열이 흐트러져 여전히 취약했다. 재상 목이(目夷)는 “지금이라도 쳐라”고 닦달했다. 양공은 “이런 상놈”이라 꾸짖으며 물리쳤다. 초군이 기어코 진세를 취하자 양공은 그제야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정정당당히 싸운 양공은 정정당당히 져서 송양지인(宋襄之仁·쓸데없는 명분으로 인한 허망한 결과) 고사의 주인공이 됐다.
마냥 인의로울 것만 같은 조선의 세종대왕(世宗大王)은 때와 상대를 가릴 줄 알았다. 그의 치세 당시 한반도 북부는 여진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여진족의 추장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는 명(明)나라 벼슬을 받는 등 득의양양했다. 어느 날 그가 이웃 부족 습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세종은 ‘상중(喪中)인 적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유교적 가르침에 따르는 대신 좌우에 명했다. “지금이 기회다, 쳐라.” 세종의 이러한 결단으로 한반도는 현재의 국경선을 확립하게 된다.
바야흐로 대선의 시간이다. 모진 각오로 임하는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 일각에선 여전히 ‘셀카’를 연상케 하는 한가한 목소리가 나온다.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송양지인의 놀림감이 돼선 안 된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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