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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작원 김동식 회고록-죽기 위해 살아야 하는 운명
[평양에서 왔습니다] <38> 공작조장과 불화… 간부 체험 앞두고 결국 결별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16 06:25:30
▲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결국 해체된 공작조
 
그런 와중에 나와 박철만 사이에 끝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어느 날 초대소 요리사가 우연히 발견한 박철만의 수첩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수첩에는 공작조가 편성된 후 내가 지도원들에 대한 불평불만을 표출했던 내용들이 적혀 있었는데, 불평불만 또는 비판했던 내용들이 날짜·시간 별로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그는 다른 이유에서 적어 놓았다고 할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 볼 때는 향후 우리 사이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경우 증거로 제시하기 위해 면밀하게 적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문득 화가 났고 한편으로는 생사를 함께할 조장으로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유치하다는 생각까지 들어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수첩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조장 선생 허락을 받지 않고 그것을 본 것에 대해서는 우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수첩을 보니 내가 이때까지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수첩에 적어 놨던데, 왜 그런 것이냐?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직접 내게 지적하면 될 것인데 시시하게 그게 뭐냐? 그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조장을 믿고 같이 공작을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하는 일은 서로 신뢰가 있어야 함께 할 수 있는 일인데 이런 식이라면 신뢰가 쌓이기는커녕 의심만 커질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같이 일하기 힘들지 않겠냐? 어디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 봐라.”
 
그러자 그는 수첩을 몰래 보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화를 낼 뿐 다른 설명은 없었다. 그 일 이후 박철만과의 관계는 더욱 벌어졌다. 사실 아침에 눈을 뜬 후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 24시간 얼굴을 서로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초대소에서의 공작조 생활은 부부가 같이 생활하는 시간보다도 더 길다고들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윗사람이 말을 안 하면 아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윗사람을 대하기가 어려워지고 서먹서먹해진다. 조장과 조원과의 관계 역시 상급자인 조장의 컨디션과 태도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좌우된다. 사실 박철만을 만난 이후 그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와 대화를 나눈 적은 불과 몇 차례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참을 만했는데 나이도 어리고 조원인 나로서는 그에게 계속해서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싫어져 나중에는 아예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둘 사이에 대화가 거의 없이 지나는 날이 많아지며 나는 하루하루 그를 마주하기가 더 고달파졌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정도는 시험을 보거나 글을 써서 발표하기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수준을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훈련 결과는 바로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 수준이 금방 드러난다. 나는 어떤 훈련을 하든 좋은 결과를 받았던 반면, 박철만은 매번 도중에 그만두거나 도저히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 훈련을 중단 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장인 그는 아마도 이런 부분들이 콤플렉스가 된 모양이었다.
 
간부 현실 체험이 임박하면서 박철만이 나와 같은 공작조에서 생활하지 못하겠다고 먼저 담당 지도원에게 의견을 제기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담당 과에서는 그의 심장병이 문제가 되어 그를 제대(해임)시키는 문제가 거론되고 있었는데, 결국 공작조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같은 공작조에서 생활하던 나와 박철만은 간부 현실 체험을 앞두고 갈라지게 되었다.
 
 
▲ 북한 청년단체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창립 70주년 기념일을 준비하기 위한 평양시 청년 학생의 궐기 모임이 2015년 7월14일 청년공원 야외극장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대남 공작을 하려면 간부도 해 봐야 한다
 
간부 현실 체험 역시 노동 단련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초에 제시한 김정일의 ‘새 세대 청년 공작원 및 지도핵심 육성’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실천 방안의 하나로 새로 도입된 공작원 교육과정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중요한 테스트 과정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 1980년대 초부터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새 세대 청년들이 대남 공작원 집단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면서 곧바로 공작원으로 소환되었으므로 같은 또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접촉해 볼 기회가 적었고, 따라서 대인관계에 있어서 서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포섭 공작 및 지하당 조직 구축을 능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계층의 수많은 사람을 상대로 대인관계도 가져 보고 끊임없이 접촉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경험을 습득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간부 현실 체험이다.
 
공작원들은 간부 현실 체험 과정에서 여러 계층의 수많은 사람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대인관계를 형성해 심화시키며 이를 통해 앞으로 하게 될 대상 포섭 요령을 습득한다. 또한 군중 앞에서 강연도 하고 연설도 해 봄으로써 군중 담력을 키우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에서 간부로 있다가 공작원으로 소환된 대상들은 이 훈련을 따로 하지 않고, 사회에서의 간부 경력이 없는 공작원들을 위주로 간부 현실 체험을 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먼저 공작원의 나이와 학력·경력 및 공작원 활동 기간·공작 경험 등을 감안해 간부 현실 체험을 할 업체나 직급을 결정하도록 했다. 보통 공장이나 기관·기업소 또는 군(郡)급이나 도(道)급 기관의 사로청 간부 등의 당 간부 직책을 맡아 수행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는데, 기간은 6개월이 대부분이고 특별한 경우 1년간 간부 현실 체험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공작원들이 간부 현실 체험을 할 때 임명받는 직책은 대체로 공장·기업소 사로청위원장이나 초급당위원회 비서, 그리고 시·군(구역)당위원회 부장·부부장 등이다.
 
건설사업소 청년동맹 간부가 되다
 
나는 박철만과 헤어지기 전에 초대소에 같이 있으면서 간부 현실 체험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내가 간부 현실 체험을 위해 파견될 곳은 평안남도 평성시에 있는 평성 도시건설 사업소였다. 당시 나는 나이가 2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청년조직인 사로청(현재 청년동맹) 위원장의 직급을 받았다.
 
간부 현실 체험에 임하기 전에 근로단체 간부 양성 기관인 평양 금성정치대학 졸업을 앞두고 실습을 위해 파견된 졸업생으로 신분을 위장하기로 했다. 금성정치대학은 평양시 동대원 구역에 위치한 4년제 대학으로 청년동맹·직맹 등 근로단체라고 일컫는 노동당의 외곽 정치조직 간부들을 키워 내는 정치 대학이다. 이 대학을 졸업하면 청년동맹이나 직업총동맹·농근맹 등 정치 조직의 간부로 임명되며 나이가 들면 당 간부로 승진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금성정치대학 졸업생으로 위장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청년동맹 업무에 대해서 모르면 안 되었고, 또 그것이 현실 체험에서 해야 할 업무였으므로 금성정치대학에서 사용하는 교재들을 가져다가 독학으로 해당 업무와 관련된 내용들을 열심히 공부했다. 이러한 준비를 마치고 그해 10월 초 평안남도 평성시로 이동해 평안남도 당위원회에서 관리·운영하는 도당(道黨) 초대소에서 숙식하면서 간부 현실 체험을 하게 되었다.
 
평남도당 초대소에서 간부 현실 체험
 
평남도당 초대소는 도당 청사로부터 직선거리로 150m가량 떨어진 곳 있는 2층 양옥집이었다. 1층에는 식사할 수 있는 홀과 주방, 요리사가 생활하는 침실이 있고 2층에 공작원들이 생활하는 침실·서재·응접실 등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 약 6개월간 체류하면서 간부 현실 체험을 했다.
 
도당 초대소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담당 지도원과 함께 평성시당 조직비서에게 찾아가 인사했다. 인사가 끝난 다음 평성시당 조직비서는 다시 평성시 사로청위원장을 불러 그에게 나를 소개하며 “중앙당에서 내려온 사람인데, 평성 도시건설 사업소 사로청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일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신분증도 발급해 주고 잘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그 후 평성시 사로청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가서 평성 도시건설 사업소 사로청위원장의 직함으로 된 신분을 발급받았다. 그런 다음 평성 도시건설 사업소 사로청위원장을 불러 인사를 시켰다. 당시 평성 도시건설 사업소 사로청위원장은 평성 제1사범대학을 졸업한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는데, 그의 부친은 평안남도 직업총동맹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바로 업무가 시작되었다. 당시 내가 우선적으로 한 것은 같이 일할 대상들을 만나 그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같이 일할 대상들이란 하부 조직, 즉 직장과 작업반의 사로청 조직을 책임진 사로청 간부들이었다.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업무를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고, 또 그들이 앞으로 나와 같이 업무를 해 나가야 할 당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한 사람씩 따로 만나기도 하고 집체적으로도 만나면서 각각의 성격과 취미·경력 그리고 조직의 문제점 등을 파악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문서를 통해 업무 내용을 파악하는 작업을 병행했다. 그런데 사실 문서 정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그것으로는 내가 알고 싶은 전체적인 업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당시 평성 도시건설 사업소 사로청 조직의 전반적인 현황과 걸려 있는 문제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앞으로 현실 체험 기간에 중점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설정할 수 있었다.
 
 
▲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2021년 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 언젠가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엄마가 제게 펼쳐서 보여준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 한 장의 종이를 보고 엄청나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 근무하셨던 곳에서 사격훈련을 갔을 때 아버지가 직접 10점을 쏜 바로 그 표적지였고, 엄마가 그것을 잘 보관하고 계셨더군요.
 
가끔이지만 아버지의 사격 실력이나 공작원 훈련 등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실 때마다 아버지 말이 거짓말일 것이라는 댓글들이 어김없이 달리던데, 이럴 때마다 사실 저는 집에 있는 표적지를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유독 심하게 반발하거나 심지어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아버지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셨나요?
 
아버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부모가 다르고 태어나서 자란 조건과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생각 또한 다를 수밖에 없어.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난 형제도 모두 생각이 다르니까…. 따라서 각자가 갖고 있는 능력이나 실력 또한 마찬가지야. 어떤 사람들은 운동에 소질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음악에 소질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수학을 잘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정말 군인 체질을 타고 나는 경우도 있어. 이렇게 모든 사람은 자기가 갖고 있는 달란트가 다른 거야.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 반발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못났거나 자존심·자존감이 없는 사람이거나 자신의 실력·능력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내 실력이나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나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 나에게 반발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그가 누구든 내 실력이나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반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맞서서 싸우거나 논쟁해 봤자 시간과 정력만 낭비하는 셈이니까 굳이 맞서려고 하지 않고 무시하고 넘어가는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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