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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왔습니다] <45> 공작원 세대교체… 충원 위해 현지인 납치도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29 06:25:00
공작원 보충 위한 무작위 납치
다른 한편으로는 남로당이나 빨치산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납치하여 공작원 교육 및 훈련을 이수하도록 한 다음 다시 남파하는 방법도 동원됐다.
 
1970년대 중·후반 과거 남로당 관계자들이나 빨치산 자녀들이 행방불명되고 수많은 남한 어선이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귀환하면서 일부 어부들이 북한에 억류된 채 돌아오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당시 납북되었던 어부들은 실제로 공작 교육과 훈련을 받은 다음 남파되었다가 검거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납북되었다가 귀환한 이재근 씨 같은 납북 어부가 본인이 북한에 있을 때 공작원 양성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증언한 것을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현지인 납치해 적구화 교육 강사로 
 
중요한 것은 1970년대에 발생한 고등학생 납치나 일본인 납치 등도 바로 이러한 북한의 공작원 세대교체에 따른 대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납치당한 현지인들이 남파 간첩 또는 대남 침투를 위한 공작원 적구화 교육에 강사로 동원된 아픈 역사다.
내가 잘 아는 김관섭 연락부 지도원은 1970년대에 고교생 납치 등에 직접 가담했던 인물로, 1995년 당시 대외연락부 간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1970년대에 침투 요원으로 활동할 당시 현지인 납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화국영웅 칭호와 함께 김일성의 명함이 새겨진 스위스제 고급 금시계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당시 김정일의 지시를 직접 받고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에 대한 납치를 상부에서 주도한 인물이 대남공작부서의 하나인 중앙당 조사부의 부장 임호군과 부부장 이완기·강해룡 같은 인물이다. 이들은 한국의 유명한 영화감독 신상옥과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최은희 등을 납치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당시 이런저런 이유로 북한으로 간 사람들 가운데 내가 아는 분들을 소개하려 한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밝혀 둘 것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신상을 밝힐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모르는 건 알려고 하지 마라”
 
대남공작부서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불문율인 사항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신상이나 나와 관계없는 업무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해서 물어봐서도 안 되고 절대로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소개하려고 하는 남한 출신의 적구화 교육 강사들의 신상에 대해 정확하게 밝힐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불문율과도 같은 원칙 때문이다. 사실상 그들의 본명·납북 경위 등은 보안상 비밀에 해당되기 때문에 알고 있으면서 얘기하지 않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신상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작원은 보안이 첫째… 신상 공개하지 않고 가명 사용
 
공작원들이 늘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비밀, 즉 보안이다. 그래서 대남공작부서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가명부터 부여해 준 다음 비밀을 어떻게 준수할 것이냐에 대한 비밀 교육(보안 교육)을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사항이 본인의 신상이나 다른 업무에 대해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도 말고, 다른 사람의 신상 등 업무와 직접 관계없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물어보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남공작부서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받는 교육이며 모두가 알고 있는 기초 상식이다.
따라서 수년 동안 같은 공작조에서 조장과 조원으로 생활하는 공작원들의 경우에도 본인이 자진해서 신상을 얘기하면 몰라도 절대로 먼저 다른 공작원의 신상을 물어보지 않는다. 만일 다른 공작원에게 본명이 무엇이며 고향이 어디냐는 등의 개인 신상에 대해 물어볼 경우 오히려 물어보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물어보더라도 질문을 받은 공작원은 본인의 정확한 신분을 절대로 얘기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상례이다.
이러한 내부의 규정 때문에 나 역시 적구화 교육 당시 강사들에게 신상을 물어볼 수 없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일부 강사들의 원래 성씨나 이름까지 여기에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히도 그들이 직접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거나, 남한에 검거된 후 공개적인 출판물에 소개된 정보를 보고 기억해 냈던 것임을 미리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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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후반 전북 군산 선유도에서 고교생이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된 사건이 있었다. 통일부는 2024년 5월24일 군산 선유도에서 이들의 송환을 기원하는 송환기원비 제막식을 갖고 납북자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남한 출신 적구화 교육 강사는 대부분 자진 월북자
적구화 교육을 담당한 남한 출신 강사들은 그들의 생김새나 출신 지역이 다양한 것만큼이나 입북하게 된 경위도 다양하다. 하지만 휴전선이나 해상 또는 제3국을 거쳐 자진 월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남한 사회 전반에 대한 학습을 책임지고 공작원들을 지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강사들 가운데는 고기잡이 중 NLL(북방한계선)을 넘거나 공해상에서 조업 중 북측 경비정에 나포된 뒤 납북되어 지금까지 북한에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한 남한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여름에 해안이나 섬으로 피서갔다가 납치된 고등학생들도 있다.
그들 가운데 ‘한’씨 성을 가진 부산 출신 강사가 있었다. 그는 1970년대까지 대남공작 일선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다. 1980년대 말 그의 나이가 50대 후반 정도였으니 아마도 6·25를 전후해 월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구화 교육 당시 그는 부산의 지리와 문화 등 지역적인 특성에 대한 교육을 담당했다.
경상도 말 강사를 했던 ‘최 선생’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전직 남파 공작원이었다. 나와 함께 1차로 남한에 침투했던 권중현에게 경상도 말을 가르쳤던 강사가 바로 최 선생이다.
언젠가 권중현으로부터 최 선생의 원래 성씨가 ‘최’씨가 아니고 ‘권’씨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북한으로 들어가 대남 공작원이 된 좌익 2세
 
최 선생은 항상 자신의 고향인 포항을 자랑하며 여름철에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았던 기억을 되새기곤 했다. 부친이 남로당과 빨치산에 참여했으나 희생되었다고 한다. 남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를 북한으로 들여보낸 것은 부친의 동료들이라고 한다. 그에게 대를 이어 남조선혁명을 하라며 의도적으로 월북시킨 것이다. 원래 1~2년 정도 북한에서 공작 교육 및 훈련을 받도록 한 다음 다시 남한에 침투시켜  북한이 부여한 공작 임무를 수행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이와 같은 계획이 실행에 옮겨져 최 선생이 실제로 남한에 침투한 적도 있다. 한번은 그가 남파되었을 때 고향인 포항에 가서 어머니와 누나가 사는 모습을 먼 곳에서 보기만 하고 돌아왔다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북한에서 공작원 교육이 끝난 후 적어도 한 번 이상 남파된 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한번은 해상을 통해 남한으로 침투하던 중 엄청난 파도를 만나 북한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생겼는데, 그때 그는 배에서 넘어져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고 한다. 그 후유증으로 대남 침투는 물론 공작원 활동을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되어 결국 후배들을 가르치는 적구화 교육 강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서울말 강사는 프랑스 유학파 서울 샌님
서울말(표준어) 교육을 전담했던 박 선생과 하 선생은 모두 서울 사람들이었다. 이 가운데 박 선생은 나를 적구화 교육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직접 담당해서 가르친 분이다. 박 선생은 전형적인 서울 토박이로서 적구화 교육 강사들 중에서도 가장 학력이 높았다. 당시 그는 프랑스어는 물론 영어·독일어·스페인어·일어 등 5개 국어를 거의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정말 천재적인 사람이었다. 성격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겸손한 데다 아는 것도 많아 ‘박사’로 불리기도 했다. 전형적인 서울 사람, 서울 샌님이었다.
그는 서울 용산고등학교를 나와 한국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에 입학해 졸업했으며 군에 입대해서는 공군본부에서 프랑스어 통역 장교로 근무했다고 한다. 군 제대 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 있는 종합대학에서 유학하다가 1970년대 말에 월북했다. 4·19때 외국어대학 1학년이었다고 했으니까 아마도 1960년에 입학한 것으로 보이며 1940년이나 1941년생쯤 될 것이다. 그가 어떤 이유로 월북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른다.
 
5개 국어 ‘술술’… 미술·역사에도 정통했던 박 선생
 
그러나 그의 원래 이름이 ‘오태식’이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 정부 기관에 근무할 때 외국어대학 출신 동료가 가지고 있던 외국어대학 총동창회 명부를 보니 60학번 가운데 ‘오태식’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아마도 60학번 오태식이 박 선생일 것이다.
박 선생은 당시 공작원들의 적구화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그 전에는 평양에 있는 조선 중앙역사박물관과 미술박물관에 가서 자료를 정리하고 학자들의 연구를 돕는 자문위원 활동도 활발히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박물관에 갔을 때 그곳 연구사들과 해설 강사들이 그를 알아보고 친절하게 대해 주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미술박물관에서 신사임당의 가지 그림 등을 보면서 신나게 설명해 주던 그의 해맑은 미소가 잊혀 지지 않는다.
수심에 찬 모습, 과묵했던 하선생은 납북 어부 출신
 
서울말을 가르치는 강사 중에는 ‘하 선생’이라 불리는 이도 있었는데, 그는 당시 30대 후반으로 키가 175cm 정도로 큰 편이었다.
내 생각에는 언행이나 지식 정도로 보아 대학은 졸업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그에게서 서울말을 배우면서 친해졌다. 그는 말이 별로 없는 성격이었고 항상 수심에 찬 모습으로 자기 신상에 대해 거의 얘기하지 않아 그의 고향이 정말 서울인지 아니면 경기도인지조차 모른다. 다만 서울말을 가르쳤기 때문에 서울 사람 또는 경기도나 인천 출신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남한에서 살면서 2005년 2월 2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오대양 61·62호 선원 24명과 휘영37호 선원 12명 등 납북 어부 36명이 묘향산 관광을 기념해 찍은 사진을 보다가 그들 가운데 있는 하 선생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가 납북 어부 출신이라는 사실을 중앙일보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묘향산에 가서 사진을 찍었을 때가 1970년대 초반이고 내가 그를 만난 시점이 1987년이었으므로 10년 이상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모습은 여전했다.
▲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2021년 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 대한민국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경제 활동을 해서 모은 돈을 저축을 하든 투자하든 내가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어요. 말하자면 저축이나 부동산  매입 등의 방법으로 개인이 재산을 모으거나 증식하는 게 자유롭지요.
아버지께는 어이없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사적 소유가 허용되지 않는 북한에서도 일을 해서 번 돈을 개인이 전부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해요.
아버지 : 북한도 직장이나 회사에서 일을 해서 번 돈은 전부 개인이 소유할 수 있어. 다만, 북한은 사적 소유가 허용되지 않고 모든 것이 국가 소유로 되어 있는 사회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토지와 건물·주택을 비롯한 부동산과 철도와 전기·기계 등 중요 산업 및 생산 수단은 일체 개인이 소유할 수 없어.
어떤 사람들은 북한에서도 돈을 주고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사고팔고 한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이런 말은 북한 체제를 정확히 모르고 하는 말이야.
앞서 얘기했듯이 북한은 사적 소유가 일체 허용되지 않고 모든 것은 국가가 소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사고파는 것은 아파트나 주택의 소유권이 아니라 ‘거주권’ 또는 ‘이용권’이라고 보면 돼.
북한 주민들이 소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건 텃밭에서 생산한 소량의 농산물, 일하고 받은 돈, 집에서 기르는 닭이나 토끼·염소·양 같은 동물, 그리고 자기 돈으로 산 가구와 생활필수품 등이라고 보면 정확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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