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2월24일 독일 뮌헨의 한 아파트에서 52세의 여성이 골(뼈)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프롤라인 닥터’(Fräulein Doktor·여성 박사)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녀는 렌뮐러·크리스티안센 등의 가명을 사용했다. 그녀의 본명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 등 연합군이 입수한 독일의 기밀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그녀는 엘스베트 슈라그뮐러(Elsbeth Schragmüller)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설적인 스파이 양성가였다.
슈라그뮐러는 1887년 8월7일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슐뤼셀부르크(현 러시아 영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로이센의 육군 장교였다. 어린 시절 그녀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이후 1909∼14년 독일 알베르트 루트비히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해 독일에서 최초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여성이 되었다. 졸업 후 그녀는 베를린의 레테페어라인에서 시민교육 강사로 일했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평소에 애국심이 남달랐던 그녀는 군에 지원했고, 훈련을 마치고 최전선에서 전투하기 위해 보병을 지원했으나 독일 점령지인 벨기에 브뤼셀의 군사우편물 검열사무소로 배치되었다. 상부에서 그녀가 여성이라 전투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했고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기 때문이다.
따분한 편지 검열 작업 중 그녀는 특정 편지들이 사전에 약정된 암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그녀는 암호화된 군사기밀을 적발하고 해독하는 기법을 개발해 전파했다.
이 공로로 그녀는 독일 참모본부 정보부대인 제3b대대에 전출되어 근무했고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아 1915년 안트베르펜 전쟁 정보부대의 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곳은 군사정보원, 즉 스파이를 양성하는 정보교육 기관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기존의 스파이 교육 과정을 전면 개혁해 강도 높은 새로운 교육 과정을 운영했다. 그리고 그 결과 최정예 스파이가 양성되었다.
전설의 여(女)스파이로 불리는 ‘마타하리’(본지 스파이세계 제16회, 2024.4.23.일자)도 그녀에게 양성되었다. 정보요원들과 훈련생들 사이에서 슈라그뮐러는 ‘여박사님’ ‘호랑이의 눈’으로 불렸다. 그녀는 때로는 늙은 청소부로 위장하는가 하면 여러 개의 위장 주소에 거주하고 있어 실체를 밝히기가 어려웠다. 영국 정보기관에서도 ‘여박사’의 정체를 알기 위해 잠입을 시도했으나 이러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1918년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독일로 돌아왔고 중위 계급과 함께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그녀는 대학에 복귀해 프라이부르크 대학 최초의 여성 조교수가 되었다. 몇 년 후 그녀는 가족과 함께 뮌헨으로 이주하여 뮌헨 대학에서 강의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1934년 나치 독일에 의해 ‘장검의 밤(Night of the Long Knives)’이라 불리는 숙청 작업이 진행되면서 당시 마그데부르크 경찰서장이었던 그녀의 아버지와 군 고위 장교였던 오빠 콘라트는 암살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슈라그뮐러는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무대에서 사라졌다.
1차 대전 중 그녀의 스파이 활동은 대중들에게 전설의 소재가 되어 그녀의 활동을 다룬 영화가 4편이나 개봉되었다. ‘슈탐불 퀘스트(1934)’ ‘마드무아젤 닥터(1936)’ ‘프롤라인 닥터(1968)’ 등이 그것이다.
영화에선 그녀를 금발의 매혹적인 스파이로 연출해 냈지만 이들 영화는 1945년까지 연합군에 의해 슈라그뮐러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 제작된 것이라서 그녀의 삶 이야기는 대부분 모호하고 추측에 불과하다.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에서 슈라그뮐러의 스파이 교육 기법을 원용하고 있는 사실에서 확인되듯이 그녀는 전설적인 스파이 제조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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