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은 기능별로 공간이 독립되는 시대였다. 생활 형태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그 변화 중 식생활과 도시 집중화는 새로운 주거 형태를 요구했다. 수평적인 신분제도가 무너진 귀족사회 대신 신흥 자본가와 독립적인 개인 집단을 만들어 내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건축 공간에서의 부엌의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의 성공은 여성의 참여에 있었다. 여성의 위치를 사회가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 변화는 부엌에서 일어났다. 그 계기는 1927년 독일공작연맹이 당대 유명했던 16명의 건축가들에게 바이센호프 주거단지를 조성하도록 한 것이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자 주택에 대한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또한 농촌 가정에서 가족이 모여 단란하게 음식을 먹던 일상이 도시에서의 분주한 생활로 바뀌며 음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포화 상태의 도시는 아파트라는 새로운 서민 주거 형태를 통해 주거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으며, 주거의 작업장으로서 부엌을 변화의 주 포인트로 삼았다. 사회가 발빠르게 움직이며 이러한 변화에 맞춰 새로운 음식도 요구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주방기구 및 가구 디자인이 등장하는데, 영국에서는 이미 등장한 것이 글래스고우파의 사각 디자인이다. 요리를 위한 기능을 유지한 채 현대적 디자인이 접목된 여성을 위한 부엌이 도입된 것이다.
당시 에나 마이어가 주거에 대해 쓴 책에 실린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피부를 원한다”는 글이 이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선 새로운 주거 형태를 선보이면서 다른 공간보다 부엌에 대한 현대화를 시도했으며 그 모티브를 기차의 식당차에서 가져왔다. 요리를 위한 여성의 노동을 줄이고 동선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근접 거리에 모든 것을 배치하도록 했으며, 기차에서 사용되는 음식 이동 수단을 부엌으로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부엌’의 시작이고, 현재 부엌의 모태가 됐다.
여기에는 바우하우스의 영향이 컸다. 바우하우스는 4가지 기능을 아파트의 효용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포인트는 바로 음식과 요리였다. 거실과 부엌의 연결 관계를 고려하고 부엌문을 미닫이문(슬라이딩 도어)으로 바꾸는 등 주거에서 여성에게 변화가 요구되는 필수적인 공간으로 요리를 하는 부엌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아파트 시공 시 애초부터 부엌의 모든 가구를 붙박이(Built-in)로 해결하고 부엌 가구 또한 동시에 설치했다. 부엌의 설치를 강제하여 임대료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 정책의 바탕에는 여성이 부엌에서 시간을 절약하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갖게 하여 건강을 유지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부엌은 비엔나의 건축가 마르가레테 슈트 리호츠키가 1926년에 설계하고 프랑크푸르트 정부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부엌이 달라지면서 주방기구에 대한 현대화 바람이 수반되었다. 이러한 정책이 생활에 변화를 주고 주방의 동선 체계를 바꿨다. 요리 중 아이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게 유리문을 설치하고, 음식 냄새가 나지 않도록 통풍을 고려해 발코니를 계획했다. 이것이 1927년 현대식 부엌의 탄생이다.
그래서 모든 부엌의 원조는 ‘프랑크푸르트 부엌’이라는 것이다. 건축가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형태를 만드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건축물엔 각각 고유의 기능을 갖는 공간이 있다. 이 공간에 머물면서 기능에 만족할 때 건축물이 완성된다. 이제 부엌은 요리하는 곳이 아니고 모든 공간을 액티브하게 만드는 곳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가정에서 일하는 여성이 요리 외에 새로운 삶을 기대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들은 더 이상 가족의 순교자가 아니다. ‘나는 행복해요, 정말 아름답네요’ 하는 영혼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바로 건축 예술이다”고 말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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