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28절. 대학 동창 밴드가 만들어진 지 오래됐으나 승연은 밴드는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 밴드에선 정치 얘기나 종교 얘긴 꺼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이미 지난번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대학 동기들은 둘로 나뉘었다. 탄핵 때 대학 동기 사이에서, 사이랄 것 없이 모든 동기에게서 일방적인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다. 검증되지 않은 대통령의 무능과 비선에 대한 자비 없는 성토가 매일 쏟아졌다.
거기서 반박이라도 할라치면 ‘무슨 무슨 빠’라며 광빠 패거리로 몰렸다. 밑도 끝도 없는 루머를 사실인 양 떠들었다. 확인되지 않은, 무분별한 내용을 공유하며 비웃는 모습에선 대학을 졸업한 지성인들이 맞나 싶었다.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든, 볼썽사나운 글과 사진을 마구 퍼 올리며 눈요기하고 씹어댔다. 승연은 참을 수가 없었다. 대학 지성의 수준에 고개를 저었다. 운동권 출신들이 여성 대통령의 은밀한 사생활을 조롱하는 건 더욱 역겨웠다. 승연은 너희들이 그러고도 여성 인권을 얘기하냐며 면박을 주곤 그 방을 빠져 나왔다.
한동안 동기들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승연이 다시 밴드 방에 초대되어 잠깐씩 찾았던 이유는 미국에 사는 은영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다. 은영은 단짝 기순의 소식에 오열했다. 은영은 해마다 기순의 기일에 꽃다발을 보내왔다. 태주와의 관계를 유일하게 알고 있던 이도 은영이었다. 은영은 승연이 행여 정신줄을 놓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은영은 자기의 멘토였던 희숙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다. 승연은 희숙을 만난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차마, 파괴된 멘토에 대해 말할 자신이 없었다. 은영은 5년에 한 번 한국을 찾았다. 올해가 5년 되는 해라 나오겠다고 밴드에 메시지를 남겼다. 은영은 한국을 찾은 지 나흘째 되는 날 승연을 만났다.
은영은 여건이 되면 승연과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승연은 은영에게 희숙 선배를 만나 보자 했다. 은영은 놀란 표정이었다. 희숙 선배랑 연락이 돼? 어떻게 지내신대? 부산에 계신 거 아니었어? 결혼은? 누구랑 결혼했대? 와, 궁금하다. 빨리 보고 싶어. 은영은 승연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연달아 질문했다. 나도 우연히 연락했어. 학교 졸업하고 몇 십 년 만이지. 너 미국 간 얘기는 지난번에 만났을 때 못 했는데. 깜짝 놀라시겠네. 희숙 선배는 대학 때처럼 마른 체구고 카리스마도 여전해. 머리카락만 변했어. 반백이더라. 근데 회색빛 머리칼이 희숙 선배랑 잘 어울리더라고.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희숙도 승연도 은영에게 상처를 헤집고 아픈 기억을 끄집어낼 생각은 추호도 없을 터였다. 승연은 휴대폰에 저장한 희숙의 연락처를 꺼냈다. 발신음 끝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남자 목소리였다. 순간 승연은 변태섭이 받은 건가 했다. 남편이 부인 휴대폰을 왜 받지? 승연은 끊을까 말까 망설였다. 그러나 말없이 끊는다면 희숙이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승연이 입을 떼려는 찰라였다.
“여보세요. 윤희숙이 전화 맞습니다. 저는 희숙이 애비입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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