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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패자들을 위한 리본은 없다
月칼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6-23 00:02:55
▲ 진명행 작가·칼럼니스트
선거가 끝나자 패잔(敗殘)한 보수정당 내에서는 어김없이 반성한다는 분들이 속출하고 있다. 
 
뒤늦은 사과를 하고 무엇을 얻겠다는 심사인지는 모르겠으나, 회개란 남을 향한 요란한 선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외식(外飾)하는 자’로 비유한 바 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들과 딱 들어맞는 셈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음이 전혀 없고, 그에 대한 심판이 있을 때마다 의례적인 사과를 반복하는 것은 식상함을 넘어 혐오의 감정이 앞서게 한다. 차떼기당 오명을 뒤집어쓴 이래 보수정당은 사과 전문 당으로 거듭났다.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앞장섰다가 역풍을 맞고 또 사과했다. 불법대선자금 문제로 천막당사로 이전하고, 불볕더위 속 에어컨도 없는 그곳에서 80일을 고생했다. 당사는 물론 연수원도 매각했다. 정말이지 온갖 궁상을 떨어가며, 국민에게 진정성을 구하고 빌었다. 그럼에도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2년 동안 뱀처럼 기어다니며 빌었음에도 총선에서 고작 121석 건지는 데 그쳤다.
 
그들은 탄핵의 여파 속에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또 사과했다. 이번에는 국회 로텐더 홀에서 단체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는 구차한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그 낯 뜨거운 이벤트를 벌이고도 이어진 총선 결과는 참혹했다. 리더 없이 몇 년을 허비했으며, 비대위가 일상인 정당, 선거 때마다 외부 인사 영입에 매달린 정당, 외연 확장에 열을 올리다가 뭐하는 집단인지 모를 정도로 정체성을 잃어버린 정당이 되었다. 이제는 오랜 지지자들조차 마음을 거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그들이 또 사과한다 하니 뫼르소의 현신(現身)이 엄습하는 듯하다. 사과란 무엇이 잘못인지 상대방과 교감을 하고, 동일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상호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상대방이 사과를 수용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인 사과를 반복하는 것은 오히려 불쾌감을 가중 시킬 따름이다. 그들에게 표를 주지 않은 49%의 국민은 무슨 변명이나 사과를 듣고자 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정당 소속이라면 진저리를 치고 있을 뿐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처벌’이나 ‘복수’가 아닌, “공동체 사회로부터 제거(no common world was possible)”라 설명한다. 단언컨대 보수정당을 백안시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 절반은 이런 심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내란당이라는 프레이밍을 뒤집어쓰고 뒤늦은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행함으로써 지지자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짓밟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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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 우드하우스(P. G. Wodehouse)는 그의 단편집 ‘The Man Upstairs’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한 가지 좋은 철칙은 사과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람은 사과를 원하지 않고, 잘못된 사람은 그것을 악용한다.” 그의 말이 맞다면, 애초에 우리가 바라는 ‘좋은 사과’란 존재하지 않는다. 매번 선거 때마다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를 반복하는 것은 정당의 존재 이유조차 의심스럽게 만든다.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자들은 절박한 순간에도 몸부림치지 않는다. 대신에 바람보다 빨리 눕고 일어서는 무기력한 눈치만 남았다. 염량세태도 유분수지 자당(自黨)이 배출한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탄핵했으면서, 본인들은 살겠다고 브루투스의 연설을 하고 있다. 흡사 자신들이 게워낸 토사물로 뛰어든 개의 꼴이거나 더러운 오물을 다시 뒤집어쓰고 누운 돼지의 형국을 바라보는 것 같다. 
 
산티아고 노인은 사흘 밤낮의 사투 끝에 청새치의 뼈라도 얻었지만, 그들은 그런 장렬함도 없다. 입으로는 애굽을 부르짖으며 발길은 앗수르를 향한 저 어리석고 줏대 없는 집단의 후예들이라면, 이제 그만 정치의 허업을 내려놓고 생업으로 돌아가는 게 순리다.
 
국민은 염치없는 자들을 위해 더 이상 노란 리본을 달아주지 않는다. 당신들의 떡갈나무는 이미 치워지고 없다. 버스는 집 앞을 지나칠 것이며, 춥고 외로운 허허벌판에서 멈출 것이다. 보수의 절멸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철 지난 노랫소리는 멀어져 가고, 우리의 시름은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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