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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산책] 화가 변신한 소설가 정영희, 그리고 맛집
예술의전당서 첫 전시… 주옥 같은 60점 호평 일색
소설가와 기자로 만나 20년 동안 훈훈한 인연 이어 와
서초동 ‘포호아’, 가락동 ‘풍천장어’ ‘오징어바다’서 회포
유성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7-31 06:55:55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취재원과 기자로 만나 20년 인연을 이어 온 지인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가와 서평 기자로 만났다. 2006년 정영희 작가는 ‘낮술’이라는 소설집을 냈고 신문사에 잔뜩 쌓여 있는 신간 서평 당번이었던 기자에게 ‘낮술’이 배정됐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기자가 선택했다는 표현이 맞다. 이후 그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서평을 이어 갔고, 인연도 두터워졌다.
 
인연의 징검다리가 촘촘하게 늘어선 데는 책도 공이 있지만 음식이 큰 몫을 했다. 1년에 두어 번 정도 가락시장역 근처에 있는 그의 집필실 겸 영희역학연구원에 들러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은 주로 ‘풍천장어’라는 민물장어 식당에서 장어구이와 장어탕을 가운데 두고 쌓인 이야기를 덜어 내며 배를 채웠다.
 
캘리포니아호텔 뒷골목은 유명 먹자골목
 
▲ 가락동 캘리포니아호텔 뒷골목에 위치한 ‘풍천장어’와 ‘오징어바다’의 메인 메뉴.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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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저녁 무렵에 만날 때는 ‘오징어바다’라는 싱싱한 활어 횟집을 자주 찾았다. 가락시장역 캘리포니아호텔 뒷골목은 먹자골목이다. 다양한 먹거리들이 포진한 비교적 큰 먹자 상권이다. 하루는 ‘오징어바다’를 찾았는데 영업 시간인데도 간판 불이 꺼져 있었다.
 
코로나19가 한창 발호하던 시기였다. 현관문엔 9시 영업시간 제한 초과로 적발돼 일주일간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았다고 써 붙여 놨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거리두기라는 참으로 고단한 세상을 관통해 왔다. 속내는 따뜻한 숯불이 그리웠는데 옳다구나 하고 풍천장어 집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가을이면 ‘오징어바다’에 꼭 한 번은 들렀다. 전어가 제철이기 때문이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인근에 둔 곳이라 해산물이 싱싱하다. 오후 5시면 손님이 들기 시작하고 6시경에는 만석이 된다.
 
전어는 추석 전후해서 가장 많이 잡힌다. 올해도 어김없이 두 달 보름 정도 후면 전어철이 온다. 전어가 가을에 맛있는 이유는 지방 함량이 다른 때보다 풍부하기 때문이다. 생선이 가장 맛없을 때가 산란기 직전이다. 영양분이 알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전어는 5~7월 산란을 마치고 먹이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8월부터 살이 차올라 가을이면 기름진 맛이 절정에 달한다.
 
‘오징어바다’는 오징어바다라는 상호답게 오징어회가 대표 메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족관 안에서 로켓처럼 유영하던 오징어가 전어와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해체돼 접시에 실려 나왔다. 전어보다 가늘게 채 썬 오징어의 투명한 자태는 구미를 한껏 당긴다. 오징어를 가늘게 채 치는 이유는 오징어가 생선회와는 달리 질기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줄기차게 두 식당을 오갔는데 며칠 전에는 강남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앞에 있는 베트남 쌀국수 식당 ‘포호아’엘 갔다. 가락시장역 뒷골목을 떠나 다른 곳에서 만나 식사한 것은 드문 일이다. 예술의전당에서 정 작가가 그림 전시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엔 서평 대신 그의 화가 데뷔 기사를 썼다.
 
예술의전당서 내달 10일까지 작품 전시
 
 
▲ 서초동 예술의전당 맞은편에 위치한 베트남 음식 전문점 ‘포호아’의 양지쌀국수와 돈까스. 필자 제공
 
 
소설가로 숱한 화제작을 썼던 정영희 작가가 화가로 정식 데뷔해 화제다. 정 작가는 지난달 28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뮤지엄 테라피 : Chill Your Soul’전에 작품을 내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미대 출신인 정 작가가 40여 년 만에 ‘본업’을 되찾은 것이다.
 
정 작가는 대구 영남대 미대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대 2학년 재학 중 전국 대학생 소설 공모에 단편소설 ‘아내에게 들킨 생’이 당선되면서 40여 년간 소설가로 활동했다. 그간 장편소설 5권, 작품집 2권, 산문집 3권과 여러 공저가 있는 전업 작가로 문단 활동을 왕성하게 해 온 중견 작가다.
 
정 작가에 따르면 3년 전부터 그림에 대한 그리움이 터져 나오면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 작가는 “더 이상 구할 것이 없고,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세상과 인연이 모두 끝났다 싶은 지점에서 색이 내게 다가왔다”며 “속에서부터 울컥울컥 터져 나오는 그림에 대한 그리움의 깊이가 이리 깊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다양한 동식물 간결하게 캐릭터화한 독보적 화풍
 
▲ 정영희 작가의 대표작 ‘바오밥 나무와 눈먼 사막여우’. 필자 제공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눈먼 사막여우, 철새 떼, 백상어 떼 등을 담은 연작은 그림에 대한 갈망을 담은 페르소나다. 붓 대신 펜을 선택했지만 그는 쉼 없이 갤러리를 오가며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 수집과 현장 학습으로 안목을 키워 나갔다. 탄탄한 이론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그의 작품은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큰 주제를 품고 서서히 다듬어졌다.
 
정 작가의 그림엔 그만의 색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늘 동물과 식물이 어우러져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각 동물의 특징을 살려 간결하게 캐릭터화한 기법은 작가의 높은 미적 감각을 드러낸다. 이 같은 능력은 정 작가가 세계적 화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바오밥나무, 사과나무를 비롯해 매화, 불로초, 능소화 등 식물은 작품마다 제각기 속뜻을 품은 숨은 기제로 작용한다.
 
그의 작품은 동화적이고 우화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의인화된 동물들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특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오마주한 작품들은 ‘이 행성은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별에 왔는가’ ‘어디로 기야 하나’와 같은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몽환적이고 특정 방향을 향하는 동물들의 시선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작가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골판지에 혼합 재료 독특한 질감 효과
 
 
▲ 필자가 구입한 ‘설산에 사는 사막여우’. 필자 제공
 
 
길 가다가 주워 온 골판지를 잘라 도화지로 사용하는 것도 독특한 회화적 특징이다. 투박하게 드러나는 골판지의 우둘투둘한 질감엔 척박한 현대 사회가 투영돼 있다. 크레파스, 오일파스텔, 아크릴물감 등 혼합 재료를 사용해 거칠면서 때로는 아득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도 정 작가 작품의 특징 중 하나다. 소설가 출신답게 그림을 표현하는 한 줄 제목과 각주처럼 달아 놓은 간결한 설명은 그림을 보는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가 된다.
 
정 작가의 롤모델은 미국 작가 알렉스 카츠다. 인물 초상과 풍경을 주로 그리는 카츠는 90대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또 한 명은 90대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다. 전위예술가인 야요이는 설치미술 작품인 호박이 유명하다. 60대의 정 작가는 이들보다 30살 가까이 젊다. 이들 거장들에 대한 오마주엔 늦게 시작한 만큼 오래도록 작품을 하면서 세계적 화가가 되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동물 캐릭터 의인화 ‘희로애락’ 담아 세계무대 노크
 
 
▲ 정영희 작가는 다양한 동물을 간결하게 캐릭터화하는 독보적 화풍으로 세계 무대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필자 제공
 
 
정 작가는 앞으로 더 많은 동물을 지면에 등장시켜 자신만의 동물원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번 개인전 주제는 ‘Her zoo’로 정했다. 개인전을 기점으로 세계 무대 진출도 서두르고 있다. 정 작가는 “나의 동물원에는 의인화된 동물들의 사랑과 기쁨, 이별과 슬픔이 아라비안나이트처럼 펼쳐질 예정”이라며 “그들의 희로애락을 통해 유한한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 전시를 예술의전당에서 연 것도 화제지만 무려 60여 점을 출품해 전체 전시회를 주도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작품도 대부분 판매되는 등 데뷔전부터 컬렉터의 취향을 저격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정 작가를 비롯해 최영옥, 최소리, 유가연, 이이남, 권용래, 미미, 정재원 등 쟁쟁한 작가들이 회화, 설치, 디지털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고 있다.
 
미술 전문지 데일리아트의 한이수 대표는 “정영희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수구초심과 함께 가슴 한쪽이 뜻 없이 저릿한 느낌을 받는다”면서 “단단한 문학적 기반 위에 그려진 그의 작품은 보이는 게 아니라 마치 텍스트처럼 읽힌다”고 평했다. 그의 과감한 변신과 인생 제3막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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