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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의 스파이 세계] <72> 이스라엘 모사드의 미그21 탈취 작전
모사드의 정교한 미인계 공작에 넘어가
다이아몬드 작전 성공으로 미그21 탈취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8-21 00:05:30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1966년 8월16일 요르단 북부 상공에서 훈련 중이던 이라크 공군 소속 MiG-21F-13(미그- 21) 한 대가 편대에서 이탈했다. 요르단·시리아·이집트 방공망이 이를 감지하고 경고를 보내고 요르단 공군기 두 대가 추격했으나 3만 피트 상공에서 마하 2.0의 속도로 비행하는 미그21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요격도 불가능했고 대공포도 무력화되었다.
 
미그21이 요르단 영공을 벗어나 이스라엘 영공에 진입하자 이스라엘 공군 소속 미라주 III 두 대가 하초르 공군기지까지 안전하게 호위하여 무사히 착륙했다. 900km를 비행하고 착륙한 미그21의 연료 탱크는 거의 비어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 사건의 배후로 이스라엘의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비밀정보부)가 지목됐으나 이스라엘 당국은 NCND(Neither Confirm Nor Deny·시인도 부정도 하지 않음)로 일관했다. 또한 이 사건은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라크와 러시아 당국은 미그21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이스라엘은 끝까지 거부했다.
 
1963년 3월25일 모사드의 국장으로 취임한 메이르 아밋(Meir Amit)은 이스라엘 정보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중동 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특히 모사드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이스라엘의 안보에 모사드가 기여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수행하는데 주력했다. 당시 그중 하나가 소련의 최첨단 초음속전투기인 미그21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미그21엔 R-25 터보젯 엔진이 장착돼 있어서 1만5650파운드의 추진력을 발휘해 마하 2.0까지 가속할 수 있는 성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로켓과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었다. 이 전투기가 4개 대륙에 걸쳐 약 60개국에서 운용되었는데 그 성능을 전혀 알 수 없다 보니 미국 등 서방 각국은 큰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옛 소련(러시아)은 1961년부터 미그21을 이집트·시리아·이라크 공군에 배치해 중동 분쟁에서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이스라엘 공군은 오랫동안 미그21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전술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미그21을 확보하려고 노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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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당국이 공개한 망명 당시 미그21기. 필자 제공
 
 
모사드가 최종 결정한 미그21 확보 공작은 아랍 조종사를 포섭해 이스라엘로 망명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미그21을 확보하려는 계획은 1963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이집트 태생의 장 토마스라는 모사드 요원이 이집트 공군 조종사를 포섭해 미그21을 몰고 이스라엘로 망명하는 대가로 100만 달러를 지불하려고 시도했으나, 그 조종사는 이를 거부했고, 당국에 신고해 토마스와 여러 공범이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집트에서의 노력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자 이스라엘은 다른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라크 쪽에서 기회를 잡았다. 이라크의 바그다드 출신 유대인 상인인 에즈라 젤카가 1965년 2월에 15명의 이라크 공군 장교들이 미국 랜돌프 공군기지에서 참모 과정 교육을 받기 위해 파견될 것이라 제보했다. 당시 미국과 이라크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때였다. 1963년 11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이라크 새 정부의 주력은 영국에서 훈련받은 장교들로 구성되어서 영국과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모사드의 정교한 미인계 공작
 
이라크 조종사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모사드 여성 요원들의 표적이 되었다. 1965년 3월 모사드의 여성요원 폴랑은 자신을 미국인 ‘자이나브’라고 소개하며 하미드 다헤 소위에게 접근해 친밀해진 다음 망명을 제안했으나 거부하자 이후 술집에서 암살했다. 이 사건 이후 이라크 조종사들은 그해 7월 미국에서 철수했다. 이 중 셰이커 마흐무드 유수프 대위, 모하마드 라글롭 대위, 그리고 무니르 레드파 대위는 ‘연인’들과 후에 이라크에서 재회했다. 유수프 대위는 재회한 연인이 미그21과 함께 이스라엘로 망명하라는 제안을 하자 거부했고, 살해당했다. 라글롭 대위도 망명 조건으로 수백만 달러를 요구하자 살해했다.
 
성공한 공작의 대상은 무니르 레드파(Munir Redfa, 1934년생)였다. 그는 소련에서 미그21 조종 훈련을 받았지만 새 정권이 미그21을 운용하는 유일한 이라크 부대인 제11비행대에서 복무하도록 믿고 임명한 다섯 명의 조종사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이라크 군은 장교들의 민족적·종교적 배경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새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실제로 레드파는 1966년 7월 제11비행대 대장으로 임명되어 공군이 그를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이라크 공군 대위 무니르 레드파. 1966년 8월16일 미그21기를 몰고 이스라엘로 망명했다. 필자 제공
 
그는 애국적인 이라크인이지만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이라크 정부의 반문명적 탄압 정책에 내심 반대하고 있었다. 그 또한 소수 민족 출신에다 마론파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무슬림이 장악한 이라크 공군에서 더 이상의 진급이 사실상 차단되었다. 
 
또한 지휘관들에 의해 바그다드에 있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도록 강요당했다. 특히 그는 거의 무방비 상태인 쿠르드족에 대한 폭격 임무를 지휘하라는 지시를 받고 괴로워했다. 이 사실을 정확히 파악한 모사드가 포섭 공작에 나섰다.
 
1965년 다른 조종사들과 함께 미국에 파견되어 교육훈련 중이었던 레드파는 한 파티에서 미모의 여성을 알게 되었다. 리사 브랫(Lisa Brat)이라는 미국 여성이었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에 지적이었고 항상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디를 가든 상류 사회에 쉽게 적응하고 어울렸다. 두 사람은 곧바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리사 브렛은 모사드의 비밀 여성요원이었다. 레드파가 귀국한 후 브렛도 이라크에 도착해 재회했다.
 
그녀는 레드파에게 1966년 7월 그리스에서 휴가를 보내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아테네에서 폴란드 조종사로 위장한 이스라엘 공군 대령 리온과 친분을 쌓게 했는데 술자리에서 의외로 레드파의 이라크 공군 지휘부에 대한 분노가 큰 것을 확인하고 며칠 후 그에게 이스라엘 망명을 제안했다. 그녀는 레드파에게 100만 달러의 보상금, 가족의 안전한 탈출과 이스라엘 시민권 및 이스라엘 내 정규직 고용을 보장했다.
 
이는 그가 그토록 반대했던 쿠르드족 폭격 임무에서 벗어나게 될 뿐만 아니라 백만 달러의 거금과 가족의 안전도 보장받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레드파가 고민 끝에 이를 허락하자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데려와 예행 연습을 하게 했다. 이어서 레드파는 이스라엘 공군 사령관 모르드개 호드와 함께 탈출 계획을 논의했다. 그의 코드명은 ‘다이아몬드’였다.
 
▲ 다이아몬드 작전을 기념하는 주화. 필자 제공
 
이라크로 돌아온 레드파는 장거리 비행이 허용되는 1966년 8월16일로 망명일을 정했다. 문제는 900km를 비행할 연료였다. 이라크 공군과 소련 고문단은 평소에는 도주에 대비해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우지 않도록 감시했다. 그는 이라크 정비사들을 설득해 탱크에 연료를 가득 채우도록 했다. 그리고 이륙하여 이스라엘로의 망명을 결행했다.
 
성공한 다이아몬드 작전
 
그날 모사드 요원들은 바그다드를 떠나 피크닉을 하러 간 레드파의 가족을 만나 대형 밴 두 대에 이들 17명을 태워 이란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헬리콥터로 무사히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레드파는 아내와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까지 이라크에서 안전하게 탈출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이 일을 비밀로 했고 그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로 망명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부 가족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레드파는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에서 새 직장과 삶을 얻었으나 조국을 배신했다는 자괴감에 생활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레드파는 1998년 64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모사드의 여성요원은 그가 이스라엘로 망명한 후 딱 한 차례 그를 만났지만 이후 접촉을 끊고 모사드 업무에만 전념했다.
 
 
▲ “이 기념 메달은 이스라엘에서 제작한, 공인된 주화입니다”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증명서. 필자 제공
 
 
이스라엘 공군은 미그21을 철저히 분석하여 강점과 약점을 파악했고 근거리 공중전 전략을 수립했다. 그 결과 1967년 4월 시리아 골단 고원 전투에서 시리아군의 미그기 6대를 격추하고도 자국 전투기는 한 대도 잃지 않았다. 1967년 6일 전쟁 발발 당시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와 이집트 미그기를 상대로 압도적인 공중 우위를 점해 승리했다. 이스라엘은 1968년 미그21을 미국에 대여해 최신 소련 전투기와 현대식 미국 전투기를 비교하여 공중전 전략 개발에 활용하게 했다.
 
이 전투기는 이후 이스라엘로 반환되어 하체림에 있는 이스라엘 공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임스 본드처럼 이 항공기를 탈취한 것을 상징하여 후에 이 전투기에 007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사건은 1988년 미국 유료 케이블 네트워크 HBO와 파라마운트사에 의해 ‘Steal the Sky(하늘을 훔치다)’라는 제목으로 제작, 상영되었다.
 
모사드에 의해 ‘다이아몬드 작전’으로 명명된 비밀 작전은 1963년 중반에 시작되어 1966년 8월16일에 끝났다. 이 작전은 모사드의 존재와 탁월한 역량을 과시한 세계 스파이 전선의 최대 성공작 중 하나이다.
 
 
▲ 이 전투기는 이스라엘 하체림에 있는 이스라엘 공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임스 본드처럼 이 항공기를 탈취한 것을 상징하여 후에 이 전투기에 007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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