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세계도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국내 정치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가운데 바깥 세상도 어지럽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무력화되는 등 자유무역 체제가 무너지고, 보호주의 관세 전쟁이 시작되면서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런 가운데, 9월4일 한국인 파견 직원 300여 명에 대한 미 이민국의 군사작전식 체포·구금으로 한미동맹도 출렁거리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반미 정서가 동맹에 미칠 장기적 악영향을 생각하면 마냥 답답하다. 이렇듯 한국은 경제·통상에 불어닥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태풍을 막기에 급급한 실정이지만 이와 함께 안보 쪽에도 미결 사안들이 잔뜩 쌓여 있다. 핵심은 ‘동맹 현대화’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동맹 현대화’ 보따리에는 많은 청구서가 담겨 있다. 크게 보면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동맹조약 제3조의 이행’ ‘한국의 안보 비용 부담 확대’ 등으로 압축되는데, 이 중에서 동맹조약 제3조 건은 한국이 미국의 대중(對中) 인·태 전략에 더 많이 기여하고, 대만 사태가 발발하거나 아시아에 집단 안보 문제가 부상하면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즉, 1953년 동맹조약의 서문과 3조에 명시된 대로 ‘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안보 이익’에 부응하도록 행동하라는 의미다.
특히, 중국이 9월 초 상하이협력기구(SCO)와 80주년 전승일 열병식을 통해 반서방 국가들의 결속을 다짐하는 터라 집단 안보에 관한 논의는 더 활발해질 수 있다. ‘집단 안보’란 다수 회원국이 외부의 특정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방위하는 장치로, 내부에서 위협 세력의 등장을 서로 견제하면서 공생·공영을 추구하는 공동 안보나 협력 안보와는 다르다. 집단 안보가 되려면 “하나의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 회원국들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응한다”는 공식 합의가 있어야 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다. 최근 아시아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잦아지고 있다.
2024년 10월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가 총리 취임 직전 허드슨연구소에 기고한 글을 통해 ‘아시아판 나토(Asian NATO)’를 제안했을 때는 잠시 언론의 주목을 받는 정도였지만 올해 3월 미·일 ‘2+2’ 회담에서 일본의 나카타니 겐(中谷元) 국방장관이 대만해협·동중국해·남중국해 등을 하나의 전구(戰區)로 묶고 한·미·일·필리핀·호주 간 안보 공조를 제안했을 때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큰 관심을 보였다.
이후 엘브리지 콜비 국방차관을 비롯한 국방부와 국무부 정책 결정자들이 ‘아·태 지역의 집단방위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일본의 제안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결국 ‘달라진 미국’의 새로운 세계 전략과 거래적 동맹관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즉, 미국이 한·미, 미·일, 미·호, 미·필리핀 등 기존의 양자동맹들로 이루어진 ‘부챗살((hub-and-spoke)’ 체제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데다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안보 비용 부담을 압박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달라진 동맹 정책’이 작동한 결과다.
이런 변화의 파고 속에서 국가 안위와 번영을 지키기 위해 한국은 ‘동맹 현대화’ 보따리의 일정 부분을 ‘뉴노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동북아시아 단일 전구나 아시아판 나토가 실현된다면 대북 전쟁 억제력은 강화될 수 있다. 북한은 전쟁을 일으킬 경우 다른 많은 아시아 국가들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미동맹의 존재감과 주한미군의 역할은 희석될 수 있으며 일본과 주일 미군이 한국과 주한 미군을 제치고 미국의 아시아 전략 중심축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안미경중(安美經中)에 안주하거나 중국의 용한제미(用韓制美)를 못 본 체하다가는 한반도의 안보 구도가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 위태로운 시기에 살고 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