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러진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로...'))
19일(현지 시간) 치러진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로드리고 파스(58)가 호르헤 키로가(65) 전 대통령을 눌렀다. 둘 다 비(非)좌파 후보지만, 20여 년 만에 재출마한 시장주의자 키로가 대신 중도 파스의 승리라는 점에서 ‘점진성 우(右)선회’로 평가된다. 개표율이 90%를 넘자 볼리비아 최고선거재판소가 파스 54.5% 득표(키로가 40%대)를 들어 “돌이킬 수 없는 추세”라며 당선자를 선언했고 현지 매체와 방송이 일제히 파스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인구 1130만 명 중 유권자는 793만7138명(현지 선거 당국 발표 기준)이다. 볼리비아에선 투표증명서가 있어야 행정민원·은행 서비스 등의 불이익이 적어 대부분 80% 후반대 투표율을 기록한다. 8월 1차 투표에서 파스와 키로가는 각각 32.06% 26.70%를 득표해 이날 맞대결을 펼쳤다. “자본주의를 모두에게” “지역예산 분권화” 등을 외친 파스의 당선으로 볼리비아는 2005년 대선 이후 처음 우파 정부를 맞게 됐다.
1차 대선 투표를 통해 결선 후보가 결정됐을 때 AP·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이 ‘좌파 세력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볼리비아는 국가 주도 경제 체제 아래 진행된 무리한 국책 사업, 외환정책 혼선에 따른 중앙은행 달러 부족, 관료의 무능·부패 등으로 현재 총체적인 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 시 취재진 질문에 답하면서 “볼리비아처럼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국가들이 많다”고 언급한 게 AP 등에 실리기도 했다.
파스는 하이메 파스 사모라(86) 전 대통령(1989∼1993년 재임)의 아들이자 현직 상원 의원이다. 다음 달 8일 임기 5년의 직무가 개시되면 대미관계 개선를 적극 추진할 전망이다. 파스뿐 아니라 키로가도 유세 기간 중 미국을 찾아 트럼프 행정부 측과 접촉하며 일찌감치 적극적인 미국과의 연대 강화 태도를 보였다. 파스 가문은 볼리비아 내 스페인 이주민 자손(크리요)의 대표격이며 파스 당선인이 시장을 지낸 남부 도시 타리하가 지역 기반이다. 볼리비아 와인 약 80%의 생산지인 타리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곳이며 역대 좌파 정부에 반발해 왔다.
별칭 ‘투토’로 불려 온 키로가 후보는 2001∼2002년 대통령을 역임한 정계 거물 중 한 사람이다. 친(親)기업 정책, 자유무역협정 확대, 사유 재산권 회복, 또 극심한 경제난 해결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다자간 금융기관 구제금융을 통한 ‘달러 유입 즉시 촉진’ 계획을 밝힌 바 있으나 유권자 선택은 ‘신중한’ 편이었다. 파스 역시 자유시장 방향성이긴 하나 키로가만큼 시장 우선주의는 아니다. 로이터·가디언 등 서방 언론이 이번 볼리비아 대선 결과를 ‘사회주의 정권의 완전 전복’이 아니라 ‘약간 오른쪽으로 이동한 선택’이라고 분석한 이유다.
스페인 매체 엘파스 또한 파스가 원주민 기반 정당인 ‘사회주의를 향한 움직임’(MAS) 및 에보 모랄레스 시대에 비판적이면서도 ‘시장과 복지의 균형’을 모색하는 측면에 주목했다. MAS가 모랄레스(2006∼2019년 재임)와 현직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 집권 이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모랄레스·아르세 후보 분열’과 맞물려 이번 대선 1차 투표 때 3%대 득표율에 그쳤다. 순수 원주민 출신 모랄레스가 여전히 굳건한 지지를 누리는 곳이 있어 22% 이상의 ‘사표’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볼리비아 인구 구성에서 원주민과 메스티소(원주민·유럽인 혼혈) 비율이 각각 20%·약 70%로 남미 국가들 중 높은 편이다. ‘자기 인정’ 방식의 조사라서 인종 경계가 모호해 원주민 비율이 더 높히 잡힌 자료도 있다. 다만 소속 인종을 스스로 유전적 혈통보다 사회·문화적 정체성(언어·교육·경제력 등)에 따라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2009년 모랄레스 정부 시절 헌법 개정을 통해 ‘다민족·다언어 국가’ 정체성을 천명한 이래 스페인어 외 30개 이상의 원주민어가 공식 언어로 인정돼 있다. 공용어에 원주민어를 포함시킨 남미 국가는 볼리비아 외 파라과이(1992)·페루(2011) 정도다.
20년 전 모랄레스 정권 등장 이전 볼리비아엔 유럽계(백인) 내지 상류 메스티소층 중심의 지배 구조였으며 원주민은 정치적 대표성을 갖지 못했고 교육·언어·재산 등 모든 면에서 배제됐었다. 도시·농촌, 원주민·비원주민 간 경제지표 및 생활수준 격차가 크며 인적개발지수(HDI)도 남미 평균보다 낮다. 이렇게 볼리비아는 세계은행 기준 저소득·개발도상국의 하나지만 최근 리튬·주석·은·아연 등 주요 광물 매장량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눈길을 끌게 됐다.
문명·근대성의 상징으로 여겨진 유럽계 후손과 원주민 사이의 식민적 위계가 오랜 세월 이어지다 1952년 혁명(MNR)으로 토지 개혁과 광산 국유화가 단행됐음에도 이후 수십 년 동안 다시 엘리트층 중심의 체제로 되돌아갔다. 1990년대 말~2003년 사이 이른바 ‘가스전쟁’ ‘코차밤바 물 전쟁’으로 원주민·농민·노동계층 저항이 폭발해 2005년 선거에서 농민지도자 모랄레스가 당선됐다. 남미 역사상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이었다. 이후 20년간 지속된 사회주의 정권이 이번 대선으로 뒤집힌 것이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