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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의 스파이 세계] <76> 동독 대외공작국의 미남계, 로미오(Romeo) 공작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5-10-23 00:02:55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스파이 세계에서 적에게서 비밀을 빼내기 위해 사용한 전통적인 ‘애욕의 기술(the amorous arts)’이 바로 미인계(美人計)이다. 이를 통상 꿀덫(honey traps)이라고 부른다. 본 칼럼에서도 제16회에서 네덜란드 출생의 전설적 여성 스파이 마타하리(1876∼1917)를 소개한 바 있다. 제2회에서는 ‘21세기의 마타하리’로 불린 러시아 스파이인 당시 나이 28세의 애나 채프먼(1982~)을 다뤘다. 서방 언론에서는 “애나의 비밀병기는 섹스였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제11회에서는 마타하리보다 훨씬 탁월했으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국 여성 스파이 암호명 ‘신시아(1910~1963)’의 활약상을 소개한 바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서독과 동독이 분단되어 베를린 장벽 사이에 치열한 첩보전이 전개되었을 때 동독 스파이 수장인 마르쿠스 볼프(Markus Wolf, 1923~2006)는 이른바 미남계(美男計)로 불리우는 ‘로미오(Romeos) 공작’을 실행했다. 볼프는 냉전 시기 가장 탁월하고 악명 높은 스파이 조직의 수장으로 평가되는 인물인데, 본 칼럼 제56회에서 소개한 바 있다. 볼프의 많은 작전에서는 ‘섹스’가 주요 역할을 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내가 스파이 역사에 기록된다면 스파이 활동에서 섹스를 사용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만든 공로 때문일지 모른다”고 했을 정도이다.
 
소련 KGB도 감탄한 로미오 공작
로미오 공작이란 1950년대 말부터 40년간 ‘슈타지(Stasi)’로 통칭되는 동독 국가보안부(MfS)의 대외공작국(HVA·일명 정찰총국)이 서독을 상대로 전개한 섹스 공작이다. 볼프는 적절한 접근 권한과 동기를 가진 여성 한 명이 남성 열 명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볼프는 세익스피어의 저명한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하며 미남계 공작을 ‘로미오’라고 명명했다.
 
▲ 미 CIA 홈페이지에서 수록된 '로미오 스파이' 이야기. 필자 제공
 
 
2차 세계 대전 이후 결혼 적령기의 많은 서독 여성이 기업·정부·의회·군대·정보기관 등에서 주로 비서로 일하게 되었다. 이들은 비록 낮은 직책이지만 업무 속성상 여러 기밀 사항에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통역가나 전문 기술직 여성들도 동독의 표적이 되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많은 독일 남성이 전사하여 여초(女超)현상이 심해 결혼 적령기를 놓친 노처녀들이 많았고 이들 여성을 유혹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때 건장하고 젊은 남성 스파이들이 이들에게 접근하여 유혹하고 각종 정보를 빼냈다. 공작 대상이 된 여성들은 대다수 외로운 노처녀들이었다. 이들은 친절하고 멋진 젊은 남성의 접근에 낚일 수밖에 없었다. 먼저 마음을 훔친 다음 비밀을 훔치는 것이다.
 
볼프는 슈타지 내 대서독 공작 부서인 대외공작국(HVA)에 외롭고 취약한 서독 여성들을 상대로 로미오 공작을 실행할 소규모 로미오팀을 구상했다. 이들은 전국을 돌면서 대학이나 청년들을 접하며 로미오 후보들을 물색했다. 엄격한 심사 과정에서 물색된 후보자의 99%가 탈락했다. 선발된 사람들 대부분은 25세에서 35세 사이의 고학력에 잘생기고 건장하고 매너가 좋아야 했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나야 했다. 물색한 후보들을 수차 검증하여 최종 선발하고 정교한 교육훈련을 통해 섹스 스파이 로미오가 탄생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이들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로미오들은 서독에 침투하여 외로운 여비서나 전문직 여성들을 찾아냈다. 전쟁 중 남편을 잃은 유부녀들도 대상이었다. 공작 대상에 접근하기 전에 그녀의 모든 것을 조사하였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악과 음식의 종류까지 파악했다. 반면 서독 정부는 안타깝게도 여비서 등을 단순한 업무 도구로 여겼고 그들에게는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동독은 바로 이를 노리고 치밀하게 접근하여 공작 목적을 성취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여성이 로미오의 진짜 의도를 알지 못했다. 관계가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을 위해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대부분 크게 놀라지 않았다. 물론 정보제공을 부탁받았을 때 관계를 끝낸 여성도 일부 있었지만 사랑에 빠져 연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파이 활동에 동의했다. 로미오와 사랑에 빠진 여성들은 밀회가 끝나면 스파이 활동도 끝났다. 때때로 대체 로미오가 파견되기도 했지만, 그녀들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여성들은 단 한 명뿐인 진정한 로미오를 위해 기꺼이 스파이 활동을 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최소 80명의 로미오 요원이 공작에 투입되었다. 그들의 활동은 수많은 서독 여성을 유혹하여 성과를 거뒀는데, 반면 이 중 40명 이상이 검거되어 결국 간첩 혐의로 기소되었다. 로미오 공작은 소련의 악명 높은 정보기관인 KGB(국가보안위원회)가 감탄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볼프 본인조차도 이 공작의 효과에 놀랐을 정도였다.
 
1호 로미오, 암호명 펠릭스
암호명 펠릭스(Felix)의 본명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동독의 지방 도시 출신으로 공학을 전공한 대학생이었는데 로미오 대상으로 선발되어 교육훈련을 받고 서독에 침투하였다. 그의 임무는 서독 총리실에 접근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아데나워 총리실에 근무하는 평범한 40대 노처녀에 주목했다. 그는 그녀가 출퇴근하는 버스 정류장 주변을 서성이며 그녀에게 접근했다. 이 여성은 잘생기고 친절한 매너의 젊은 남자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둘은 급속히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그녀의 아파트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마냥 행복했다.
 
그녀의 암호명은 ‘노르마’였다. 펠릭스는 그녀를 통해 총리실 조직 체계, 운영 행태, 서독의 대동독정책, 군사동향 등을 수집하여 동독에 전달했다.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펠릭스는 그녀를 남겨두고 돌연 동독으로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진짜 정체를 결코 알지 못했고, 왜 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도 알지 못했다.그녀는 텅 빈 아파트에서 삶의 의지를 상실한 채 보냈다. 동독 대외공작국이 펠릭스의 신분이 탄로나기 전에 취한 보안조치였다. 펠릭스의 공작이 의외로 성공을 거두자, 볼프는 로미오 공작을 가속화했다.
 
서독 대학원생 가브리엘 가스트
서독 아헨 공대 대학원생이었던 가브리엘 가스트도 로미오 공작의 덫에 걸렸다. 1968년 3월 그녀는 박사논문 주제인 ‘동독 여성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현장 연구차 동독 켐니츠를 방문했다. 방문 며칠 후 작은 맥주 바에서 칼 슈미트라는 남성을 만나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다. 그녀는 자신보다 8살 많은 잘생긴 외모에 훌륭한 매너의 자동차 기술자(위장신분)에 빠져들었다. 그해 7월 동독을 다시 방문한 가스트는 슈미트와 재회해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슈미트는 자신의 정체를 위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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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대외공작국은 그녀를 1년 정도 관찰 후 슈미트가 어떤 요구를 해도 거부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슈미트는 자신의 신분을 과감히 공개하고 가스트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스트에게 서독 연방정보국(BND)에 침투하라고 권했다. 1973년 BND에 우수한 성적으로 채용되어 BND 내부 동향과 미 레이건 행정부의 유럽 안보정책 등 기밀정보를 빼내 전달했다.
 
그러던 중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운명의 시간 앞에 선 가스트는 독일 통일 나흘 전인 1990년 9월 29일 슈미트를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 국경으로 향했다. 그러나 국경 검문소에서 가스트를 기다린 사람은 슈미트가 아니라 서독 연방요원들이었다. 동독 대외공작국이 가스트의 스파이 증거자료를 파기하기로 약속했으나, 방첩 책임자인 칼 그로스만이 자신의 신변보장을 위해 가스트의 정체를 서독 당국에 넘겼다. 가스트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한낱 도구로 이용된 것을 깨달았다. 1990년 체포될 당시 그녀는 BND의 소련 지부 부국장이었다. 그녀는 17년 동안 사랑을 지키기 위해 동독에 정보를 제공했다.
 
서독 주재 미 대사관 통역관 가브리엘 크리엠
서독 본 주재 미국 대사관 통역관인 가브리엘 크리엠은 퇴근 후 여느 때처럼 라인강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32세의 미혼인 크리엠이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이었다. 1977년 7월의 어느 날 산책 중 금발의 잘생긴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보면서 ‘내 연인이었으며 참 좋겠다’는 상상을 즐기고 있었을 때 그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와 불쑥 말을 건넸다. 라인강에서 바라보이는 산의 일곱 개 봉우리가 아름답지 않냐는 시답지 않은 말을 걸어 왔으나 싫지 않았다.
 
그 남자는 자신이 평화 문제에 관심이 많고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과학자이며 이름이 프랭크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두 사람은 만난 지 3개월만에 약혼했고 7년간 깊은 연인관계로 이어졌다. 그러나 프랭크는 동독 대외공작국 소속 로미오 스파이였다. 프랭크에 빠진 크리엠은 그의 부탁을 받을 때마다 미 대사관 기밀들을 넘겼다.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로미오를 만나 수천 개의 비밀문서를 건넸는데, 이는 같은 직책의 다른 어떤 요원보다 많은 양이었다. 그녀는 그가 그 문서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결코 묻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1984년 프랭크가 사라져 헤어졌다. 1991년 동독은 그녀의 로미오를 기차에 치여 사망케 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독일통일로 백일하에 드러났다. 통독 후 슈타지 문서를 분석하던 중 그녀의 스파이 행위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1996년 그녀는 체포되어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죄값을 치른 후 그녀는 미련 없이 독일을 떠났다. 네덜란드에 정착한 크리엠은 조그마한 옷가게를 운영하고 여생을 보냈다.
 
슈퍼 로미오 롤랜드
동독은 서독 정복을 위해 선발된 로미오들을 ‘슈퍼 로미오’라고 불렀다. 로미오로 선발된 연극 연출가 롤랜드(Roland)도 그 중 한 명이다. 1961년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부의 여성 통역관 마르가레테를 포섭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파견되었다. 다른 세 명의 로미오도 포섭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 여성 통역관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는데, 4번째 로미오를 덴마크 군 정보 장교로 착각하여 그에게 반했다. 결국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그녀는 NATO 기밀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불륜과 간첩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와 결혼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전했으나, 그는 직장 핑계를 대며 이리저리 결혼을 회피하며 사라졌다. 서독 방첩 당국은 그녀에게 주목했고, 결국 간첩혐의로 검거되었다.
 
서독 방첩부서장 티에제 망명 사건으로 밝혀진 사건들
1989년 서독 헌법보호청(BfV)의 방첩 부서장이었던 한스 요아힘 티에제가 동독으로 망명했다(본지 칼럼 제53회). 몇 주 전에 서독 정부에서 비서 등으로 일하던 여성 직원 3명이 실종되었는데 후에 이들이 동독으로 도주하였음이 밝혀졌다.
 
또한 서독 외부무 여직원인 레오노레 쉬테를린은 수개월간 한 사진작가로부터 구애를 받아 결혼했다. 그 여성은 바로 슈타지의 급여 명단, 즉 공작금 수령자에 합류했고 간첩 행위가 발각되자 자살했다. 서독 총리실에 근무했던 헤르타 아스트리드 빌너는 동독으로 도주했다. 1984년에만 서독 대통령실과 총리실 일부 여성 비서 6명이 최소한 15년 동안 동독의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른바 로미오 공작은 동독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소련의 KGB도 이 기법을 발전시켜 왔다. KGB 미남계에 넘어간 ‘노르웨이 총리 부인 베르나’ 사건이 대표적 사례이다(본 칼럼 제9회). 1993년 KGB 간부였던 두벤스키 장군이 1945년부터 1965년까지 세 번이나 노르웨이 총리를 역임한 에이나르 게르하르센의 부인 베르나(Werna)가 KGB에 의해 포섭된 스파이였다고 폭로했다. 베르나가 예브게니 벨야코프라는 젊고 잘생긴 KGB 요원에게 빠져 각종 정보를 전달하였다. 이들 사례는 미남계와 미인계라는 섹스 수단이 스파이 세계에서 시대와 영역에 관계없이 빛을 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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