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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진 칼럼] '현금동맹’이 된 한미관계 그리고 사라지는 청년의 사다리
심규진 필진페이지 + 입력 2025-11-04 00:02:50
▲ 심규진 IE대학교 교수 · 정치평론가
한미 협상 결과를 두고 미국과 이재명 정부의 발표 내용이 정반대로 나온 것은 단순한 외교 실수가 아니다. 이건 신뢰의 붕괴다. 한국 정부는 “우리가 선방했다, 현금 부담을 최소화했다”고 홍보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대규모 투자와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고 말한다. 같은 협상을 두고 서로 다른 말을 국민에게 한다면, 그 동맹은 더 이상 ‘가치 동맹’이 아니라 ‘가격 동맹’이다.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청구서뿐이다. 그 청구서는 매번 더 비싸지고, 한국은 협상 테이블의 파트너가 아니라 계산대에 서게 된다.
 
트럼프식 세계 전략의 핵심은 ‘보험상품형 동맹’이다. 미국은 안보 우산을 씌워주는 대신 동맹국의 현금·공장·시장 개방을 요구한다. 과거의 가치 동맹이 아니라 “얼마 낼 거냐”로 시작되는 보험계약이다. 문제는 지금의 한국이 ‘전략 자산’이 아니라 ‘현금화 가능한 자산’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확보했던 신뢰 기반이 이재명 정부 들어 개인 리스크와 친북·친중 행보로 무너지고, 그 공백을 미국이 ‘돈으로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캐시카우가 됐다.
 
더 큰 비극은 이 구조의 뿌리가 국내에 있다는 점이다. 민노총과 기득권 노조 카르텔은 ‘정년연장’과 ‘해고봉쇄’로 자기 이익을 철옹성처럼 지키면서, 청년의 진입 사다리를 끊어버렸다. 2030 세대는 정규직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저임금·비정규직·플랫폼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고학력자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남은 청년은 저임금 ‘프리캐리어층’으로 눌리며 생존에 몰두한다. 이것이야말로 민노총식 ‘노동 귀족 구조’가 한국 제조업을 미국으로 넘기는 간접 통로다. 한국의 생산비가 오르고, 기업은 규제를 피해 해외로 탈출하고, 미국은 그 공장을 가져간다. 그 결과, 한국은 일자리와 산업을 동시에 잃는다.
 
민노총 식 ‘친노동’이 만들어낸 반(反)노동 구조가 문제다. 한국 좌파는 늘 “우리는 민중을 위해, 대기업 특권에 맞선다”고 외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한국 제조업의 국내 생산비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임금은 선진국 수준으로 올랐지만, 생산성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다. 에너지 단가는 일본보다 비싸고, 탄소 규제는 유럽보다 더 강하다. 여기에 주 52시간제, 해고 제한, 파업 면책, 정년 연장까지 겹치면 기업은 ‘고임금-고규제-고리스크’의 삼중고에 갇힌다.
 
결국 민노총식 ‘반기업 드라이브’가 외치는 반미·반재벌 구호는, 실제로는 한국 산업의 미국 편입을 가속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미국 자본에 맞서겠다”는 그 구호가, 한국 제조를 미국으로 옮기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 모순을 모른 척한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미국의 반도체·자동차·방산 시장에서 한국은 더 이상 ‘기술 파트너’가 아니라 ‘하청형 투자국’으로 밀리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투명성이다. 한·미 각각의 합의 문구, 금액, 일정, 조건을 전면 공개하라. 반도체·자동차·농업 등 핵심 산업의 국내 잔존 계획을 제시하라. 민노총과 기득권 노조의 사다리 파괴를 국가적 개혁 어젠다로 끌어올려라. 북·중·러와의 음성 거래 의혹을 끊고, 미국에 약점 잡힌 리더십으로 외교를 맡기지 말라.
 
을사조약은 총칼로 맺어졌지만, 이번에는 내부 분열과 리더의 무능이 자발적 종속을 만들고 있다. 이건 ‘굴욕 외교’가 아니라 ‘현금 동맹’의 늪이다. 그리고 그 청구서는, 청년 세대가 평생 갚아야 할 부채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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