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뉴욕의 새 시장으로 당선된 조란 맘다니는 미국 진보 진영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인도계 무슬림 2세이자 이민자 출신의 청년 정치인인 그는 민주당 내 엘리트 중심 구조에 균열을 내며, ‘정의·연대·생활고’를 결합한 새로운 도덕 정치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의 등장은 트럼피즘 시대의 ‘좌파적 감정 정치’ 실험이자, 민주당 내부의 세대 혁명으로 평가된다.
맘다니의 강점은 명확하다. 그는 도시 하층민, 이민자, 청년층을 감정적으로 결속시키며, SNS와 유튜브를 활용한 팬덤 정치에 능하다. ‘도덕적 정의’를 ‘생활경제’와 결합시켜 진보의 언어를 실질화했다는 점에서, 이념이 아닌 삶의 문제로 정치적 신뢰를 형성하고 있다. 엘리트 피로감을 느끼는 진보 지지층에게 그는 오랜만에 등장한 ‘감정적 리더’다. 트럼프의 직접 소통력과 AOC(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미디어 감각을 겸비한 세대형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좌파의 트럼프’로만 남는다면 한계는 명확하다. 맘다니의 지지 기반은 도시·청년·소수자 중심으로, 교외의 중산층까지 확장되기 어렵다. 또 그의 배경인 대학·NGO·미디어 네트워크는 본질적으로 대중 포퓰리즘의 반엘리트 정서와 충돌한다. 분노의 정치만 강화된다면, 그는 차베스나 코빈처럼 ‘도덕적 열정’에 갇힌 좌파 포퓰리스트로 남을 수 있다.
오바마와의 비교는 이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오바마가 제도와 포용, 중도를 상징하는 엘리트형 통합 리더였다면, 맘다니는 거리와 분노, 순혈 진보의 상징이다. 오바마가 ‘엘리트와 민중의 다리’였다면, 맘다니는 ‘엘리트를 부정한 운동가’다. 그러나 분노를 제도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오바마가 될 수 없다. 진정한 리더십은 감정의 언어를 정책과 실용의 언어로 바꾸는 능력에서 나온다.
흥미롭게도 트럼프와 맘다니의 정치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트럼프가 백인의 박탈감을, 맘다니가 소수자의 억압감을 정치화했다. 둘 다 ‘배제된 계층의 복수심’을 동력으로 삼고, 엘리트에 대한 감정적 응징을 서사화했다. 차이는 방향성에 있다. 트럼프는 분노를 권력으로 바꾸고자 했고, 맘다니는 분노를 윤리로 바꾸려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둘 다 감정의 정치, 즉 팬덤과 정체성의 동원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같다.
맘다니가 ‘좌파의 오바마’로 진화하려면, 분노를 제도화할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는 동원에는 강하지만, 타협과 설계에는 미숙하다. 오바마가 이상과 제도의 균형을 통해 통합의 리더가 됐다면, 맘다니는 아직 분노의 리더에 머물러 있다. 그가 감정의 언어를 정책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한다면, 뉴욕에서의 성공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날 것이다.
맘다니 현상은 결국 트럼피즘의 반사적 산물이다. 그가 상징하는 ‘좌파의 분노정치’는 트럼프가 개척한 팬덤·미디어·반엘리트 구조를 그대로 차용했다. 그러나 트럼피즘은 여전히 현실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반면, 맘다니즘은 도덕적 정당성은 있으나 체급이 부족하다. 감정 정치를 제도 정치로 바꾸지 못한다면, 그는 ‘좌파의 트럼프’가 아니라 트럼프의 그림자에 머물 것이다. 그것이 ‘좌파의 오바마’로 진화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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