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씨너스: 죄인들’
블루스를 들어보았는가. 느리고도 끈적끈적한 그 울림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그 멜로디에 흡착되어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어째서 블루스는 이토록 강력한 흡입력을 지닌 것일까. 블루스에 혼융의 특성이 짙다는 점을 참고할 수 있겠다. 흑인 노예의 노동요에서 시작한 역사적 바탕이 말하듯, 흑인들이 유색인으로서 겪(어 오고 있)는 슬픔과 우울감(blues)이 미묘히 흔들리는 블루스의 음악적 소울로 부드럽게 표현되(어 왔)기 때문이다.
‘씨너스 : 죄인들(이하 ‘씨너스’)’은 블루스의 이 매력적 융합성을 매우 능란히 전유한 영화다. ‘씨너스’의 우수성은 블루스를 주된 음악으로 활용했다는 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자체가 블루스의 혼융성을 강렬히 체화한 영화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씨너스’는 소리와 이미지를 절묘히 결합한 연출 역량을 드러내는 영화로서 타 영화들과 유의미하게 엮이는 작품 외적 맥락까지 폭넓게 고려되어 분석될 때, 그 기술적 완성도와 사회문화적 가치가 명징하게 포착된다.
‘씨너스’는 큰 틀에서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1996)’와 닮았다. 두 작품 모두 사실적 범죄물로 진행되다가 러닝타임이 1시간쯤 지난 시점부터 뱀파이어 퇴치 액션물로 변하는 점에서 그렇다. 전자가 후자보다 장르적 급전의 속도와 흐름이 더 부드럽고 매끄럽다는 점에서는 변별되나, 전반과 후반의 이 상이한 장르성을 인지하면 ‘씨너스’의 구조를 한층 명료히 간파할 수 있다.
‘씨너스’는 블루스의 영화라 말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블루스가 또렷이 흐르는 영화다. 블루스의 형성에 흑인의 현실적 서러움과 영가의 종교성이 합류했음을 떠올리면, 오프닝 시퀀스에서 전 세계 강령술사들의 음악적 흑마술에 관한 전설이 흑백 위주의 애니메이션과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형상화된 점은 퍽 묵중하게 다가온다. 오프닝 시퀀스에 영화의 주된 내용들이 압축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강령술사들의 흑마법은 죽음을 거친 망령들을 소생시켜 현세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종교적 부활과 언데드 캐릭터 같은 비현실적 요소를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 때문에 사회의 중심으로부터 열악한 주변으로 소외당하기 일쑤인 흑인의 현실적 처지를 시청각적 연출로 가시화하겠다는 작품의 의도를 암시한다. 영화의 진행이 1시간에 닿기 전의 앞부분에서 유색인종에게 편견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다는 대사가 스치듯 들리고 백인 전용 매표소 및 화장실을 표기한 문패가 잠깐 보이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흑마술로 되살아난 영혼에는 악령도 있음이 명시되는데, 악의 존재는 새빨간 눈빛으로 특정된다. 이 붉은색은 영화가 1시간 지난 후 습래하는 흡혈귀들의 새빨간 눈빛과 핏빛 살육에 직통한다. 목사 제드에게는 돌아온 탕자 새미가 꼭 그런 마귀로 보였던 것 같다. 전자는 기독교의 성스러운 세계를, 후자는 후두교의 신비로운 세계를 대변한다. 다시 기독교적 신성성은 신도의 성가와 목사의 설교 같은 음성으로, 후두교적 신비성은 기타의 연주 소리로 표현된다. 뱀파이어들과의 혈투를 거치고 교회로 귀환한 새미가 제드에게 걸어가는 중에 전날 밤의 그 결투와 결부된 끔찍한 기억들이 짧은 길이의 쇼트들로 툭툭 틈입되는 연출은 날카로운 파열과 충격을 효과적으로 일으킨다.
영화의 뒷부분은 주점에서 블루스를 즐기던 인간들이 뱀파이어에 맞서 사투를 겪는 아수라장을 공포스러운 느낌의 사운드와 함께 담고 있다. 블루스의 음량이 점차 커지면서 카메라가 활활 타오르는 붉은 화염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가운데, 검은 밤하늘에 뜬 흰 보름달은 악마의 불길한 도래를 예고하는 이미지로 기능한다. 이 뒷부분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과 스티븐 노링턴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1999)’가 교묘히 혼합된 것처럼 분석된다. ‘씨너스’는 전자에서 괴물로 설정된 좀비를 뱀파이어로 교체하고 후자에서 웨슬리 스나입스가 연기한 단독 히어로를 흑인들과 중국계 미국인으로 복수화(複數化)하는 차이점을 보인다.
양자 모두 흑인 남성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흑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은근히 비판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KKK가 명시적으로 언급되는 점은 그래서 특기할 만하다. 흑인을 비천한 괴물로 취급하는 백인 우월주의자의 왜곡된 특권 의식이야말로 피해자인 흑인에게는 뱀파이어보다 훨씬 무서운 괴물일 수 있다. 구성원들이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고 대하는 공동체가 천국의 왕림을 가져오는 백마술을 실현할지도 모른다.
흑인의 사회적 고통을 뱀파이어의 은유로 힘 있게 다루는 이 영화의 화법은 새미가 지옥의 하룻밤을 통과하고 교회로 돌아오는 스토리 전체를 큰 은유로 읽을 수 있게 허용하는 듯하다. 그가 기타에 빠져 영적 방황을 거치다가 기독교로 회귀하는 과정을 은유한 영화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미가 결국은 블루스를 선택하지만. 주인공 형제의 모자도 푸른색과 붉은색이라는 점에서 작품의 핵심적인 음악과 색채를 은유한 이미지로 재조명될 만하다. ‘씨너스’는 흑인의 블루스와 괴물의 피를 뒤섞는 마술에 이렇게나 능하다.
영화 ‘씨너스 : 죄인들' 줄거리
1932년 미시시피, 흑인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은 인종차별이 극심한 미국 사회에서도 흑인들의 자유를 꿈꾸면서 클럽을 개업한다. 자신의 목사 아버지 제드와 신앙 문제로 갈등하는 새미를 포함한 많은 흑인들이 그 클럽에서 블루스와 춤을 즐기고 있던 어느 밤, 뱀파이어로 변한 백인들의 급습으로 클럽은 음험한 전장으로 돌변한다. 스택은 저주를 종식시키기 위해 자기희생을 감행한다. 아침이 와 떠오르는 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에 뱀파이어들은 모두 불타 없어지고, 새미는 제드가 이끄는 교회로 돌아간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 소개
흑인 영화감독 라이언 쿠글러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는 아마 ‘블랙 팬서’(2018)일 것이다. 흑인인권운동에 힘쓴 미국의 블랙팬서당과 같은 제목으로, 아프리카의 가상 왕국 와칸다의 왕 티찰라(故 채드윅 보즈먼 배우)가 천연자원 비브라늄을 놓고 국제범죄자와 킬몽거에 맞서 싸우는 영화다. 라이언 쿠글러는 미지 코스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메이킹 웨이브 : 영화 사운드의 예술(2019)’에서 사운드가 상상력과 많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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