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감독 ‘페니키안 스킴(2025)’
영화평론
회색은 꽤 유현한 이미지다. 순수한 흑색과 백색이 있다고 가정하면, 더 그렇게 느껴진다. 가정된 양자가 온 빛깔의 연속 스펙트럼에서 그 양극단에 각각 자리한 컬러일 것은 회색의 위상을 색다르게 해석하는 데에 요긴한 영감이 된다.
회색은 흑백색이 혼합된 중간색이라는 점에서 그 범주를 명료히 규정하기 힘든 개인을 빗대는 이미지로 자주 쓰인다. 특정인만 회색이겠는가? 뭇 인간이 다양한 맥락과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잠재한 특색과 입장을 조금씩 다르게 드러내는 혼합체임을 외면하기 어렵다. 어쩌면 만인은 저마다 다른 농도로 묽게 희석된 ‘회색인’일지도 모른다.
진회색과 연회색의 명도 차이가 심홍색과 초록색의 채도 차이만큼 질적으로 구별되는 간격을 점한다는 의견도 제기될 법하다. 이 의견이 타당하다면, 무채색의 연속 스펙트럼을 엄연히 서로 다른 이미지들 사이의 간격으로부터 무한한 색깔들이 촘촘히 창조되는 일종의 흑백영화로 관조하는 일도 가능할 듯싶다. 영화도 감독의 책략에 따라 총합계된 쇼트들 아닌가. 이 점에서 쇼트는 조각일 터이다. 조각은 지각의 순간에 고정된 이미지의 일면이리라.
이렇게 회색에 관한 사유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영화 ‘페니키안 스킴’을 다각적·정합적으로 이해할 만한 요령이 회색에 집중된다는 판단에 놓인다. 이 판단은 의아할 수 있다. 웨스 앤더슨이 정교한 수준을 넘어 강박적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섬세한 미장센을 자랑하는 영화감독으로 이미 유명하기에 그의 영화를 떠올리면 극도로 오색찬란한 미장센이 쉽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허다한 전작들에서 화려한 미장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최신작 ‘페니키안 스킴’은 캐릭터의 성격과 미장센의 구조를 ‘회색’의 이중성과 창조성으로 바라볼 때, 그 내용 전개와 연출 방식이 더 설득력 있게 이해될 수 있다.
자자는 드라마틱한 이중성을 지녔다. 그는 수많은 암살 시도로부터 여러 번 살아남은 인물로, 작품 속에서도 수차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의 의식이 깨어 있는 상황은 컬러 화면으로, 추락이나 위해 때문에 그의 의식이 잠든 가사 상태는 흑백 화면으로 연출된다. 후자에서 그와 리즐의 과거를 뚜렷한 기독교적 이미지로 환상성이 짙게 반영하는 데에 동원된 흑백 연출은 웨스 앤더슨이 연출했던 ‘프렌치 디스패치’(2021)에서도 쓰였었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흑백 연출이 기사 취재 대상 인물들의 과거를 현실적으로 재현하는 시퀀스에 나타난다는 변별점은 짚을 필요가 있다.
자자의 인생도 참 극적이다. 기편(欺騙)으로 부정한 재산을 모은 거부였던 그는 일생일대의 계획이 결국 한낱 기편(器片)들로 부서지는 바람에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평범한 엔딩을 맞는다. 경제적 수준이 급락한 자자의 인생 흐름은 오프닝 시퀀스에 펼쳐진 비행기 추락의 수직성에 맞닿은 듯하다. 옥수수밭에 떨어져 엎드린 그를 직부감 쇼트로 보여주는 것도 수직의 감각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타이틀 시퀀스도 직부감 쇼트로 강조된다. 이 시퀀스는 흑백 간의 잿빛 스펙트럼이 얼마나 무지갯빛처럼 컬러풀한지 증명하는 듯하다. 이 시퀀스는 욕조 안에서 반신욕 중인 자자의 모습과 화장실 바닥을 오랫동안 보여주는데, 그 바닥 타일이 백색과 연회색과 진회색으로 조립됐음과 변기 뚜껑이 흑색임을 볼 수 있다. 이윽고 영화 제목이 떠오르고서 화면이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의 순서로 변한다. 이 세 컬러는 색의 삼원색에 준한다. 무채색 이미지는 자자의 회색 정장과 리즐의 흰 수녀복 같은 의상을 통해 주로 구현됐고, 유채색 이미지는 작품 전반의 미장센을 통해 폭넓고도 다채롭게 구축된 편이다. 늪에 빠졌던 자자의 얼굴과 온몸도 흙탕물로 물들어 아예 잿빛투성이가 되지 않았던가!
자자를 없애려는 적대자들의 흑막은 그 흙탕물보다 더 음험하고 새까맣다. 그래서 그가 자신의 재산 상속자로 지명한 자식은 너무 어린 아들들을 대신한 딸 리즐이었다. 리즐은 수련수녀로서의 고결한 성스러움을 지키려는 인물에서 점차 세속적 즐거움에 빠져들어 가는 인물로 변한다는 점에서 이중성을 지녔다. 초반에는 남동생들에게 성경의 창세기를 읽히는 성직자였던 그녀가 중반에는 비욘과 가볍게 키스하기도 하고 끝내 환속하여 엔딩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트럼프 카드놀이를 즐기는 변화는 그 이중성을 부드럽게 보여준다. 리즐 역의 미아 트리플턴이 선보인 냉담하고 무뚝뚝한 표정 연기는 리즐이 엔딩에서 말하는 트럼프의 상징 이미지가 다른 셋이 아닌 하트라는 점과도 흥미로운 상보 관계를 이룬다. 목석같은 리즐이 진중하되 냉혹한 인물로 비치지 않는 까닭은 아마 그녀의 마음속 애정에 있지 않을까?
그녀의 은근한 사랑에 못지않게 웨스 앤더슨이 이 영화에 쏟은 애정도 상당히 열렬하게 다가온다. ‘페니키안 스킴’은 그 애정이 헛되지 않게 회색 위주의 차분한 미장센을 통해 우아한 아름다움과 그 생성 메커니즘을 함께 보여주는 계책이 정밀히 운용된 영화로 해석된다. 이 특색은 비교적 그 자체로 영롱하고 찬연한 광채를 발하는 미장센을 보여준 이전 영화들과 변별된다. 플롯은 자자를 입체적 인물로 다루는 블랙코미디의 전형성을 띠기도 하나, 씁쓸함을 소소한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적정한 유머 감각도 안정적으로 구사됐다. 비극적 상황에서 헛웃음을 짓는 환장할 코미디, 이 회색 유머가 웨스 앤더슨의 고유색일 것이다.
영화 ‘페니키안 스킴’ 줄거리
아나톨 자자 코다는 수많은 암살 위협에 시달리면서 생존해 온 거물 사업가다. 그는 30년간 꿈꾸어 온 일생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딸인 수련수녀 리즐을 불러 상속자로 지정한다. 자자는 리즐과 가정교사 비욘을 데리고 페니키아로 떠난다. 자자와 리즐은 경쟁사들의 방해와 우여곡절을 뚫고 계획 완성과 관계 회복을 위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웨스 앤더슨 감독 소개
웨스 앤더슨은 미장센을 정교하고 세밀하게 꾸미는 데에 유능한 영화감독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은 그의 미장센 감각이 빼어나게 발휘된 영화로 평가된다. 콘시어지 구스타브와 호텔 보이 제로가 귀한 그림과 막대한 유산을 둘러싼 도난 및 살인 사건에 휩싸이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에서 파스텔톤의 고운 색채, 수직성을 강화하는 미장센의 구축과 카메라의 이동은 동화처럼 환상적인 세계를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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