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의 성패는 첫 삽을 뜨기 전 이미 결정돼 있다는 말이 있다. 설계와 발주, 공정과 비용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 시작의 힘을 산업의 언어로 정착시킨 인물이 있다. 한미글로벌 창업자 김종훈 회장이다. 한미글로벌은 국내 1호 건설 감리·컨설팅 기업이다.
김 회장이 강조해 온 ‘프리콘(Pre-construction)’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건설을 단순히 짓는 행위(시공)에 가두지 않고 기획부터 완공까지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PM(Project Management, 건설사업관리)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건설을 기획과 관리 산업으로 재정의한 그는 지난 30년간 한미글로벌의 성장을 만들어 왔다.
이제 한미글로벌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창립 30주년을 맞는 2026년, 매출 5000억 원 시대를 열고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글로벌 톱5 PM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이다.
중동에서 시작된 질문, 한국 건설의 답으로
1949년생인 김 회장은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던 서울사대부고를 1968년 졸업한 뒤 서울대 건축학과를 거쳐 중동 건설 현장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1970년대 후반 사우디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던 ‘한양’ 차장으로 근무하며 목격한 중동의 현장은 그에게 엔지니어로서 하나의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했다. ‘왜 같은 조건의 공사라도 결과가 판이하게 다른가’라는 문제였다.
그는 답을 프로젝트 초반 기획 단계에서 찾았다. 설계와 발주 이전 단계에서 성패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후 1984년부터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실무를 이어가며 기획과 관리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당시 국내 건설업계는 일단 짓고 보는 ‘빨리빨리’식 시공이 주류였다.
이런 관행은 결국 1990년대 중반 성수대교(1994년)와 삼풍백화점(1995년) 붕괴 사고로 이어진다. 그는 선진국형 관리 모델인 CM(건설사업관리) 도입 필요성을 확신하며 1996년 한미파슨스(현 한미글로벌)를 설립했다. 국내 최초로 CM을 도입해 중동 시절부터 품어온 문제의식을 비즈니스로 증명했다.
창업 직후 맞닥뜨린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그는 살아남는다. 발주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관리 역량을 찾기 시작했고 한미글로벌은 사전 관리를 통한 비용 절감이라는 기회를 파고들 수 있었다. 한미글로벌은 타워팰리스, 상암 월드컵경기장, 국제금융센터(IFC 서울) 등 한국 건축사에 등장한 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국내 건설산업에 새로운 표준을 세웠다.
부의 시작점 타워팰리스
김종훈 회장의 성공은 타워팰리스라는 상징적 프로젝트에서 시작된다.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초고층 주상복합 건설을 위해 한미글로벌은 기획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CM 역량을 총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이 행보는 그의 경영 철학과 시장을 읽는 영리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1999년 분양 당시 IMF 외환위기 직후 냉각된 시장 분위기와 초고층 주거 형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타워팰리스는 미분양 사태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열망했던 김 회장은 직접 구매하며 돌파구를 열었다. 타워팰리스1차 분양 당시 공급면적 약 183㎡(약 55.6평), 전용 137.24㎡(약 41.5평) 한 호실을 매입한 것이다. 공급 기준 평당 1000만 원 정도(5억 7000만 원 선)로 당시 서울 아파트 평균 분양가 두 배를 웃도는 고분양가였다.
관리의 달인이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었을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정부 경기부양책과 저금리 기조가 맞물려 2003년 입주와 함께 5년 간 가격은 세 배 가까이 뛰었고 이후 강남 부동산 상승기를 거치며 상징적 자산으로 떠올랐다.
2025년 12월 기준 동일 면적 실거래가는 46억 9000만 원으로 분양가 대비 약 8배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특히 김 회장은 매입 과정서 레버리지를 극대화한 구조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자본 효율성 측면에서 독보적인 투자로 평가받는다.
타워팰리스는 2000년대 초 한국 부동산 시장서 ‘부의 상징’으로 기획되고 선전된 상품이었다. 최고 60층이 넘는 초고층 설계와 호텔식 커뮤니티, 단지 내에서 생활이 완결되는 원스톱 시스템은 대중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비춰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장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 상상 속 삶이 현실이 되자 시장은 열광했다. ‘주상복합=고급 주거’라는 공식이 이때부터 자리 잡았다. 이 성공을 계기로 서울과 지방 곳곳에 초고층 주상복합이 들어섰다.
현재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타워형 구조 특성상 환기와 평면 효율성에 한계가 있고 재건축이 어려운 구조라는 점에서 투자 매력은 과거 대비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도곡동 입지는 견고하다. 대치동 학군과의 접근성, 강남 업무지구와의 거리, 교통 인프라까지 갖춘 입지는 꾸준한 수요를 낳고 있다.
꿈의 직장 만들기
김 회장은 저술가로도 알려졌다. 2010년 11월 출간된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에서 그는 기업의 목적을 사람의 행복으로 정의한다. 구성원이 행복해야 고객과 주주도 행복하다는 신념 아래 직원들이 출근하고 싶어 안달하는 회사를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2020년 6월에 출간된 「프리콘」은 업의 본질을 정리한 실무서다. 1931년에 완공된 미국 뉴욕을 대표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같은 역사적 사례부터 김 회장이 50년간 2500여 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얻은 실질적인 경험이 수록됐다.
그의 경영 철학은 명확하다. “건설은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며 결국 사람을 이해해야 완성된다.”
그래서 소통을 강조한다. 그가 책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직 내부뿐 아니라 발주처와 협력사까지 이해관계자 간 조율 능력이 업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코스피에 상장된 한미글로벌 최대주주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약 10.4%(113만 9920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6년 4월 2일 기준 한미글로벌의 주가가 3만 원 안팎에서 거래됨에 따라 그가 보유한 주식 가치는 약 330억~4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글로벌 무대로 확장된 프리콘
올해 30주년을 맞는 한미글로벌은 60개국에 진출하며 글로벌 PM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매출 역시 4000억 원대를 넘어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성장축은 뚜렷하다. 중동 대형 프로젝트, AI 데이터센터, 원자력 발전. 이들 사업은 모두 복잡도가 높고 초기 설계 중요성이 절대적이다. 프리콘 철학이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영역이다.
김 회장은 2026년 신년사에서 “과거의 성공 방식서 벗어나야 한다”며 AI와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한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나아가 올해 경영 방침 슬로건을 ‘미래를 설계하고 뉴 비즈니스를 창조하자’로 정했다. 2026년 한미글로벌의 목표는 매출 5000억 원 시대를 열고 AI와 원전이라는 신성장 동력을 장착해 글로벌 톱5 PM 기업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경영 비법은 단순하다. 소통 잘하는 회사가 경쟁력 있는 회사다.
30년 전 ‘관리’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던 경영자는 이제 AI와 데이터, 에너지 산업을 이야기한다. 산업은 변했지만 본질은 여전히 같다. 시작을 설계하는 힘과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한미글로벌의 오늘은 그 철학이 쌓아 올려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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