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으로 고유가·고환율·고물가가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1980년대 초에도 당시 이란혁명으로 새로 정권을 잡았던 호메이니가 2차 석유파동을 일으켜 세계 경제를 강타했다. 유가는 배럴당 $13 수준에서 $40에 육박하며 치솟았다. 2차 석유파동(1979~1980)은 현대경제사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를 세계에 각인시킨 결정적 사건이었다.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으로 물가는 폭등하는데, 생산 비용 부담으로 경기는 침체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의 폴 볼커 당시 연준(Fed)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0%대까지 올리는 '충격 요법'을 사용해 세계적인 고금리 시대를 열었다. 당시 중화학 공업 육성에 집중하던 한국은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 큰 타격을 입었다. 1980년 한국경제는 현대사 사상 첫 -1.5%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980년 28.7%, 1981년 21.4%에 달해 민생 경제가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과잉 투자된 중화학 공업에 대한 투자 조정과 에너지 효율화 정책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공급중시경제학이다. 기존의 수요 관리 정책(정부 지출 확대)으로는 석유파동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없어서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고 규제를 혁파하여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2차 석유파동은 공급중시경제학에 토대를 둔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 같은 시장 중심 경제 체제로 전환되는 분기점이 되었다.
공급중시경제학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완화하면 기업의 투자와 개인의 노동 의욕이 고취돼 전체 생산(공급)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세율이 너무 높으면 오히려 경제 활동이 위축되어 세수가 줄기 때문에 세율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장기적으로는 세수도 증가할 수 있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영국의 ‘대처리즘’은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기업의 투자 재원을 확보하게 하고, 민간 부문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가로막는 규제를 철폐하여 생산성을 높이고자 했다. 또 정부 지출 축소를 통한 효율적 자원 배분을 위해 공공 부문의 규모를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초 미국과 영국은 고물가와 경기 침체 탈출에 성공했다. 기업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기술 혁신과 산업 경쟁력이 강화되었다. 시장 중심의 경제 구조 체질 개선은 이후 장기적인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1982년 –1.8%였던 미국 성장률은 1983년 4.6%, 1984년 7.2%로 반등했다. 영국도 1980년 –2.1%였던 성장률이 1983년 4.2%로 치솟았다. 이것이 이어져 마침내 이에 뒤졌던 동유럽의 1989년 장벽 붕괴와 구소련의 1991년 붕괴로 이어졌다.
지금도 국가 경쟁력 강화나 기업의 국내 유턴(리쇼어링)을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고 규제를 혁파하는 정책들은 공급중시경제학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현재 중동전쟁으로 신음하는 한국경제도 1980년대 그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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