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불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국내 앵커 1호로 회자되는 봉두완 아나운서가 어버이날 뉴스를 시작하며 날린 일갈이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어버이날 시청자들의 가슴을 흔든 말이 또 있었을까.
엊그제가 어린이날. 저출산으로 아이들이 귀해지다 보니 죄다 금쪽이고 '샤오호앙띠(小皇帝·소황제)'들이다. 얼마 전 사람이 꽉 찬 버스 안에서 목격한 장면 하나. 할머니가 좌석에서 일어나며 옆에 서 있는 다른 할머니는 제쳐두고 부모 손을 잡고 탄 어린아이에게 자리를 내주는 걸 봤다. 아이 부모도 망설이지 않고 아이를 앉혔다. 작년부터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들이 넘쳐나니, 미래 세대만큼은 대우해 줘야 한다는 사회적 묵계가 생긴 것인가.
오전반·오후반으로 나눠 콩나물시루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노장년 세대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낳은 자식 세대를 거쳐, 이제는 손자 하나만 있어도 감지덕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버이날은 어린이날과 고작 사흘 차이라, 공휴일로 지정하기가 곤란했는지 국회에서 열 번 이상 발의됐지만 무산됐다. 자녀들은 어버이날인 내일은 일하고 부모님과 주말 외식 나들이 약속을 잡았을 듯하다.
어버이날은 원래 '어머니날'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6·25 난리에도 가정을 꿋꿋이 지켜낸 어머니들을 격려하고자 기념일로 지정했다. 나중에 아버지도 가세하며 '어버이날'로 거듭났다. 부모님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은 '현금'과 함께하는 '시간'이고, 반대로 가장 반기지 않는 선물은 '책' '케이크' '꽃'이라는 사실쯤은 알고 있으리라.
미국에는 어머니날(5월 둘째 주 일요일)과 아버지날(6월 셋째 주 일요일)이 따로 있다. 어머니날엔 카네이션과 카드는 기본이고, 스킨케어 제품이나 화장품, 스파·마사지 이용권 등을 선물로 챙긴다. 아버지날엔 손편지에 벨트·지갑 같은 남성용품, 이어폰 등 전자기기, 스포츠 경기 관람권까지 선물한다. 지난해 미국의 어머니날 소비 지출은 341억 달러(약 50조 원)로 아버지날보다 35% 더 많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식당가와 호텔에는 대목으로 경제 유발 효과가 엄청나다.
한 가지 제안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로 이어지는 2세대 국민 축제를 3세대로 확대해 챙기면 어떨까. 마침 1997년 제정된 ‘노인의 날(10월2일)’이 있으니 그날을 활용하면 되겠다. '노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명칭도 '노인의날' 대신 '그랜드파·마 데이'로 바꾸자. 그리곤 사회적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조부모 세대와 손자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날,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로 탈바꿈시켰으면 한다.
손자·손녀가 직접 쓴 감사 카드와 손편지를 받고 가만히 있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디 있겠나. 개인 순자산의 상당 부분이 60대 이상에 집중돼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신없이 키운 자식들보다 사랑스러운 손주들이 시간만 함께해 준다면, 조부모는 아낌없이 줄 것이다. 소상공인들이 힘겨울 때, 정부가 앞장서 이날을 띄운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 세대 간 갈등을 녹이고 쏠쏠한 경제 유발 효과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다. 모두에게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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