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 고속도로 휴게소에 고향 부모님이 싸주는 음식과 반찬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는 경우가 꽤 있다는 뉴스에 분개한 이들이 많았다. 정성이 버려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백악관 일행이 중국을 떠나면서 받은 선물과 기념품 등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무리 트럼프라도 그렇지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중 간 불신 속에 중국산 물품, 선물 등은 차원이 다르다. 영국 대사관 직원이 중국에서 선물로 받은 찻주전자가 설거지 도중 떨어져 깨지면서 도청 장치가 노출된 사례가 있다. VIP 행사 때 쓰는 출입증에 박힌 RFID(무선주파수 식별) 칩에 뭐가 들어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트루스 소셜에 수시로 글을 올리는 트럼프조차 방중 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2018년 10월 세 개의 폰 중 보안 장치 없는 개인 아이폰을 쓰다가 중국에 도청당한 것이 뉴욕타임즈에 보도돼 망신당한 바 있어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보안 수칙을 따랐을 것이다. 미 방문단원들은 스마트폰, 노트북 등을 '에어 포스 원' 내 전자파 차폐시설(Faraday bag)에 고이 모셔놓고 일정을 소화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 고위 대표단이 중국과 러시아 등 적성국 방문 시 현지 물품은 안 보는 데서 폐기해 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요란하게 언론에 노출된 것은 처음이다.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짐작건대 올 초 중국 국가슈퍼컴퓨팅 센터(NSCC)가 "불타는 중국(Flaming China)"이라는 해커 집단에 의해 역대 최대 규모로 털렸다. 거기 6000개 중국 정부 조직의 기밀 정보가 망라되어 있었으니 미국이 뭔가를 캐치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 측에 허튼짓하지 말라고 초장에 경고한 것 아닐까. 왜냐하면 올가을 시진핑의 미국 방문, APEC(아·태경제협력체, 11월 중국 선전), G20 정상회의(미국 마이애미) 때 양국 정상이 세 차례나 더 만나야 하니까.
이번에 시진핑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방어할 것인지"를 직접 물었으나 트럼프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대가로 트럼프는 중국으로부터 보잉 여객기 200대 구입과 미국산 대두와 원유 수입, 대이란 중국산 군사 장비 제공 금지 등의 약속을 받아냈다. 군부 숙청 등으로 권력 기반이 흔들린 시진핑으로서는 트럼프가 와서 체면을 세워준 것만도 고마운데 대만 관련 큰소리까지 칠 수 있었으니 그 대가를 꽤 치렀음에도 흡족해 했으리라.
미국은 대신에 같은 시기 하와이에서 열린 미 육군협회(AUSA) 심포지엄에서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을 동북아 군수 허브이자 미군 억지력의 핵심 이빨로 언급했고, 힐버트 주한 미8군 사령관도 주한미군을 대북 방어에만 쓰는 것은 '비극적인 낭비'라면서 대만 관련 대중 견제 의지를 드러냈다. 실리를 챙긴 트럼프가 침묵에 묻힌 명분을 보완한 것처럼 보인다.
세계 패권국 수장이 뭐가 무서워 스마트폰을 2박 3일 동안 못 쓰는 불편을 감수하고, 또 그렇게 만든 중국산 물품 전량을 쓰레기통에 처박으면서 응수했겠나. 우리가 보안폰을 쓴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다. 미국이 보안폰이 없어서 그렇게 철저히 보안 수칙을 지켰겠나. 선물도 그렇고. APEC에 참가할 우리 중국 방문단이 배워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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