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봉한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호퍼스’ 현대 인류를 야생으로 인도한다. 게다가 다름아닌 과학의 힘을 빌려서. 자연 속에서 태어나 문명 세계로 진화한 인간이 잊고 살았던 야생을, 환경이 아니며 보호의 대상이 아닌 생의 현장으로 맞닥뜨리는 발상전환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원시 속으로 걸어가자는 건 아니다. 철저히 ‘현실적’인 방법, 과학적 방식으로다.
‘호퍼스’는 ‘뛰어 들어간다(hop)’과 ‘동물 모양 인형’이란 뜻을 가진다. 생태파괴를 막으려 발버둥 치던 주인공 메이블은 우연히 동물 로봇 비버 속으로 들어가 그의 뇌가 된다. 그러고 비버 대왕이 통치하는 포유류 세계의 일원이 되고 그의 ‘오른발’이 된다.
생태계를 보존하고 싶은 주인공 청년의 열망은 동물들을 인간세계로 끌어들인다. 동물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뇌가 되어 인간 세상을 조종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생태를 파괴하려는 인간에게 맞선 것이다. 그들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화해를 이끈 것은 불[火]과 물[水]이다. 과학기술이 초래한 재앙(불)은 자연(물)을 통해 해소되고 동물과 인간(인간이란 동물과 인간 아닌 동물)은 따뜻하게 서로를 안는다. ‘동물 모양 인간’과 ‘인간 모양 동물’은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삶을 영위한다. 이게 영화 호퍼스가 말하는 ‘생명’의 모습이다.
동물계에는 룰(rule)이 있다. 영화도 그것을 말한다. 동물 세상에서 포식자로부터 먹잇감을 구조해 준 주인공은 이 일로 재판을 받는다.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에게 자기 생명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먹이사슬이란 규칙을 인정해야 한다. 나의 생명은 중요하지만, 때론 다른 존재를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인간이란 자신의 것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생명체는 언어, 기억, 지능 등이 없거나 딸린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생태계의 생명들은 각자의 몫이 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한다.
어떤 개체는 물을 정화하고 어떤 개체는 시체(쓰레기)를 분해한다. 범고래는 물개를 공 삼아 배구를 하고, 잎꾼개미는 버섯 농사를 지어 먹는다. 일벌은 알을 낳으려는 일벌을 공격하고, 원숭이는 동성애로 동맹을 맺어 서열을 상승시킨다. 코끼리는 자신들만의 장례 의식이 있다. 시체를 쓰다듬고 나뭇잎과 흙으로 덮어주며 며칠 밤낮을 머물며 애도한다. 이 모든 일들에 평가와 편 가르기로 바쁜 건 인간뿐이다.
포유류의 왕 비버 대왕이 문제아 인간(숲을 파괴하는 시장)을 보호하고 구해준 건 인간 또한 포유류의 일원, 즉 그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동물들이 인간을 무던히 참아주고 있는 게 맞다. 우리의 모태인 자연이 철없는 자식을 무한히 품어주고 있는 게 맞다.
호핑 기계를 발명한 박사의 연구실로 주인공이 다시금 뛰어드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어쩐지 이 애니메이션의 시즌2를 예고하는 것 같다. 청년에서 중년의 박사가 된 주인공 메이블의 다음 장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인류의 멋진 다음 장도. 오만함을 내려놓고 야생 속 동행의 삶을 시작한 인간의 연대기야말로 진짜 진화의 방향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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