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내기’가 서울의 두터운 벽을 뚫는 일은 쉽지 않다. 도시는 크고 심장부는 변방에서 올라온 사람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발자크 ‘고리오 영감’의 라스티냐크, 파리의 법대생 또한 그러했으리라. 그는 프랑스 남서부 앙굴렘 지방에서 파리로 올라와 보케르 부인의 하숙집에서 고리오라는 문제적 늙은이를 만났던 것이었다. 큰딸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는 귀족에게 시집 보내고, 작은딸 델핀 드 뉘싱겐은 은행가에게 시집 보내고, 그러고도 두 딸을 위해 마지막 희생을 바친 부성애의 화신. 라스티냐크는 두 딸과 차례로 인연을 맺게 됨으로써 도시의 심장부의 비밀에 접할 수 있게 된다.
라스티냐크는 운이 극히 좋은 편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눈이 나빴던 것이다. 필자가 서울에 처음 대학에 가겠다고 올라와 마주친 곳은 ‘겨우’ 영등포역이었던 것이다. 영등포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대학교 쪽으로 가려면 신길동, 구로공단역 같은 후미진 동네를 거쳐가야 했던 것이다. 서울은 그 시절에 전체적으로 아주 허름했지만, 그럼에도 플라자호텔이며 조선호텔 같은 곳, 사령관으로, 낙동강 방어선 지켜낸 미 육군대장 월턴 해리스 워커를 기념하는 워커 힐 같은 곳은 존재했던 것이다. 나이가 한참 들 때까지 그런 동네를 만나지 못했다면 운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전춘화 작가의 단편소설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만나’를 읽다 보니, 이 작가도 운이 아주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어째서 이 소설의 주인공 윤화는 연변에서 서울로 유학 와 학위논문까지 쓰고도 머물러 거쳐 가는 곳이 중국 교포들, 조선족들, 예전 구로공단 노동자 거주 구역의 자취 강한, 겨우 대림역 근처였더란 말인가. 어째서 이 작가는 서울의 ‘심장부’는 볼 수 없었더란 말인가. 대림역에 서울의, 한국의 전형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결코 운이 좋을 수 없었음이다.
여기 윤화와 춘애라는 두 여성이 있다. 연변 출신들이다. 춘애는 서울에 돈 벌러 왔다 허리 다친 아버지 인연으로 서울에 왔고, 윤화는 인문학쪽 공부를 하러 왔다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은 케이스다. 윤화는 글을 쓰는 한편으로 돈벌이를 위해 공장에 들어가는데, 사출기가 있는 화장품 용기 포장 공장이다. 여기서 만난 조선족 여성이 춘애, 그녀는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현장에 익숙한 사람답게 윤화에게 일의 요령들을 가르쳐준다. 공장 노동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손과 몸은 기계의 속도에 맞춰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조선족’으로 인식하는 윤화의 날카로운 심리는 나쁘지 않다. 서로 다른 처지와 입장을 가진 춘애와의 갈등과 해소 라인도 전형적인 구성법에 딱 들어맞는다. 대림역을 중심으로 이주 ‘조선족’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드러낸 것도 좋다고 할 수 있다.
다 받아들여도, 작가는 더 비밀스러운 곳까지 파헤치든가 아니면 서울의 다른 심장부를 찾아 나서야 한다. 전형이 상투적인 것이 되는 위험성, 더 날카롭게 의식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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