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계를 대표했던 가수 옥희(본명 김광숙)가 신장 신우암 투병 끝에 73세로 세상과 이별했다.
배우자인 전(前) 세계 권투 챔피언 홍수환 선수는 21일 본지에 "옥희가 전날 20일 경기도 수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들이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신장암 진단을 받은 뒤 1년간 투병 생활을 해왔으나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임종 시에 고인과 어떤 대화를 나눴냐는 질문에 홍수환 선수는 “아이들은 내가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다고 답했다. 순간 그는 고개를 숙이며 슬픔어린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 홍수환 선수에 따르면, 옥희가 가장 좋아했고 잘 불렀던 노래는 의외로 자신의 노래가 아닌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이었다. 홍수환 선수는 아내가 그 노래를 즐겨 불렀다며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곤 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에는 현 가수협회회장인 임주리와 재하, 노사연 부부, 조항조 등 동료 가수들의 조화화환을 비롯, 낯익은 정치인들의 화환과 조기 휘장도 다수 눈에 띠었다.
옥희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악극단 활동을 하던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배화여중 재학 시절 가수 현미와의 인연을 계기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본격적인 가수 인생은 1968년 5인조 여성 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데뷔하면서 시작됐다. 서울시스터즈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해외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홍콩과 중동,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지를 누볐다. 옥희는 훗날 방송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누비던 K팝의 원조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특히 서울시스터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대형 무대에 진출하는 등 한국 대중음악 해외 진출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당시 옥희는 해외에서 '키티 김(Kitty Kim)'이라는 활동명으로도 알려졌다.
해외 활동을 마친 뒤 귀국한 옥희는 1974년 솔로 가수로 전향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데뷔곡 '나는 몰라요'는 발표 직후 큰 인기를 얻으며 그에게 MBC 10대 가수상을 안겼다. 이후 '눈으로만 말해요' '어디에 있을 것 같아' '아 그날이' '이웃사촌' '두 손을 잡아요'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1970년대 중후반 여성 가수계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대중음악평론가들은 옥희의 가장 큰 강점으로 폭발적인 가창력과 섬세한 감성 표현을 꼽는다. 화려한 외모와 무대 장악력, 그리고 여성 특유의 섬세한 정서를 담아낸 창법은 당시 대중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의 인생은 음악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옥희는 1970년대 후반 복싱 세계챔피언 출신 홍수환과의 사랑으로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다. 두 사람은 진지한 교제 끝에 딸을 얻었지만 결국 결별했다. 이후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사람은 약 16년 만인 1995년 재결합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재결합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찬양 앨범을 발표하고 자선음악회 무대에 오르는 등 부부애를 과시했다.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옥희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이후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에도 '소설 같은 사랑', '돈 때문에', '인생 열차' 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지난해 발표한 '고마운 사랑'과 음악인 모임 예우회의 프로젝트 음반에 수록된 '인생 열차'는 고인이 남긴 마지막 녹음 작품으로 기록됐다.
암 투병 중에도 무대를 향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옥희는 올해 3월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정열의 꽃'을 열창하며 여전한 가창력을 선보였다. 이는 생전 마지막 방송 무대가 됐다.
가요계 동료들은 옥희를 "언제나 따뜻하고 정이 많았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였지만, 옥희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과 재기의 연속이었다. 해외 무대 개척자, 1970년대 톱가수, 세기의 커플, 그리고 끝까지 노래를 놓지 않았던 현역 가수로서의 삶은 한국 대중가요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나는 몰라요'와 '이웃사촌'으로 기억되는 가수 옥희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지만, 특유의 힘 있는 목소리와 무대를 향한 열정은 오랫동안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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