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인간은 미래의 흐름을 알지 못한다. 그 불투명한 흐름 속에서 악마나 피맺힌 희생양이 되기도 하는 인간의 운명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오직 신만이 인간의 미래와 운명을 알 것이다.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의 욕망과 배반 앞에서 어쩌면 신조차 당황할지도 모를 일이다. 신이 미래와 운명을 이미 결정했다면, 인간은 자유로운가?
자파르 파나히의 인생은 부자유하다. 이란 정부는 그의 행보를 반체제 혐의로 삼아 그의 영화 촬영과 출국을 금했다. 그러함에도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로 저항했다. 그는 영화 촬영이 금지되고 가택연금이 된 자기 처지를 영화에 담았다. ‘택시(2015)’와 ‘노 베어스(2022)’가 그 예다. 전자는 그가 직접 택시를 운전하면서 실제 승객의 언행을 담은 다큐멘터리, 후자는 국경을 넘을지 고민하는 그 자신의 삶을 허구적 내러티브들과 능란히 엮은 걸작이다.
다큐멘터리 양식도 잘 활용하는 그의 ‘그저 사고였을 뿐’은 극 영화 양식의 최신작이다. 이 영화는 과거에 자신을 고문했던 이란 정부 소속 하수인으로 의심되는 의족 착용자를 납치해 복수를 고민하는 바히드의 선택을 진중히 보여준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운명의 흐름 속에서 가해와 피해의 구도가 완전히 반전될 때, 가해자의 쪽에 자리한 피해자가 복수의 감행에 대해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빛의 활용과 카메라의 위치에 연결해 연출한 영화로 분석되면, 그 시청각적 입체감이 뚜렷이 파악될 수 있다. 이 분석 체계에서 빛은 일종의 상징물로, 인간의 보편 운명을 뜻하는 검은빛과 인간의 보복 선택을 뜻하는 붉은빛으로 크게 나뉜다.
검은빛은 배경 전반에 깔려있다. 영화는 어두운 밤에 前 고문 기술자 라시드 샤흐사바리가 차를 운전하는 앞모습을 정면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 오프닝 쇼트는 중요하다. 영화의 의미 요소들을 거의 다 압축했다고 여겨져서 그렇다. 그는 밤에 시선 확보가 어려워 우연히 개를 친다. 가까운 미래조차 못 보는 인간은 미지의 어둠 속에서 죄악을 범하게 되는 운명인 듯하다. 어둠은 그 무지를 상징한다. 그의 정면이 카메라에 담기면, 그 카메라의 뒤쪽이 그의 시선에서는 앞쪽을 점한다. 그의 정면만 담긴 오프닝 화면에서는 그가 바라보는 미래가 제거되는데, 이는 악인의 운명도 역전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가 개를 비의도적으로 친 것에 관해 그의 처와 딸이 상이한 의견을 표함도 의미심장하다. 처는 신의 뜻에 따라 결정된 우연한 사고였을 뿐이라 말하고, 딸은 그러함에도 개를 친 것은 그라고 말한다. 이 논쟁은 자유의지가 결정론에 대결하는 형국이다.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입장에 따르면, 그는 책임을 져야 한다. 결정론에 따르면, 그에게는 책임이 없다. 진짜 대결은 그 다음이다. 그렇다면 신처럼 더 큰 힘을 가진 상부의 명에 복종하(는 수밖에 없었)던 부하의 악행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 용서받을 수 있다면 어느 수준까지 그런가.
정부 하수인에게서 고문을 겪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그의 의족 소리를 기억하는 바히드는 그런 대결을 온몸으로 앓는다. 라시드가 방문한 정비소의 직원인 바히드는 어둠 속에서 그 의족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그의 걸음으로부터 듣는다. 이 장면은 인간의 복잡한 갈등이 촉발됨과 함께 영화의 빛이 소리에 연동됨도 보여준다. 고문을 겪었을 때 눈이 가려졌던 바히드가 그늘 속에서 소리를 들어 복수심을 일으키는 장면은 그의 삶이 여전히 국가 폭압의 어두운 트라우마로 뒤덮여 있음을 상징한다.
라시드가 그 고문 기술자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바히드의 무지도 검은빛에 연결되는데, 그는 주로 뒷모습과 옆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인물의 뒷모습을 담는 카메라는 그 인물이 내다보는 앞쪽도 담기 마련이다. 옆모습의 촬영도 인물이 보는 앞쪽의 존재감을 상대적으로 더 드러낼 수 있다. 이 점들을 종합하면, 바히드의 뒷모습과 얼굴 측면이 화면에 많이 담긴 것은 가해자로 변한 피해자가 자기 미래를 어떻게 스스로 선택할지 고뇌하는 윤리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의 투영으로 판단된다.
복수의 현장은 붉다. 바히드가 묶은 라시드의 정면이 화면에 담기고, 붉은 불빛이 그 화면을 물들인다. 초반에서 개의 피가 라시드의 차에 묻었었다는 점을 기억하면, 붉은빛은 죄악과 복수의 상징적 핏빛으로 해석될 수 있다.
놀라운 점은 바히드가 라시드의 신원을 정확히 알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그의 임신한 처까지 도우며, 결국 그를 죽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피맺힌 원한이 있어도 최악의 죄까지는 범하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의 윤리적 가능성을 내비친다. 라시드의 처가 출산하는 것을 책임지고 돕는 의사도 타인의 고통 앞에서 선행을 택할 수 있는 윤리적 인간상으로 포착된다.
영화는 의족 소리와 유사한 소리를 듣는 바히드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그의 뒷모습과 그가 보는 앞쪽이 다 보이는 이 열린 결말은 관객의 마음에 다음 질문들을 남길 만하다. 그는 복수(復讐)하지 않을 것인가? 또는 처음의 선택을 반전시켜 복수할 것인가? 만약 자신이 그라면 어떻게 선택할지 묻는 관객도 있을 법하다. 이렇게 ‘그저 사고였을 뿐’은 명확히 정해지기 어려운 복수(複數)의 질문을 관객의 심중에 남긴다.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2025)’ 줄거리
밤에 차를 운전하던 라시드 샤흐사바리는 우연한 사고로 개를 치게 된다. 그가 차 수리를 위해 방문한 정비소에는 바히드가 있었다. 바히드는 자신을 고문했던 정부 하수인의 의족 소리를 기억하고 있는데, 그 의족 소리가 라시드로부터 들림을 확인한다. 바히드는 라시드를 미행해 납치한다. 바히드는 라시드의 정확한 신원을 확증해 줄 이들을 찾아다니고, 라시드는 자신이 정부 소속 고문 기술자였다고 자백한다. 바히드는 라시드를 안 죽이고, 버린 채 귀가한다. 바히드는 집에서 라시드의 의족 소리와 유사한 소리를 또 듣는다. 영화는 그 소리를 가만히 듣는 그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영화 ‘하얀 풍선(1995)’은 백색·흑색·적색을 모두 품고 있다. 새 금붕어를 사달라고 청하는 소녀 라지에는 흰 히잡을, 그 청을 거절하는 모친은 검은 히잡을 두르고 있다. 라지에가 원하는 금붕어는 머리 쪽만 조금 붉고 몸은 거의 다 희다. 라지에의 옷도 백색과 적색이 배합된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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