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튜버가 산 패딩이니까” “그 인플루언서가 머문 숙소니까.” 최근 한국 청년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가장 뜨거운 단어는 단연 ‘디토(ditto) 소비’와 ‘디깅(digging) 문화’다. 라틴어에 어원을 둔 ‘디토’는 ‘나도 마찬가지’라는 뜻이고, 영어단어 ‘디깅’은 ‘특정 분야를 깊게 판다’는 의미다. 언뜻 보면 타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유행 집착과 개인의 독특한 덕질로 서로 상반되어 보이지만, 사실 이 두 현상은 오늘날 청년들이 맞닥뜨린 거대한 사회심리학적 기류에서 나온 일란성 쌍둥이다.
과거의 모방 소비가 전 국민이 똑같은 롱패딩을 입는 획일화된 대세 추종이었다면, 지금의 디토 소비는 훨씬 영악하고 정교하다. 수많은 선택지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청년들은 선택 장애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인 ‘FOBO(Fear of Better Options)’를 겪는다. 단 한 번의 소비 실패도 허용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자신과 외형이나 가치관, 추구가 비슷한 특정 인플루언서나 버티컬 커머스(전문 쇼핑몰)를 내세워 그들의 안목을 그대로 복사한다. 의사결정 과정을 생략하는 일종의 합리적 지름길을 택하는 셈이다.
이 지름길을 통과한 청년들은 곧바로 자신만의 참호인 디깅으로 들어간다. 과거의 오타쿠나 덕후가 현실도피적으로 방구석으로 숨어들었다면, 요즘의 디깅러들은 위스키, 레트로 카메라, 특정 캐릭터 등 자신이 꽂힌 세계관에 지갑과 영혼을 쏟아붓고 이를 SNS에 당당히 증명한다.
이 기묘한 연쇄 반응의 기저에는 효능감의 상실과 고립감이라는 사회심리학적 결핍이 자리 잡고 있다. 고성장 시대가 끝나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긴 사회에서, 청년들은 학업이나 취업, 내 집 마련처럼 장기적인 노력으로 성취감을 얻기 어려워졌다. 거대한 사회 구조적 장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 이들은, 즉각적으로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눈을 돌린다.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끝까지 파고들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는 것(디깅)은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심리적 효능감을 준다.
또한, 디토 소비를 통해 취향이 같은 이들과 연결됨으로써, 원자화된 현대 사회에서 오는 고독을 해소하고 느슨한 연대감을 확보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의 작동이다. 이러한 현상은 청년들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일종의 달콤한 생존법과 같다. 거창한 미래 대신 오늘의 확실한 몰입과 행복을 선택한 그들의 에너지는 트렌드를 주도하는 문화적 자산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타인의 안목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디토가 일상화되면, 스스로 사유하고 취향을 개척하는 주체적인 안목은 퇴화하기 마련이다. 내 생각과 선택마저 외주를 주는 삶은 자칫 유행이 지나간 뒤에 공허함과 카드 명세서만 남길 뿐이다. 디깅 역시 삶의 전환점을 만드는 건강한 활력소가 아닌,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한 마취제로 변질된다면 또 다른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라며 타인의 삶을 복제하는 편리함 속에서도, 오직 나만이 파고들 수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 균형감. 정보 과잉과 불안의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지름길이 아닌 ‘진짜 나’를 대면하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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