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대학가나 오피스 빌딩 밀집 지역의 풍경이 완연히 달라졌다. 과거 밤거리를 메웠던 고성방가와 만취 비틀거림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이른 아침 한강변을 달리는 러닝 크루의 숨소리와 아침 일찍 무알코올 음료를 나누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청년들의 활기다. 대한민국 청년 세대 사이에서 급부상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가 바꾼 일상의 단면이다. '맑은 정신(sober)으로 탐구하는(curious)'은 술을 마실 조건이 갖춰졌어도, 스스로 비음주나 절주를 선택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 과거의 금주가 종교적 계율이나 체질에 따른 수동적 자세였다면, 소버 큐리어스는 맨정신이 주는 삶의 주체성과 효율을 능동적으로 향유하는 흐름이다.
이는 글로벌 담론에 뿌리를 둔다. 2018년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루비 워링턴이 동명의 저서를 출간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청년층의 보편적인 문화가 됐다. 전 세계 팬데믹을 경험한 Z세대가 타인과의 관성적 관계보다 나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의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경향은 한국 사회로 넘어오며 더욱 역동적 형태로 진화했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직장 회식에서 술을 강권하던 문화는 전시회 관람, 팝업스토어 탐방, 맛집 투어 등 다양한 활동으로 대체되고 있다. 청년들이 술잔을 멀리하는 현상의 이면에는 즐겁게 건강을 관리한다는 트렌드와 고도화된 자기관리 성향이 맞물려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30 세대 응답자의 상당수가 과거보다 음주량을 줄였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 신체적 건강과 다음 날 컨디션 유지를 꼽았다. 고물가와 취업난이라는 힘든 현실 속에서 불필요한 숙취로 주말이나 일상의 몰입도를 망치지 않겠다는 지극히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 깔려있는 셈이다. 이들에게 맑은 정신은 단순히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통제하는 일종의 자산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소버 큐리어스가 한국 사회 특유의 수직적, 집단적 음주 문화에 대한 건강한 반기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주류 문화는 조직 내 유대감 형성을 명분으로 개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도구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년들은 소버 큐리어스를 통해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음료를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를 행사한다. 주류업계가 앞다투어 제로 슈거 소주나 무알코올 맥주, 논알코올 와인과 위스키를 쏟아내며 시장의 체질 개선에 나선 것 역시 청년들이 주도한 소비 권력의 변화를 증명한다. 이들은 술 없이도 깊은 대화와 연대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몸소 보여준다.
소버 큐리어스는 청년들이 한국을 더욱 성숙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리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화학적 자극을 통한 일시적인 해방감 대신, 맨정신의 명료함으로 내일을 설계하려는 이들의 태도는 건강하다. 술잔을 비우거나 내려놓음으로써 이들은 더 밀도 높은 인간관계와 생산적인 일상을 채워나간다. 청년들이 쏘아 올린 이 고요하지만 강력한 라이프스타일이 세대를 넘어 사회의 건강한 연대로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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