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의 지도교수는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 모로조프였다. 러시아인들은 평상시 이름과 중간의 부칭으로 부르거나 언론지상 등 공식상으로는 이름과 성을 부르고, 이름만 부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름만 부르는 경우는 보통 친한 사람들 사이이므로 애칭을 사용한다.
러시아 학생들이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라고 부르는 그를 라라는 한국식으로 모로조프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라라가 프로페소르 모로조프라고 그를 부르면, 그는 웃으면서도 이내 곧 정색을 하고는 “나는 프로페소르가 아니다”라고 정정하곤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학과 간판에 적힌 학과장인 자기 이름 밑에 쓰인 도첸트라는 글자를 가리키면서 말한다.
“나는 부교수다. 정교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선생님들을 모두 그냥 통칭해서 프로페서, 교수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렇게 라라가 설명하자, 그는 편안한 미소를 되찾았다.
“그런가. 그래도 우리는 그냥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라고 부르면 충분해. 여기는 러시아니까 러시아식으로 하는 게 낫지 않나.”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사실 관계를 정확히 하는 학자였다. 늘 다정하고 매너가 깔끔하면서도 냉정한 신사였다. 수업에서는 차갑고 이지적인 인상을 발산했고, 수업 후 복도에서 마주치면 다정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날카로운 눈매와 높고 곧은 콧날에, 나이에 비해 불그스름한 빛이 여전히 남아있는 뺨, 자연스럽게 뒤로 넘겨진 그레이 헤어의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러시아 학생들 사이에서도 신사로 정평이 났다. 젊은 시절에는 따르는 여자가 많아 수업하기 힘든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모로조프 교수와 학과 사무실에 앉아 논문 지도를 받을 때면, 그는 언제나 라라가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냉철하고 칼날 같았다. 그녀가 성심성의껏 써서 흡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도 잘했다고 칭찬했고, 정확한 이해가 안 된 채 참고문헌의 자료를 인용해 놓으면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갔다. 그는 라라가 보아야 할 자료 리스트들을 모두 암기력으로 알려주는 교수였다. 마치 지도 학생이 그녀 하나뿐인 듯 착각할 정도로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저널리즘을 전공하니까 기자로서 직접 취재해서 논문을 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직 언론인들의 리스트와 연락처를 라라에게 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러시아 언론인 인터뷰를 다니게 되었다.
앵커인 블라디미르 리스티예프 ORT 러시아 방송사 사장을 인터뷰하기로 약속이 된 날이었다. 리스티예프 사장의 비서가 약속 시간을 잡아주었다. 블라디미르 모로조프 교수의 지도 학생으로 논문을 쓰기 위해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자 선선히 수락해 주었다. 비권위적인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다르구나. 서울의 스타일과는 많이 달랐다. 러시아 인텔리 스타일로 보였다.
겨울로 넘어가는 늦은 가을이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라라가 과거 러시아 황실의 말 수련장이었다는 마네쥐나야 광장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외제 승용차 한 대가 와서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앞머리가 약간 벗겨진, 고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어디 가느냐고 묻고는 같은 방향이니 타라고 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름이 뭐냐는 일상적인 물음들이 이어졌다.
“오스탄키노에는 무슨 일로 갑니까?”
“논문에 쓰기 위해 언론인들 인터뷰하러 갑니다.”
“기자가 되려고 하나요?”
그렇다고 대답하자 다시 묻는다.
“어떤 주제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가요?”
“청소년 문제라든가 사회적 주제에 대해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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