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유럽 젊은 세대의 여행 방식에 흥미로운 변화가 생겼다.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와 함께 휴가를 보내는 ‘다세대 가족여행’이다. 여행업계는 부모와 성인 자녀가 함께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현상에 주목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라고 한다. 부모가 숙소와 식사, 렌터카 비용을 부담하면 자녀는 혼자 여행하거나 친구들과 동행할 때보다 훨씬 적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젊은이들은 이런 여행을 ‘all inclusive paga papà’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하면 ‘아빠가 결제하는 올인원 휴가’이다. 친구들과 여행하면 건마다 더치페이해야 하지만 부모와 떠나면 상황이 다르다. 호텔은 이미 예약돼 있고, 자동차도 준비돼 있으며, 레스토랑에서 계산서를 집어 드는 사람도 부모다.
피상적으로는 그저 경제성이 이유로 보이지만 이는 유래 깊은 인간 행동의 한 형태이다. 즉 사회생물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혈연선택’이 근저에 깔려있다. 혈연선택은 생명체가 자신의 생존과 번식뿐 아니라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의 생존과 번식에도 자원을 투자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양육하면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투자는 자녀가 성인이 된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라. 부모는 낯선 사람에게는 쉽게 지불 하지 않을 수백만 원을 성인 자녀의 항공권과 호텔비에는 기꺼이 쓴다. 이를 ‘유전자가 여행비를 지불한다’고 단순화하면 안 된다. 인간의 행동에는 사랑과 문화, 경제적 조건, 가족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혈연선택 이론을 활용하면 성인자녀에게까지 관대한 인간 성향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젊은 세대는 비싼 집값과 임대료, 불안정한 고용 때문에 자산을 축적하기 어려워진 반면, 부모 세대 상당수는 주택과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자산이 사후에 상속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요즘은 생전에 자녀와 함께 소비하기를 원하는 부모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서 ‘SKI: Spending Kids’ Inheritance’, 즉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을 미리 써버리기’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보면 성인자녀와 부모가 함께하는 가족여행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자녀는 지출을 줄이면서 휴식의 시간을 갖는 기회이고, 부모는 자녀와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부모의 자원이 자녀 세대로 자연스레 이전되면서 동시에 가족의 유대도 강화된다. 진화적으로 잘 발효된 친족투자와 세대 간 자산 이전이 바로 한 장의 ‘아빠카드’ 영수증에서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아빠가 결제하는 올인원 휴가’를 철없는 젊은이들의 무임승차로만 보면 안 된다.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가까운 혈연에게 시간과 자원을 편향적으로 투자해 왔다. 과거에는 그것이 사냥한 고기와 안전한 잠자리였지만 현대에는 항공권과 리조트, 렌터카와 레스토랑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빠의 카드가 결제되는 가장 현대적인 여행 트렌드의 이면에는 수십만 년 된 인간의 오래된 계산법인 혈연선택이 함께 작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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