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국장(國章)은 황금 쌍두독수리로, 두 머리가 각각 동쪽(아시아)과 서쪽(유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서쪽 머리는 서방의 제재를 맞아 실명했고, 동쪽 머리는 중국 시진핑이 주는 사료만 바라보느라 목이 꺾였다”는 자조적 유머가 나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2년 블라디보스톡 APEC(아태경제협력체) 이후 야심차게 추진해 온 동방정책이 실패했음을 시사한다.
푸틴의 동방정책의 상징, 동방경제포럼(EEF)이 블라디보스톡 극동연방대학교 캠퍼스에서 개최됐다. 하지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해외 정상급 참석자는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대통령과 몽골 오츠랄 총리 정도에 불과하다. 러·우 전쟁의 여파다.
10년 전만 해도 동방경제포럼은 한국 대통령(박근혜·문재인)과 일본 아베 총리가 연이어 참석하고, 중국 시진핑 주석과 인도 모디 총리도 다녀갈 정도로 소문난 잔치였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러·우 전쟁 통에 러시아와 매우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푸틴 곁에 나란히 서서 사진 찍혔다가 서방의 눈 밖에 나고 싶은 정상은 없을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라면 예외일 수 있다. 북한은 러시아에 인민군을 파병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빼앗겼던 러시아 영토 쿠르스크를 우크라이나로부터 탈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푸틴 역시 이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동방경제포럼에 즈음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특히 2년여 전 양국 합의로 짓고 있는 두만강 자동차 다리의 개통식이 열릴 수도 있다. 위성 사진상 다리 옆에 헬기장까지 있으니, 푸틴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리가 위치한 하산까지 270km를 헬기로 이동할 수도 있고, 기존 철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선이 고착되고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에 빈번히 노출되자 총동원령 카드를 고민하고 있다. 장기화된 전쟁과 누적된 사상자로 골머리를 앓는 푸틴으로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것이며, 북한군 증원을 학수고대할 것이다. 철도에 비해 병력과 무기를 한층 은밀하게 수송할 수 있는 러·북 국경 다리 완성은 푸틴이 축하하고도 남을 호재다.
김정은 역시 병력 2만 명, 불량품을 포함한 재고 포탄 1500만 발, 탄도미사일 240여 발을 제공해 최대 144억 달러의 수입을 올려 재미를 본 만큼, 푸틴이 5만 명 추가 파병, 신형 KN-30 미사일을 요청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5년 가까이 끌어온 러·우 전쟁도 결국 양측의 피로감이 극에 달해 끝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 역시 전후 복구에 나서며 피폐해진 경제를 회복하려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러시아는 뛰어난 제조업 역량과 자본을 갖춘 대한민국이 필요하다. 우리 역시 중국에 빼앗긴 러시아 시장을 되찾아야 한다. 러시아 역시 내심 바라는 바다. 물밑에서 철저히 준비할 때다.
푸틴은 2016년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총화전진(總和前進)' 휘호를 전달한 바 있다. 그렇게 한국과 손잡고 나아간다면, 푸틴의 동방정책 역시 회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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