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날카롭게 동그랗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동그라미(2024)’를 본 후 든 판단이다. 이 영화는 인기 미술가의 조수로 일하다가 자전거 사고로 팔을 다쳐 해고된 주인공 사와다의 황당한 출세기와 허망한 실패담과 뜻밖의 재성공을 보여준다. 그가 예술가로서 출세와 좌절을 겪는 중심에는 그가 생각 없이 그린 동그라미 이미지가 자리한다. 이렇게 영화는 제목 그대로 이야기에서 속출하는 각양각색의 동그라미 이미지들 때문에 ‘동그랗게’ 다가온다.
동그랗(다고 여겨지기 쉽)게 구축된 이 영화를 자세히 분석하면, 둥글지만은 않음을 보게 된다. 오히려 각기 다른 방향의 힘들이 날카로운 충돌을 일으키는 운동들이 영화의 중심에서 집합됨을 찾을 수 있다. ‘동그라미’는 그림 이미지, 배우의 대사, 연출의 방식을 통해 사와다의 동그라미 그림이 다양하게 해석되는 미학적 사회현상을 극화함으로써, 예술 작품의 미적 가치가 해석되는 데 관여하는 수용자들이 각자의 해석을 제출하고 그 정당성을 겨루는 첨예한 논쟁을 의미화한 영화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의 주요 이미지는 원(圓) 그림이다. 원은 수학적으로 한 중심으로부터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으로도 정의된다. 원이 예술성도 지닌 도형이라는 점에서, 영화에서 다종다양하게 형형색색으로 빈출하는 동그라미 그림들 자체가 미학적 해석들의 다채로움을 시각화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미학적 해석들이 모여 예술계와 같은 커다란 전체집합을 이룬다고도 볼 수 있다면, 그 집합의 한 점일 수용자는 일종의 원(元)이기도 하다. 元은 집합의 원소를 뜻하는 수학 용어다. 그 원소들은 팽팽하게 갈등하고 반목한다. 자기의 미학적 해석이 타자의 것보다 우월하고 타당하다는 증명이나 설득으로써 아름다움의 진리를 한층 더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염원이 누구에게나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願)들은 서로를 찍어누르려 치열히 엎치락뒤치락한다.
남을 찍어 눌러 우위를 점하려는 운동은 수직의 방향성을 띤다. 수직성에 연관된 대사들이 여러 번 발견됨은 흥미롭다. 사와다와 일하는 타 조수가 미술 보조 작업이 단순 반복 작업이라 지루하다고 불평하면서 차라리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더 낫겠다고 말하는 초반 장면이 있다. 사와다가 그 조수에게 편의점에서 일하라고 답하나, 그 조수는 자신이 대학원 학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편의점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고학력자와 편의점 직원 간의 일정한 사회적 위계를 상정한 대사다. 사와다가 해고된 후 일하게 된 편의점에서 미얀마 출신 동료 직원이 일본인 고객에게서 국적 차이로 인해 조롱당하는 장면도 외국인을 향한 내국인의 왜곡된 특권 의식을 드러낸다. 예술이 부유층의 이윤을 위해 이용될 뿐이라 외치는 시위자들의 대사도 빈부 격차에 따른 예술 향유의 문제를 명시한다.
미학적 해석들의 다양성과 그 정당성도 배우의 대사를 통해 문제화된다. 사와다가 멍하게 그린 동그라미 그림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세계의 평화와 만인의 연대를 수준 높게 구현한 예술 작품으로 그 의미와 가치가 격상되나, 그와 알고 지내던 만화가 지망생은 그의 그림이 무가치하다고 갈파한다. 반면, 초절정 인기 미술가가 된 사와다를 취재하려 모인 수많은 기자는 그의 그림에 관한 거창한 해석들을 내놓는다. 이 극명한 대조는 한 텍스트가 완전히 다른 두 방향으로 모두 해석됨을 보여준다.
연출 방식도 영화의 성취와 한계를 모두 드러낸다고 판단된다. 자신도 예상 못했던 유명세를 누리게 된 사와다는 가뜩이나 당황하고 있던 차에 자신을 취재하려고 찾아온 기자들을 보고 더 당황하게 된다. 그렇게 구름처럼 모인 기자들과 사와다가 부감 앵글로 촬영된다. 이 부감 앵글은 사와다의 권태로운 일상을 수평적 흐름으로 보여주던 앵글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수직성을 통해 하루아침에 급변한 인생을 어색하게 느끼는 그의 이질적 심리를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이질감은 사와다가 개인 미술전을 여는 후반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다만, 건물 밖에 혼자 있던 사와다에게 분홍빛의 왜소한 여인이 말을 거는 이 후반 장면은 잔상 효과를 다소 과용하는 연출로 인해 비현실적 이질감이 심한 한계가 있다.
이 글도 영화 예술 작품에 관한 미학적 해석들의 원환에 속한 한 점일 뿐이다. 근거 없는 자의적 감상과 최소한의 근거를 갖춘 체계적 분석은 구별되겠으나, 어쩌면 이 지적도 다른 관점에서 비판될지 모른다. 이렇게 첨예한 미학적 해석들은 다채로운 꽃들로 피어 각자의 아름다움을 다투는 동산을 이룰 것이다. 이 방원(芳園)은 무한히 둥글게 맞물린 방원(方圓)의 각축장일 터이다. 이처럼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동그라미’는 동그랗게 날카롭다.
영화 ‘동그라미(2024)’ 줄거리
인기 미술가의 조수로 일하던 사와다는 자전거 사고를 겪어 팔을 다치는 바람에 해고된다. 편의점에 취직한 그는 편의점 동료 직원이 미얀마 출신이어서 일본인 고객의 놀림을 당하는 것을 보거나 불교 용어를 혼자 외우는 등 따분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중, 그는 집에서 백지 위의 개미를 보다가 아무 생각 없이 검은 동그라미 이미지 몇 개를 그 백지에 그린다. 그 동그라미 그림은 SNS에서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고도의 미감으로 형상화한 예술 작품으로 해석되어 전 세계인의 열광적 인기를 얻게 된다. 하루아침에 스타 예술가가 된 사와다는 성취의 부진, 이웃의 질투, 개인전의 좌절을 겪은 끝에 자신의 새로운 동그라미 그림이 담긴 캔버스를 주먹으로 쳐 뚫어버린다. 그렇게 동그란 구멍이 난 그 그림은 해외의 미술 전문가들에게 그 미적 가치가 인정되어 호평을 얻는다. 이 사실을 모르고 거처를 옮긴 타지에서 자전거를 타던 사와다의 프레임 아웃 후에 충돌음과 자전거 바퀴의 공회전 소리가 들리면서 영화가 끝난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2021)’는 4살에 부모의 이혼을 겪고서 자신의 부친과 의절한 전과자 야마다의 삶을 다룬다. 야마다는 오징어를 다듬는 새 일에 종사하면서 겉으로는 안온히 지내는 듯하나, 연을 끊은 부친이 고독사했다는 부고를 접하고 격한 심적 동요를 앓는다. 오기가미 나오코는 야마다의 이러한 평화로운 일상과 괴로운 내면을 완만한 정서적 흐름 속에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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