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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다는 것에 틀린 이면…이상(異狀)과 이상(異常)
이하배의 소통과 열음…<6>소통열음 인성열음-<1>역지사지와 여행정신
이하배 필진페이지 + 입력 2015-03-21 14:28:29
 ▲ 한국소통문화아카데미 이사장(성균관대학교 전 유학·동양학부 교수) ⓒ스카이데일리
갑동이가 아니야, 갑순이야
 
다름들에 격리되어 견문이 좁아, 생각도 막혀 있는 자를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라 부른다 했다. 개구리가 환경에 크게 갇혀 있고 붙들려 있다는 뜻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볼 수 있는 공간이 강하게 제한되어 있어, 우물 밖의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는커녕, 바깥 세계가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제한된 시야(視野)와 청야(聽野)에 따른 경험과 더불어, 그 생각크기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노자는 세상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추할 따름이라면서, 보통사람들의 붙들린 판단을 벗어나려 하고 벗어나라 한다. 늘 ‘노자2’를 고민하는 ‘노자1’이다.
 
보고 듣고 배운 것에 갇혀 있는 보통의 우리들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세계가 우물 속으로부터 보이는 하늘보다, 상대적으로 약간 넓을 뿐이다.
 
사람들 각자의 ‘우물 경계(境界)’는 ‘나바( )’에 의해 정해지는 측면도 있으나, 경계(警戒)가 삼엄한 감옥에 갇혀있지 않는 한, 이 경계는 자신이 정하는 측면도 있다.
 
감옥은 본래 힘 있는 자들이, 그 힘이 정당하든 부당하든, 그들 눈에 잘못했다라고 여겨지는 혹은 여기고 싶은, 힘없는 사람들의 행동반경을 그들의 있는 힘으로 심하게 제한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외적인 감옥은 떠나려 해도, 내적인 감옥은 제한이라 생각지도 않을 뿐 아니라, 탈출하려 하지도 않는다. 아니 그것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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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한 것은, 인정도 않으려 하고, 별로 보려고도 알려고도 않는다. 이들은 서로를 제한하지만, 생각의 크기는 결국은 시야와 청야에 우선권을 양보하게 된다.
 
아무리 ‘이 세상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고 우겨 봐도, 보고 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보고 인정할 때는, 종종 ‘어라,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봄, 경험 혹은 다름의 만남이 중요하다.
 
다름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간과 쓸개의 거리도 초나라와 월나라 사이나의 거리이고, 같음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만물이 다 같은 것이라고 공자가 말했다고 장자는 말했다. 나의 관점을 떠날 때, 나만 나가 아님을 알게 되고, 너도 나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내 생각만 인정하려 하고, 내 이익만 관철하려 하고, 남들의 있음을 없음으로 여기려 할 때, 나는 ‘나 중심주의’에 빠진다. 사람들은 자신과 맞추어보고 대보고 자신과 다르면, 쉽게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만이다’는 아니다. 나만 맞다, 옳다, 존재한다, 존재해야 한다면, 이는 내가 기준이고, 척도(尺度)라는 뜻이다. ‘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너를 못 이기면, 과연 너는 옳고 나는 틀린 것일까? 내가 너를 이기고 네가 나를 못 이기면, 과연 나는 옳고 너는 틀린 것일까?’라고 장자는 묻는다.
 
승용차를 여럿이 함께 타고 가는데, 운전자가 트로트만, 클래식만 혹은 소녀시대 노래만 들으려 할 때, 작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아니, 듣지 않을 때도, 서로 자신의 음악만이 좋다고 하면서, 남들까지 내 음악을 좋아하라면서 ‘나-화(化)’시키려 한다면, 남들은 자신들이 강제당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버스에서 듣기 싫은 음악을 강제로 들어야 한다면, 보기 싫은, 듣기 싫은 광고를 억지로 보고 들어야 한다면, 문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처럼, ‘무료’로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내어야 할 차비를 안 내고 버스에 오른 것도 아닌데... 듣기 싫은 것이 있고, 듣기 싫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보기 싫은 것이 있고, 보기 싫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시골 초등학교에 풍금(風琴)은 한 대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 시간이 되면,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끙끙대며 이 풍금을 이 교실에서 저 교실로 옮겨간다. 피아노를 말로도 듣고 그림에서도 보았지만, 풍금과 어떻게 다른지 도저히 구분할 재간이 없었던 시절이다.
 
어쩌다 학부형들을 모시고 학예발표회를 열면, 합창의 중창 하모니를 몰라 음이 왜 서로 안 맞느냐고 묻는 분들도 나온다. 다른 것을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겐, 다른 것은 이상(異狀)함을 넘어 쉽게 이상(異常)하고 틀린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다름이 틀림으로 이행하는 순간이다. 이들이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니, 이들을 꼭 틀렸다고 하는 생각에 틀린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이상(異狀)함과 이상(異常)함의 시원(始原)을 함께 합리적으로 추적하면서 생각을 열어갈 필요도 있다.
 
고대 중국의 모장(毛)이나 서시(西施)는, 사람들은 미인이라 하지만, 물고기나 새의 입장에서는 숨고 피하는 대상일 뿐이다. 생각과 판단은 입장에 따라 상대적이니, 다름을 인정하라는, 아니, 다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는, 물고기들도 사람들처럼 이들을 좋아할 것이다. 혹은 만나야 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사람 중심주의’ 내지 ‘나 중심주의’에 갇힌 ‘사람-화(化)’ 내지 ‘나-화’의 사고방식으로, 이런 소통의 태도 속에는 편견을 넘어 일방과 강제가 숨어 있기 쉽다.
 
한국인이 표현하는 ‘발’을 독일인이 ‘푸쓰’(Fuss)’라 한다고 ‘발을 푸쓰라 하는 것이 아니야!’라 하고, ‘공’을 ‘발’(Ball)이라 표현한다고 ‘바보, 공과 발도 구분 못하니?’ 하며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독일인들에게는 ‘우리와 다른’ 그들의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을 ‘발’(Ball)이라 표현한다고 하여, 그들이 사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일인이 말을 할 줄 모른다며, 그들에게 우리말을 억지로 가르치고 독일어를 버리라고 한다면 어떨까? 또, 그 반대는 어떨까? A가 ‘나는 갑동이다’라고 하니, B가 ‘바보! 나는 갑동이가 아니야, 갑순이야!’ 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쉽게 웃을 것이다. 자신에 갇힌 B의 생각크기, 행동크기가 작고 모자라니, 사람들은 이런 ‘우물 안’을 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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