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종 소장(이삭애견훈련소/이웅종 동물매개치료센터)
일본에 대한 상식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충견 하치에 대한 이야기는 귀동냥으로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주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10년을 하루같이 주인을 기다렸던 충견(忠犬) 하치! 이 하치를 기리기 위해 당시 하치가 주인을 기다렸던 시부야 역 한 켠 에 하치의 동상이 세워져 있던 것이다.
후배는 동상을 보고는 장난끼가 발동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충견이란 생각에(그리고 약간의 반일감정도 섞여서) 손을 내밀더니 혀를 차며 강아지를 부르는 흉내를 낸 것이다. 그 다음은 좀 충격적이었다.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일본인들이 이 후배를 노려보며 지나가는 것이다. 몇몇은 가는 길을 멈춰 서서 후배를 노려보고, 몇몇은 휴대폰을 꺼내들어 후배를 찍었다고 한다.
“정말 X망신 당하는 줄 알았어요. 일본 애들이 그렇게 반응할 줄은…그냥 장난 친 건데”
솔직히 그 후배는 X망신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을 했다. 그럼에도 약간 놀랐던 것은 후배가 전해 준 일본인들의 반응이었다. 비록 동상이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치가 어떤 의미인지를 잘 보여준 일화라 할 수 있겠다.
충견(忠犬)의 상징 하치
하치는 1923년 12월 아키다현 오오다테에서 태어난 아키타견 수컷으로 털은 담황색, 짧은 양쪽 귀는 곧게 서고 꼬리는 좌측으로 말려있다. 하치는 이듬해 1월에 동경제국대학 우에노 히데사부로 박사에게로 보내지는데, 박사는 이 개를 하치(八)라 이름 짓고 키운다(하치가 서 있는 모습일 때 다리가 八자라 하치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 세상을 떠난 주인을 기다리기 위해 10년을 배웅한 충견 하치 이야기는 일본 열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34년 4월 21일 일본 동물 애호회와 일본견 보존회가 주축이 돼 하치의 동상(사진 오른쪽, 왼쪽은 하치 실물)을 시부야 역에 세운다. [사진=필자제공]
당시 우에노 박사는 동경 제국대학 농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출퇴근 교통수단으로 ‘전철’을 애용했다(당시로서는 딱히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시부야 역에서 전차를 타고 매일 출근을 하게 된다. 이때 하치가 우에노 박사를 배웅했던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게 이때 당시 하치가 우에노 박사를 배웅한 건 1년 5개월 남짓이었다는 사실이다.
겨우 1년 5개월 동안 배웅을 했었는데, 이게 머릿속에 각인이 됐다는 건가?
그랬다. 겨우 1년 5개월이었다. 1년 5개월간의 즐거운 배웅 이후 우에노 박사는 갑작스레 쓰러지게 된다. 바로 1925년 5월 21일의 일이다. 우에노 박사는 강의 도중 갑자기 쓰러져 급사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하치는 이후에도 계속해 시부야 역으로 나가 우에노 박사를 기다리게 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하치는 시부야 역으로 나가 밤늦도록 우에노 박사를 기다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1933년 10월 1일.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서 하치 이야기를 기사화 하게 된다. 이 기사로 하치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개가 되었고, 충견(忠犬)의 대명사가 된다.
▲ 하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포스터=필자제공]
1934년 4월 21일 일본 동물 애호회와 일본견 보존회가 주축이 돼 하치의 동상을 시부야 역에 세우게 된다(이때 하치는 살아있었다). 동상 제막식에는 하치도 주빈으로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그리고 1년 뒤인 1935년 3월 8일 하치는 시부야 강의 이나리 다리(稲荷橋) 부근에서 죽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안타까운 이야기인데,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개였기에 하치의 죽음을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결국 도쿄 대학 농학부가 주축이 돼 하치를 병리해부하게 된다. 그 결과가 좀 충격적이었는데,
“하치의 심장과 간에서는 대량의 사상충이 검출 됐습니다. 이로 인해 복수가 잔뜩 고여 고통을 받았던 것입니다. 아울러 위에서는 닭꼬치 꼬챙이가 4개 발견됐는데, 이로 인해 소화기관이 손상되었던 것으로 파악 됩니다”
병리해부까지 받은 하치는 결국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에 박제가 되어 보존되게 된다.
소설, 그리고 영화로까지 나온 하치
하치의 죽음 이후에도 일본인들은 하치를 잊지 못하고, 각종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게 된다. 하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등장하게 됐고, 에세이도 나왔으며, 전기도 나오게 된다. 종국에 가서는 영화로까지 나오게 된다(일본판이 나오고, 그 뒤에는 미국에서 리메이크 판도 나오게 된다). 사람들은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나 1987년 코우야마 세이지로 감독이 만든 <하치 이야기>를 제작했을 때 보여준 ‘정성’은 당시 일본인들이 ‘충견 하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는데,
충견(忠犬) 하치를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여선 안 돼!
이런 각오 덕분에 영화 <하치 이야기>는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가게 된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냥 개 한 마리가 나오는 이야기인데, 무슨 돈이 들어갈까? 당시 영화 제작진은 1930년대 시부야 역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영화의 주무대이지 않은가?) 당시 돈으로 세트 제작비 1억 2천만 엔을 들여서 시부야 역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게 된다(단일 세트를 제작하는데 제작일 수 70일, 동원인원만 2350명이 투입됐다. 세트만 놓고 본다면 블록버스터 급이었다). 주인공 하치 역을 맡을 개도 ‘엄정한 심사’를 거쳐 뽑았는데, 7마리의 엄선한 아키다 견을 뽑은 뒤에 다시 2개월간 엄청난 ‘연기훈련’을 시켜서 스크린에 데뷔시킨 것이었다.
▲ 하치 이야기는 소설과 에세이 및 전기에 이어 영화로까지 나오게 된다. [포스터=필자제공]
개를 기르는 이유를 말해 준 하치
강아지를 한 글자로 표현 한다면 충(忠)자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자고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냐” 라는 말이 있다. 언제나 신의(信義)를 말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신의가 필요한 순간에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하는 ‘동물’에게 열광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걸 행동으로 보여 준 개. 두 발 달린 짐승이 네 발 달린 짐승에게 감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에 조건이 붙지만 개에게는 생각이 곧 행동이다.
믿음과 신뢰가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하치는 개를 기르는 이유를 온 몸으로 보여줬던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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