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형, 2006년 3월 전 가족 귀농
▲ 2012년, 귀농 7년차 농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농촌에 가면 시골 특유의 관습과 문화를 따르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많은 귀농인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도시와 시골은 삶의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곳이 도시라면 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곳은 시골입니다. 도시가 개인 프라이버시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한다면 시골은 마을 공동체를 중시합니다.
시골 사람들은 이웃이 큰 잘못을 해도 관계가 깨지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반면 마을회의나 마을청소 등 공동의 일에 비협조적인 사람에 대해선 차가울 정도로 비난을 퍼붓습니다. 수십, 수백년 함께 살아오며 쌓여진 불문율 같은 것입니다.
마을사람과 갈등은 도시와 시골의 문화차이
▲ 귀농인들이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도시에서의 지위나 명예 등을 모두 잊는데 있다는 것을 필자는 체험으로 겪었다. 사진은 귀농지의 나이든 농부 모습. <사진=필자 제공>
귀농 8개월째 되던 2006년 늦가을. 집을 빌려준 집주인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그는 협박과 욕을 섞어가며 두 시간 넘게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놨습니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와 몰래 흉을 봤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저희는 “며칠 전 옆집 아주머니가 하시는 이야기를 그냥 듣기만 했다”고 아무리 항변을 해봐도 그분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젊은 것들 불쌍해서 집 내줬더니’, ‘배은망덕’, ‘싸가지 없는 것’ 등등. 노기어린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 말들을 듣고 있자니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순간 싸움은 사실여부를 떠나 마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이방인과 나이 든 원주민간의 대립으로 확대 돼 버렸습니다.
싸움이 일어난 2개월 뒤 저희는 집을 내줘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됐습니다. 거금 400만원을 넘게 들여 고친 집은 10개월 만에 다른 사람 차지가 됐습니다. 월세로 따지면 시골집 사는데 월 40만원 넘게 들어간 셈입니다.
집수리값 달라해도 묵부부답…수업료 40만원 낸 꼴
▲ 필자는 첫 귀농지를 전북 진안에서 시작했지만 주민과의 사소한 갈등문제가 커져 귀농 10개월만에 지금의 충남 아산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사진은 필자가 첫 정착했단 진안의 집. <사진=필자제공>
주인에게 집수리 값 달라고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묵무부답 이었습니다. 억울함을 동네사람들에게 하소연 했지만 우리 편을 대놓고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분쟁을 중재하려고 나서는 동네사람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네 귀농 선배가 저희 편이 됐지만 이분 또한 동네에서는 ‘배은망덕한 놈’으로 치부됐습니다. 결국 저희는 귀농 1년을 못 채우고 살던 집을 내놓고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이삿짐을 싸면서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동네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한편으로 모나게 날이 선 나의 모습을 자책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이상과 지향을 갖고 있더라도 동네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면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아무리 잘나갔으면 뭐하나 마을에서는 막내고 얼치기 농부인데….
지금 생각해도 마을 텃새는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혈기로만 살아온 저에겐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터닝 포인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동네 원주민과 싸우지 않고 살아간다면 귀농 절반은 성공하는 것이라 믿고 삽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