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혹은 문명화(civilization)란 18세기를 전후로 유럽에서 형성된 시대사적 관념이다. 문명화란 어떤 것일까? 이 개념의 프랑스어 연관어로 시빌리테(civilité)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면, 시빌리테란 ‘예절바름’ 혹은 ‘예의; 등을 뜻임을 알 수 있다. 대체 예절바름과 문명화 간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단어에 대립하는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명과 대립하는 의미에서의 야만. 18세기 이후 유럽사회는 문명과 야만의 새로운 대립을 발견한다. 예의를 갖춘다는 것은 교양을 갖는다는 것을 뜻했고, 그것은 문명의 세례를 받는다고 이해되었다.
18세기 프랑스의 중간계급 지식인들이 이 개념에 빠르게 호응했다. 일단 그것은 유럽 대륙 내부의 것이었다. 신대륙의 발견 이후 유럽은 자신들의 바깥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 세계의 발견은 유럽인들의 자의식고 구별되는 무엇이어야 했고, 여기에 야만은 그 다른 세계에 호응하는 명칭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18세기의 시대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8세기는 어떤 세기일까. 먼저, 루소, 볼테르 등의 계몽사상가들이 이 시대에 등장했다. 18세기 말이 되면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기도 한다. 시대는 거대한 전환을 예비하고 있었고, 중간계급 지식인들은 이 혼란을 자신들의 관념과 용어로 전유할 필요에 직면했다.
18~19세기의 전환과 문명화
궁정사회를 중심으로 일종의 위기감과 기대감 같은 것이 공존했다. 프랑스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뇌리를 장악했던 것은 ‘이성’ 혹은 ‘합리성’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들은 귀족세력들에 대항하여 헤게모니를 가져오고 싶었으나, 그 과정은 자신들의 통제 하에 이루어질 ‘합리적’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대 중간계급 지식인들이 구체제의 헤게모니에 저항하며 전환시킨 관념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기사정신과 관련된 것이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기사사회에서 개인은 강하고 힘이 있으면 폭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사회적 금지의 표식이 붙어 표출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영역에서도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언급을 통해 부르주아 지식인들이 구체제 귀족들에 대항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요컨대, 부르주아 지식인들이 행동에 대한 자기통제(이른바 교양)를 강화시켰으며, 이로 인해 새로운 시대의 문명인은 중세의 기사도적 폭력성이 아니라 시민적 예절을 갖추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부르주아적 인물형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의 예절이란 식사 자리에서 코를 풀지 않는 것, 특정 장소에서 그에 맞는 의복을 갖출 것 등 인간행위의 세부사항까지 모든 것들을 복잡하게 규정하는 것이었다. 아동기부터 일을 하고 성인과 아동의 구분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모호했던 이전 시대에 비해, 이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되는 과정, 즉 아동기의 과정이 길어졌다는 점이다.
자기 내면을 스스로 통제하고, 본능적 충동들을 억제하며 사회의 복잡다단한 예의규범을 내면화하는 과정은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인간형을 조형하는 것과 같았다.
진보의 이상으로서의 문명화
문명화의 한 축이 시민적 예의규범의 강조였다면, 다른 한 축은 군주의 자의성에 대한 견제의 의미를 띠고 있었다. 18세기에는 우리말로 ‘중농주의’라고 (잘못) 불리는 경제사상이 확산되던 시기다. 중농주의의 프랑스어는 physiocratie로서, 단어 구성의 실질적 함축을 고려하면 사회의 움직임이 자연(physio-)의 지배원리(-cratie)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다.
이 말은 이후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개념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국가의 인위적 개입 없이 시장이 ‘자연’스럽게, 혹은 자연의 신진대사가 이루어지듯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표현한 것이다. 구체제는 절대군주의 존재와 계몽적 지식인들 간의 견제와 갈등이 싹트던 시기였고, 시장의 자연흐름을 강조하는 계몽지식인들의 태도는 군주와 국가의 권위적 개입 일체를 비판하는 태도로 귀결되었다.
이것이 함축하는 것은 단순했다. 문명화란, 모든 인위적 위계를 거부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으며, 그 거대한 집합체인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대로 두면 스스로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사회라는 것이 핵심인데, 이렇게 스스로의 규범을 만들어내는 교양 있는 시민들의 세계를 당대 지식인들은 문명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는 그들이 자기 자신의 헤게모니를 찾기 위해 발명해 낸 명분이자 레토릭이었음도 분명하다.
어쨌든 명확한 것은 21세기가 된 지금도 이 문명화 원리를 지배 속에 있다는 것,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통제와 억제를 강화시켜 나가고, 나아가 18세기 유럽인들이 추구했던 그것들이 전 지구의 시민적 규범처럼 각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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