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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거대담론 이후의 시대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2-23 15:55:41
▲ 문화평론가 고태경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 항상 먼저 언급되는 것이 바로 ‘거대담론의 종언’이라는 화두다. 거대담론이란 18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된 계몽주의적 프로젝트 일체를 말한다. 예컨대, 오늘날 냉전의 이미지와 함께 수반되는 이념의 시대를 떠올릴 수 있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대립 구도는 전후 세계정치 지형의 핵심적 분할구도였다. 노동자가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혹은 생산수단을 누가 점유하고 있는가로 이 둘의 체제가 구분된다. 어떤 것이 정답이든 확실한 것은 둘 모두 체제 전반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근대적 거대담론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은 세계가 변화할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고대에도 세상이 변화한다는 자각은 있었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처럼 만물은 끊임없는 유동의 과정에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 변화가 일종의 ‘순환’의 움직임이라고 간주됐다. 오늘 저녁 태양은 지지만, 내일 아침이면 다시 뜰 테니까. 그런데 이 유동성이 더 이상 ‘순환’이 아니라 ‘단절’을 낳는다는 생각이 시작된 것은 18세기를 즈음한 시점부터였다. 핵심적인 단절점 중 하나는 단연 프랑스혁명이었다.   
 
거대담론의 시대
 
그렇다면 거대담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진보의 관념을 들 수 있다. 18세기에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인류의 도덕이 진보할 거라 믿었다. ‘교양’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화두로 부상했고, ‘계몽’은 구습으로부터의 탈피를 통해 인류의 도덕적 진화를 가져올 거라 간주됐다. 18세기 말은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시대였고, 이후 진보는 주로 경제적 진보를 뜻함과 동시에 새로운 체제를 향한 정치적 도약의 함의를 띠기도 했다.   
 
개인 혹은 자아의 발견은 근대 거대담론을 떠받치는 핵심 요소였다. 근대 이전에 사람들은 지역공동체의 좁은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인식했고, 부족사회나 친족공동체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유일한 요소였다. 그러므로 독립된 자아가 존재한다는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의 혁명들이 구체제의 이러한 낡은 것들을 파괴하며 등장했다. 근대적 도시의 익명적 공간은 이전의 좁은 공동체 모델을 넘어서 ‘시민사회’나 ‘국민국가’라는 추상적이고 거대한 실체를 상상케 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 추상적 공간에서 나를 정의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근대사회 고유의 물음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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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외롭게 세계의 한복판에 던져진 개인들은 시민사회-국민국가라는 거대한 실체를 통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국민국가는 개인의 사회적 안전망과 같은 것이 되었고, 사람들은 국가의 민족성을 발견하는 데 몰두하기도 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과정들은 수많은 전쟁 및 혁명을 수반함과 동시에 국민국가의 민족주의적 열망이 폭발한 시기이기도 하다.   
 
무엇의 종언?   
 
민족주의적 열망의 부흥은 각 국가들의 건국신화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국가 간 전쟁을 부추기는 것이기도 했다. 20세기 초로 넘어오며 노동자들의 저항이 거세졌고, 러시아를 필두로 혁명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근대의 거대담론이 준거한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인류의 행복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끊임없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근대의 신화이자 근대 자체를 가능케 한 디딤돌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20세기 중반으로 넘어오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대량생산-대량소비로 요약되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노동계급들을 상당 부분 체제 내로 포섭하기 시작한다. 이제 ‘변화’가 기존 체제와의 급격한 단절이 되기를 열망하는 이들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새로운 대안적 체제가 등장할 거라는 상상 역시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한다. 1970년대 이후 도래한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기획들은 근대의 기획들을 총체적으로 해체했고,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고 간주된 냉전은 1980년대에 이르러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포스트모던’이라는 개념이 회자된 것은 대체로 1960년대 후반이었다. 1968년에 유럽을 필두로 거대한 혁명이 번졌는데, 이 혁명이 주목을 끌었던 핵심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혁명들과는 달리 기존 거대담론의 산물들을 강력하게 비판했다는 점이다. 거리로 나온 학생들은 놀랍게도 노동조합의 상층부를 관료주의적 단위라고 비판했고, 기존 좌파 정당들을 구체제의 산물로 비난하기도 했다.   
 
노동과 민족을 중심으로 구획되었던 이념의 대립 구도는 인종과 젠더라는 또 다른 범주들의 구분법으로 다각화되어야 했고, 근대적 거대담론의 일원론적 시각은 전체주의적인 것으로 비판되기 시작했다. ‘거대담론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선언은 한 시대 자체가 끝났다는 것을 말한다. 2019년이 된 현재 기존과 같은 강한 국가나 정당, 확고한 이념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근대 이후(post-modern)라는 포스트모던의 시대명칭은 근대를 넘어서 무엇이 구체적으로 도래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단지 근대라는 시대가 끝난 지점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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