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형, 2006년 3월 전 가족 귀농
▲ 2012년, 귀농 7년차 농부
언 땅이 녹으면 머지않아 꽃망울이 터지겠지요.
입춘이 지나면서 서서히 몸이 꼼지락거리기 시작합니다. 농부라고 해봤자 이제 겨우 씨 뿌리고 거두기를 7번밖에 못한 신참이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의젓하고 당당하지요. 저희는 충남 아산 송악 산골짜기에서 아이 셋과 함께 농사지으며 삽니다.
귀농하여 낯선 동네로 두 번씩 이사하면서 드디어 정착한 이곳은 우리에겐 바랄 것 없는 보금자리입니다. 우리 동네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동네를 너끈히 안아 주고 있는 봉수산이 있고 거기로부터 쉼 없이 흐르는 계곡물에 피라미와 다슬기가 사는 아주 예쁜 동네입니다.
우리가 사는 윗마을과 아랫마을 합해 유기농업을 하는 농가가 열 가구 쯤 되는데다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니 농사짓기 위해 찾아온 동네로서는 안성맞춤이지 싶습니다.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쉬는 것이 자연스런 삶
좋은 동네에서 봄에 밭 일구어 씨 뿌리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거두어들이고 겨울에 쉬며 하루하루 소박하게 사는 것이 우리 사는 모습입니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커가며 철이 들고 어른인 우리도 자연과 더불어 살다보니 뒤늦게나마 조금씩 철이 듭니다. 철따라 사니 철드는 겁니다.
도시에서 살 때는 여름을 시원하게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궁리를 하며 살았다면 여기서는 여름은 뜨겁게 겨울은 춥게 지냅니다. 원해서라기보다는 여건이 그리 만듭니다. 한여름 땡볕 아래서 김을 매야합니다. 겨울엔 산으로 땔감을 하러 다녀야 합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가지면 집으로 들어와 쉽니다.
▲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농부의 삶을 꾸려가면서 다른 어려움은 그 속에 녹여내고 있는 필자 부부의 귀농생활이 행복해 보인다. <사진=필자제공>
예를 들면 아침에 ‘오늘은 밭에 김을 얼마쯤 매어야지’ 하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몸의 상태에 따라, 혹은 누구의 방문이 갑자기 이루어져, 혹은 소낙비가 내려 계획이 물거품이 되기도 합니다.
시시 때때로 경험하는 생명의 신비
처음엔 이런 일들에 안절부절 하는 마음이 많았던 것 같은데 안절부절 하는 마음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됨을 알아차리고 오늘 못하는 것을 내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유로움이 조금씩 생겨납니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 농사하기 때문에 여름에 한창 김매기 해야 하는 데 장마가 시작되면 참 난감하고 걱정스럽지요. 하지만 비를 막을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합니다.
장마철에 풀이 허벅지까지 자라도 어쩔 수 없지요. 나중에 풀을 낫으로 벱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 하는 겁니다. 농사를 사람이 짓는 것 같지만 하늘과 땅이 짓는 것이며 사람의 손길이 약간 보태어져 이루어짐을 농사 경험이 짧은 저도 인정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농사지으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자연을 크게 해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참된 길임을 알게 됐다는 점입니다.
▲ 우리의 시골 정취는 어디를 가든 아담하고 정겹고 조용하다. 귀농부부는 도시의 묵은 때를 털고 그 속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느리고 단순한 것을 소중히 했다.
농부로 살면서 그 길을 걸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생명의 신비를 시시 때때로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거대한 자연의 조화로움 속에 내가 자연스럽게 잇대어 사는 것이 기쁩니다.
농부의 길은 숨은 행복 찾기의 다른 말
지금 이렇게 시골에서 살기로 작정하기까지는 여러 해 동안의 고민과 준비가 있었지요. 저희 부부는 서울에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맞벌이하며 전셋집 옮겨 다니며 살았고 주중에는 직장에 매어 주말에나 온 식구가 마주 앉아 밥 먹는 일상이 되풀이 되었답니다.
함께 살아도 각자 바쁘고 힘든 삶에 치어 서로를 돌보아주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지 부부 싸움도 잦아지고 가족으로 공통분모가 점점 사라져가는 느낌으로 살고 있었지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먹거리나 가족관계에 대해 새롭게 배우며 실천하게 되었고 우리가 꾸려야 할 가정의 모습과 우리의 미래도 다시 그려보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좋은 먹거리를 먹고 서로를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쁘고 복잡한 도시보다는 느리고 단순한 시골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책이나 인터넷, 언론 등 기회 닿는 대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사는 분들의 삶을 엿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런 다음 도시에서 자란 저는 귀농학교를 통해 시골 살이 준비도 하고 주말농장도 다니며 농사짓기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 시골의 정취는 예나 지금이나 자연 눈썰매를 타는 기분이다. 동네의 앳덴 어린아이들과 어릴적 추억을 생각하면서 타볼 수 있는 눈썰매는 귀농생활의 또 다른 기쁨이다.
직장 다니며 짬을 내어 이런 준비과정을 갖는 것은 쉽지 않았고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에는 확신이 자리 잡기 시작하게 됐지요. 우리 부부가 시골 살기로 작정하면서 가장 큰 마음의 결단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칙에 합의하고 나니 다른 문제는 별로 어려울 것이 없었지요. 물질적으로 부족해 조금 불편하더라도 맘 편히 서로를 해치지 않고 도와주며 평화로운 관계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 여깁니다.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는 일은 아마 행복이라는 숨은 그림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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