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우(자유기고가)
‘부모에게 효순(孝順)하는 자는 내생(來生)에는 천상(天上)에 태어나 온갖 낙(樂)을 받을 것이나 그 은혜는 가히 다 갚지 못하리’
세존(世尊, 석가모니를 높여 이르는 말)이 여러 대중을 데리고 거닐다가 해골 한 무더기를 보았다.
부처는 해골더미를 향하여 이마를 땅에 대고 정중히 예배했다. 이를 보고 아란(阿蘭)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삼계의 큰 스승이고 사생(四生)의 아버지이다. 여러 사람이 귀의하고 공경하는 터인데 어찌하여 해골더미에 예배를 하시나이까”
부처는 대답했다.
“아란아. 비록 네가 나의 큰 제자로서 출가한지 오래지만 이치를 널리 알지 못하는구나. 이 한 더미의 뼈는 전생에 조부모도 되었을 것이요. 또 여러 생에 거쳐 부모도 되었을 것이므로 내가 지금 예배하는 것이로다. 아란아 네가 이 한 더미 뼈를 가지고 두 몫으로 나누어 보라”
아란이 “세존이시여. 남자와 여자가 살아 있을 때는 그 의복과 생긴 모양으로 능히 구별할 수 있지만 죽은 뒤에는 마찬가지 백골이거늘 저더러 어떻게 분별하라 하시나이까”라고 답하자 부처는 “아란아. 만일 남자라면 뼈가 희고 무거울 것이요, 여자는 아이를 한번 낳을 적마다 서 말 서 되의 피를 흘리며, 여덟 섬 네 말의 젖을 먹여야 하므로 뼈가 검고 가벼우니라” 라고 설명했다.
아란은 이 말을 듣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오면 어머니의 은혜를 갚사오니까?”
부처는 “아란아. 자세히 들어라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어머니가 아기를 배어 낳느라고 열 달 동안 겪어야 하는 고통을 말하리라”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어머니가 아기를 밴지 첫 달에는 풀끝에 맺힌 이슬방울이 아침에 있다가도 한나절이 지나면 없어지듯이 새벽에는 모여 있다가 흩어져 버리는 것과 같다.
둘째 달에는 잘 끓는 우유죽이 한 방울 떨어진 것 같으니라. 셋째 달에는 엉기어진 피와 같으니라.
넷째 달에는 점점 사람의 모양을 이루는데, 다섯째 달에는 다섯 부분을 이루는데 머리가 한 부분이요, 그 팔이 두 부분이요, 두 무릎이 다섯 부분이니라.
여섯째 달에는 어머니 배속에서 여섯 정기가 열리나니 눈이 한 정기요, 귀가 두 정기요, 코가 세 정기요, 몸이 네 정기요, 혀가 다섯 정기요, 뜻이 여섯 정기니라(육근).
일곱째 달에는 어머니 뱃속에서 삼백육십 뼈마디와 팔만사천 털구멍이 생기느니라. 여덟째 달에는 뜻과 지혜가 생기고 아홉 구멍이 자라느니라.
아홉째 달에는 아기가 어머니 배속에서 먹기를 시작하는데, 복숭아 오얏(자두) 마늘이나 오곡은 먹지 않느니라. 어머니의 생장은 아래로 향하고, 숙장은 위로 향하여 한 더미 산이 있는데, 이 산 이름이 세 가지니, 한 이름은 수미산(須彌山) 그리고 업산(業山)과 혈산(血山)이니라. 열째 달에는 고통을 겪으면서 마침내 낳게 되는 것이다.
또 부처는 이러한 고통을 겪으면서 이 몸을 낳은 뒤에 다시 열 가지 은혜가 있다며 말을 이었다.
…첫째,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몸에 실어 보호해주신 은혜)이라. 여러 겁(劫) 내려오는 인연이 지중하여 금생에 어머님의 태중에 들었어라. 달수가 차갈수록 오장이 생기었고, 일곱 달 접어들며 육근을 이루었네. 태안에 아기 배어 열 달이 다가오니 순산이 언제이겠는가.
둘째,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나를 낳으실 때 고통을 마다않으신 은혜)이다. 어지신 어머님이 이내 몸 낳으실 때 오장을 육부까지 찢기고 어기는 듯, 정신이 혼미하고 몸마저 무너지니 끝없이 흐르는 피, 소와 양을 잡은 듯하다. 나로 하여 겪으신 그 고통 어디에 비길 것인가.
셋째,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자식 낳은 뒤 모든 근심, 고통을 잊어버리시는 은혜)으로 출산하고, 아기가 충실하단 말을 들을 땐 반갑고 기쁜 마음 비길 데 없었건만, 기쁨이 진정되니 슬픈 마음 다시 생기며, 아프고 괴로움이 온몸에 사무치네. 부모의 깊은 은혜 바다로 비유하랴.
넷째,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좋은 것만 찾아 먹여주신 은혜)이라. 단것은 모두 뱉어 아기를 먹이시고, 쓴 것만 삼키면서도 얼굴도 찡그리지 않으시네. 어머님의 일편단심 아기 배부르고자 사흘을 굶은들 어찌 마다하랴.
다섯째,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주신 은혜)이다. 아기는 어느 때나 마른데 눕히시며 찬바람 쏘일세라, 소매로 가리우네. 아기를 돌보노라 잠 한번 편안히 주무시랴. 어머니 크신 은혜 하늘과 땅에 견줄까.
여섯째,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먹이고 길러주신 은혜)으로 두 젖을 번갈아서 아이 배불리시는 어머니 크신 은혜 땅에나 견줄까. 아버님 높은 공덕 하늘에 비기리까. 높고 큰 부모 은덕 천지와 같사오니.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뜻 다를쏘냐.
일곱째,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언제나 깨끗이 닦아 주신 은혜)이다. 은혜가 깊을수록 얼굴은 야위었고, 기저귀 빠느라고 손발이 거칠었네. 아들딸 기르시느라고 고생은 말로 다 하랴.
여덟째,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먼 길 떠나면 돌아오도록 걱정해주시는 은혜)으로 자식이 집을 떠나 타향에 가게 되면 부모의 슬픔 마음 그곳을 따라 가네. 밤낮으로 자식을 생각하고 흐르는 두 눈물이 천 줄기 만 줄기라.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잠시인들 쉬오리까.
아홉째, 위조악업은(爲造惡嶪恩, 자식을 위해서는 마다 않으신 은혜)이다. 부모님의 은혜가 강산같이 중하거니, 깊고 깊은 그 은덕은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들이 잠시 동안 괴로운 일 당할 때면 어머님의 그 마음은 오래 두고 아프셔라.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악업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부모님이셔라.
열째,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자식을 위한 은정은 끝이 없으신 은혜)이다. 늙으신 부모 나이 백 살이 되어서도 여든 된 아들딸을 행여나 걱정하네. 부모의 깊은 은정 언제나 끊길 것인가…
아울러 부처는 청아한 음성으로 대중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왼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 어께에 어머니를 업고서 수미산을 백 번 천 번을 돌아서 가죽이 떨쳐 뼈가 들어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가 흐르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깊은 은혜는 갚을 수 없느니라”,
“어떤 사람이 손에 잘 드는 칼을 잡고, 부모를 위하여 자기의 눈을 도려내어 부처님께 바치기를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은혜는 갚을 수가 없느리라”,
“어떤 사람이 어버이를 위하여 백천 자루 칼로 자기 몸을 쑤시는데 왼쪽에서 찔러 왼쪽으로 뽑기를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깊은 은혜는 갚을 수 없느리라”,
“어떤 사람이 어버이를 위하여 뼈를 부수어 골수를 내며. 백천 개의 창끝으로 일시에 몸을 쑤시기를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깊은 은혜는 갚을 수 없느리라”
이때 대중들도 부모의 깊은 은덕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뿌리며 슬피 울면서 부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막중한 죄인이올시다. 어떻게 하면 부모의 깊은 은혜를 갚을 수 있겠나이까”
부처는 다시 말하였다.
“깊은 은혜를 갚으려거든 부모를 위하여 이 경전을 쓰며, 부모를 위하여 이 경전을 읽고 외우면 부모를 위하여 죄를 참회하며, 부모를 위하여 삼보(三寶)에게 공양하면 부모를 위하여 보시(布施)하여 복을 지을 것이니라. 만일 이런 행을 행하면 효도하는 자식이라 할 것이니라”
그때 대중들이 다시 여쭈었다. “저희들이 오늘날 어떻게 하여야 부모의 깊은 은덕을 갚겠나이까”
부처는 다시 응답했다.
“부모를 위하여 경전을 다시 널리 펼치면 이것이 참으로 부모의 은덕을 갚는 것이니라. 경전 한 권을 만들면 한 부처님을 뵈올 것이오. 백 권을 만들면 백 부처님을 뵈올 것이요. 천 권을 만들면 천 부처님을 뵈올 것이요. 만 권을 만들면 일만 부처님을 뵈올 것이니라”
이때에 아란이 부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 하오며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이에 부처는 “이 경은 대부모은중경(大父母恩重經)이니 이렇게 이름 하여 너희들이 받들어 가지거라”라고.
차치(且置)하고.
조선시대 개혁 군주 정조는 즉위 초 왕실의 원당 사찰 건립을 금지하고,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하는 등 억불정책을 폈다.
그런 그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서 화성의 화산(융릉)으로 옮기면서 불심을 내기 시작, 이듬해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자 능침원찰 용주사를 140칸 규모로 지었다.
정조를 이렇게 변화시킨 것으로 꼽히는 게 무엇일까?
바로 ‘불설대보 부모은중경(佛說大報 父母恩重經)’이다. 승려 보경에게서 받아 읽고는 크게 회심, 능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또 부모은중경 목판본으로 백성의 효심을 일깨우는 거울로 삼도록 했다.
이처럼 부모은중경은 여러 경전 가운데 ‘인간 붓다’의 모습을 가장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고두사은(叩頭謝恩)이란 말이 있다. ‘땅에 닿도록 머리를 숙이고 받은 은혜가 아주 클 때’ 쓰는 고사성어이다.
조선조 학자이자 문장가인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九雲夢)에 나오는 ‘승상(丞相)이 성은(聖恩)을 감격하여 고두사은(叩頭謝恩)하고, 거가(擧家)하여 취미궁(翠媚宮)으로 옮아가니…’나, 신재효의 판소리 여섯 마당 가운데 심청가(沈淸歌)에 나오는 ‘맹인들이 내력을 다 듣고서 고두사은(叩頭謝恩) 여짜오되…’ 등등에서 사용한 예로 등장하곤 한다.
백배사은(百拜謝恩, 백번 절하며 은혜에 사례함)이나, ‘여러 번 절을 거듭하며 사례 한다’는 뜻의 백배사례(百拜謝禮) 또는 백배치사(百拜致謝), ‘머리가 땅에 닿도록 거듭 절 한다’는 돈수백배(頓首百拜), ‘머리가 땅에 닿도록 두 번 절 한다’는 의미의 돈수재배(頓首再拜)도 비슷한 말이다.
‘네자이슈’의 서설(序說)이 너무 길었나? 아니다. 결코 아니다.
지난 금요일 절친한 후배의 빙모상(聘母喪) 자리에서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마냥 빌어 드리고 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인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빌어마지 않고 있다.
읊조리고 읊조려도 심오한 의미를 진정으로 파악하기 힘들기만 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다시금 되뇌면서 말이다.
감히, 원하건대 우리 모두 참구(參究)할 불경이 아닐까 싶다. 아니 연로한 부모님께 먼저 보여드린다면 빙그레 웃으시며 눈시울을 붉히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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