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우(자유기고가)
하찮은 물건이나 사람이라도 중요한 일을 완성할 때에는 긴요하게 쓰일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공옥이석(攻玉以石). ‘돌로 옥을 다듬는다’는 뜻이다.
시경(詩經)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낙피지원(樂彼之園, 즐거운 저 동산 속에는) 원유수단(爰有樹檀, 한 그루 박달나무 솟아 있어도) 기하유곡(基下維穀, 닥나무만 그 밑에 자라난다고)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산의 못생긴 돌멩이라도) 가이공옥(可以攻玉, 숫돌 삼아 구슬을 갈음직함을)…’
중국의 후한 말 왕부(王符)가 쓴 잠부론(潛夫論)에도 ‘…돌로써 옥을 갈고 소금으로 금을 닦는데, 물건에는 천한 것으로 귀한 것을 다스리고, 추한 것으로 좋은 것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且攻玉以石 洗金以鹽 物固有以賤理貴 以醜化好者矣)…’라는 내용이 있다.
역시 같은 뜻이다. 이럴진대 두 글의 벼리가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타산지석(他山之石)도 유사어다.
‘다른 산의 돌’이라는 뜻이다. 거칠고 나쁜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옥을 갈 수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도 자기의 지(智)와 덕(德)을 닦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란 말은 어떨까?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행동을 보면 자신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므로, 그 나쁜 행동이 스승이 된다는 뜻이다.
반면(反面)과 교사(敎師)라는 말이 합쳐진 말로 고사성어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처음 사용한 이는 중국의 모택동(毛澤東, Mao Tsetung)이다. 모택동 어록에 용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문화혁명 때 사용한 것으로 추론된다.
모택동 어록은 이렇다.
‘가장 심한 범죄를 저지른 자 이외에는 소수의 나쁜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가두거나, 제명하지 말고 단위(單位, 소속 기관 및 직장)에 남겨 그의 모든 정치적 세력을 박탈하고, 고립시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라고.
수정 자본주의자들이 백성들의 삶을 좀먹는 존재이기는 하나 그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고, 뭇사람들이 그들을 본받는 것이 얼마나 치욕인지를 깨닫게 하자는 뜻이다.
정면교사(正面敎師)란 말도 있다. 반면교사를 모방해 사용되는 용어다. ‘본받을 만한 대상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건대 반면교사는 ‘그릇된 모습으로의 교사’를, 그리고 정면교사는 ‘올바른 모습으로의 교사’를 칭(稱)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지난 10일 새벽 메카톤급 뉴스가 전달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방미(訪美) 중이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사관 인턴을 성추행한 의혹으로 경질(更迭)됐다는 보도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나 할까. 그러잖아도 남양유업 사태와 포스코 임원의 승무원 폭행 사건으로 얼룩진 세상에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엄청난 일이 또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온라인 매체를 통한 네티즌들의 기발한 패러디(parody)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이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지쥐는(grab)’ 합성 사진, 기내식 ‘포스코 라면’, 폭언과 밀어내기 횡포를 일삼은 남양유업의 ‘맛있는 우유’를 먹는 장면, 남양유업 임원들이 ‘윤창중 대변인, 감사합니다’란 글씨가 쓰여 있는 현수막 앞에서 사과하는 장면, 영화 ‘아이언맨3’ 포스터를 패러디한 ‘아이고손’등등 흥미로운 패러디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낮에는 윤창중 전 대변인 사건을 주시하고, 밤에는 남양유업 사건을 주시하자’는 일명 ‘주윤야남’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네티즌들의 기발한 발상을 운운하기 이전에 국내외적인 망신거리를 던지고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참담하기까지 한 요지경(瑤池鏡) 꼬락서니다.
1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면서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 윤창중 전 대변인은 자꾸 부풀어지는 의혹 해소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의구심을 낳고 있다는 거센 비판 속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있다. 궁색한, 곤궁스런, 가증스런 변명으로 진실 게임을 벌여보겠다고 작심한 듯 보인다.
복수난수(覆水難收)란 말이 있다. ‘엎지른 물은 주워 담기 어렵다’는 뜻이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이나 복수불반(覆水不返)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사한 말로 이발지시(已發之矢)라는 말도 있다. ‘이미 쏘아 놓은 화살’이란 뜻으로 일을 중도에 그만두기 어려운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용어다.
공자(孔子)도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네 마리 말이 끄는 아무리 빠른 전차라고 하더라도 세 치의 혀를 놀려 하는 말을 따라가 되돌릴 수 없다’라는 의미로 ‘말조심’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인간은 늘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지만 아마도 그 원흉(元兇)은 모든 것이 과(過)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우왕좌왕(右往左往)하면서, 갈팡질팡하면서 언행불일치를 표출시키는 윤창중 전 대변인을 바라보니 ‘애는 쓰나 아무런 공이 없다’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고사성어 노이무공(勞而無功)이란 성어가 자꾸 생각난다.
더불어 한 블로거(blogger)가 연초에 인터넷에 올렸던 촌평이 자꾸 뇌리를 스친다. ‘국민이 정치를 망친다’라는 책을 썼던 윤창중 전 대변인의 몰골과 함께 말이다.
‘…어제 한 말 다르고 오늘 한 말 다른 그런 사람이라면, 자기가 한 말을 파전 뒤집듯 뒤집는 그런 사람이라면, 간신은 돼도 절대로 충신이 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결코 포용의 정치를 선보인 게 아니라,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살랑거리고 알랑방귀나 뀌는 간신배, 전여옥에 이어 ‘잘 나가는 권력자에 편승하고 아부하는 박쥐같은 정치인’을 또 한명 뽑았을 뿐이다. 모름지기 리더는 간신과 충신을 잘 구별해서 써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은 그걸 구별해내는 혜안이 영 결여된 것 같다. 윤창중과 전여옥은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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