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 손실이 극심했던 베토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남겨
피아노소나타31-2번‘폭풍’작곡, 장애를 음악으로 승화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추구한 낭만주의 창시자
마음이 흔들릴 때 그의 유서를 보면 열정과 의지를 만나
친구가 말을 걸면 베토벤은 ‘대화수첩’을 꺼냈다. 말한 내용을 적어달라고 했다. 57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베토벤의 말년 모습이다.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베토벤이 귓병을 앓기 시작한 것은 26세쯤이다. 32세의 베토벤은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로 요양을 간다. 음악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을 무렵에 기약 없이 간 요양은 희망이 없었다. 청력 손실에 대한 마지막 처방이었다. 그 곳에서 베토벤의 두 동생 요한과 카를에게 쓴 편지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다. 후대 사람들이 유서라고 명명한데는 그만큼 베토벤의 절박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택하며 남긴 유서라기보다 음악가에게 치명적이었던 신체적인 약점을 딛고 음악창작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편지다.
“음악가로서 나만이 누릴 수 있었던 온전한 감각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겠어. 사람들에게 ‘더 크게 말해주세요. 나는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
베토벤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의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답답한 심경이 느껴진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반복해서 읽다 보면 고통과 좌절을 딛고 예술혼을 불태우려는 결심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마저 놓아버리게 된 베토벤을 엿볼 수 있다. “운명의 여신이 내 삶의 밧줄을 끊을 때까지는 저항하려는 결심을 가지자. 상태가 호전되든 안 되든 각오는 서 있다.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작품번호 31의 2번은 ‘폭풍’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 곡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쓸 무렵에 작곡된 곡으로 특히 3악장은 반복되는 음형이 잠재된 불안함과 두려움의 반복으로 들리다가 음형 속에 녹아있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불안함을 잠식하듯 해소하며 끝난다. 한 쪽으로 치우친 힘겨웠던 마음이 하행 선율의 피아노(악상기호p, 작게)로 모든 것을 내려놓듯 마무리된다.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내려놓았지만 오히려 창작의 열정과 자유를 찾은 것이다. 작품번호 31 이후의 소나타 작품은 이전까지와는 또 다른 양식의 음악을 추구한다. 고전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알고 있는 베토벤은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추구해서 낭만시대를 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 준 음악가다. 낭만주의의 창시자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하일리겐슈타트 이후 베토벤은 3번 교향곡 ‘영웅’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피아노협주곡 4번과 교향곡 4번, 5번, 6번을 계속 작곡한다. 청력은 호전되지 않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창작의욕은 충만했다. 베토벤도 더 이상 자신의 귓병을 숨기지 않았다. 숨길 수도 없었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은 교향곡에 악기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간 작품이다. 이 전에도 성악이 들어간 교향곡이 있었지만 이렇게 효과적으로 사용한 교향곡은 전무후무할 정도다.
베토벤은 ‘합창’의 초연을 위해 지휘봉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연주는 성공적이었다.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은 청중 쪽으로 몸을 돌려서야 관객들의 환호를 볼 수 있었다. 베토벤이 타계한 해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쓴 지 25년 후였다. “죽음이 언제오든 난 기꺼이 맞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예술적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동안은 설령 내 운명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죽고 싶지 않다. 하지만 죽음이 예상 밖으로 일찍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죽으리라. 그러면 끝이 없는 고뇌에서 해방될 수 있을 테니까.” 유서의 마지막 글이다. 25년은 예술적 재능을 계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음악가가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세상을 모두 잃은 것과 같다. 연주를 해도 들리지 않고 박수를 받아도 돌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정말 암흑 같은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빛을 보았다. 희망의 빛. 그것은 바로 음악으로의 승화, 베토벤은 예술 창작혼을 불태움으로써 불안과 두려움마저 떨쳐버릴 수 있었다.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 가끔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읽어본다. 피아노 소나타 작품번호 31의 2번 3악장을 연주하면서 사라지듯 끝나는 음악과 함께 편안해진 나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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