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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의 톡톡 클래식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불면증 치료용이었다
괴짜 피아니스트 글렌굴드 음반으로 더욱 유명해져
이지영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5-10 09:15:30
 
▲이지영 피아니스트·음악학박사
숙면을 취하고 계신가요? 일생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수면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누구나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거나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험이 있을 텐데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수면장애 환자 수는 연평균 7.9% 늘어나서 2021년 기준 70만명이 넘어설 것이라고 합니다.
 
잠들기 어려운 밤에 듣기만 해도 잠이 오는 음악이 있다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일까요.
바흐의 첫 전기를 쓴 독일의 음악학자 J.N. 포르켈은 그의 저서 ‘바흐의 생애와 예술’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불면증 극복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했는데요. 바흐의 제자였던 골드베르크와의 일화를 소개하죠. 러시아 외교관 카이저링크 백작은 독일 라이프치히에 머물 때 골드베르크를 피아노(당시 클라비코드) 연주자로 고용합니다. 백작은 심한 불면증이 있었는데요. 골드베르크는 잠을 자지 못하는 백작을 위해 밤늦게 까지 클라비코드 연주를 해야 했죠. 당시 14살이었던 골드베르크가 스승인 바흐에게 그의 고충을 얘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책에는 백작이 바흐에게 직접 곡을 의뢰했다고 적혀 있죠. 
 
이 부분은 학자들이 바흐가 카이저 백작을 위해 쓴 곡이 아니라는 근거로 얘기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바흐와 골드베르크의 관계, 골드베르크와 카이저링크 백작의 관계를 생각하면 카이저링크가 얼마든지 바흐에게 직접 요청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죠. 
 
바흐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작곡하고 받은 사례비가 무려 ‘1년 월급을 웃도는 금액’이라는 것도 학자들의 의심을 사는 또 다른 부분인데요. 실제로 불면증이 심했다면 백작에게 이 정도의 사례비가 문제였을까요.
 
이 일화는 사실 여부를 떠나 당시 연주자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 줍니다. 고용주가 잠이 들 때까지 연주해야 했던 골드베르크에게 이 변주곡은 충분히 큰 위안이 되었을 거예요. 도돌이표까지 연주하면 대략 90분 정도가 걸리는 골드베르크 변주곡만으로 다른 곡을 연주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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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베르크가 이 곡을 처음으로 연주했다는 것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바흐가 직접 붙인 ‘2단 하프시코드를 위한 아리아와 변주곡으로 구성된 건반연습곡’이라는 원래 제목 대신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불리는 이유라고 볼 수 있겠죠.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캐나다 괴짜 피아니스트 글렌굴드의 음반이 이슈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1955년에 제작된 그의 음반은 1시간이 훌쩍 넘는 긴 작품을 40여분도 채 안 되게 연주했고, 그의 독특한 연주해석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될 정도니까요. 오랫동안 묻혀 있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바흐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레퍼토리로 인식된 데는 글렌굴드의 영향도 꽤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주 자체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 곡이 잠을 재울 수 있을런지는 알 수 없죠. 연주자의 입장에서는 졸리다가도 정신이 번쩍들 정도로 어려운 곡이니까요.
 
시간여행이 주제인 일본 애니매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첫 부분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나오는데요. 장면과 이 곡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주제인 ‘아리아’는 주인공 마코토가 과학실에 혼자 들어가서 인기척을 따라 비품실까지 가는 장면에서 흘러나오죠. 마코토가 넘어지면서 구슬 모양의 타임머신을 누르게 되고 시간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조용한 아리아가 변주곡으로 넘어갑니다.
 
잠들 수 없었던 괴로웠던 시간도 지나고 나면 돌아오지 않죠. ‘지금’에 존재한다는 것, 당연하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지나갔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 번뇌로의 시간 여행보다 소중한 ‘지금’에 머물러야겠죠. 잠이 들지 않는 밤이 있다면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아닌 지금을 바라보는 내면 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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