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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호우총 무덤 주인은 광개토왕의 외손자다
복호와 고구려 마련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보준(宝俊)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24 09:34:11
 
▲ 정재수 역사 작가
호우총(140호분)은 8·15 광복 직후인 1946년 우리 손으로 발굴 조사한 신라 고분이다. 봉분은 이미 파괴돼 소실됐으나 무덤 크기는 대략 지름 16m, 높이 4m로 추정된다. 
 
호우총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양식의 소형급 홑무덤이다. 호우총이란 명칭은 덧널 안에서 합(盒)이라 불리는 뚜껑 달린 청동호우(靑銅壺杅)가 출토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청동호우로 본 무덤 주인의 단서
 
그런데 청동호우 밑바닥에 16자의 명문이 양각으로 새겨 있다.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다. 을묘년은 415년으로 412년 사망한 고구려 광개토왕의 시신을 산릉(집안 태왕릉)에 안장하며 장사 지낸 해이다. 청동호우는 광개토왕의 장례 제사에 사용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주물로 찍어 낸 제기(祭器)이다.
 
청동호우 명문은 무덤 주인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 을묘년(415년)을 전후해 고구려에 체류한 신라인은 복호(보해)뿐이다. 복호는 402년 고구려에 볼모로 갔다가 418년 신라로 돌아온다. 따라서 복호가 귀국하면서 광개토왕의 제사용 청동호우를 신라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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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호우총의 조성 시기는 마립간시대 후기인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에 해당하여 4세기 중반(441년)에 사망한 복호와는 상당한 시간 격차가 난다. 그래서 복호가 아닌 복호의 후손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 1946년 호우총 발굴 장면(사진 위). 청동호우와 명문(사진 아래). 명문 상단의 ‘#’의 해시(hash)기호 또는 ‘井(우물 정)’자를 닮은 ‘열린 마름모꼴 격자살’은 ‘천하의 으뜸 국가’인 ‘국강(國罡)’을 도식화한 문양이다. 광개토왕은 천하를 지배하고 다스린 국강(고구려)의 태왕이다.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필자 제공]
  
복호(보해)의 아들 보준의 무덤
 
복호의 후손으로 고구려와 관계된 인물은 딱 한 사람이다. 복호가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을 때 혼인한 고구려 광개토왕의 딸 마련(馬連)공주가 낳은 보준(宝俊)이다.
 
‘고구려사략’ <영락대제기>에 그 사실이 기록돼 있다. ‘20년(410년) 경술 정월, 내밀(내물왕)의 아들 보해(복호)가 래조해 마련(馬連)을 처로 주었다. 21년(411년) 신해 5월, 보금(실성왕)이 보해를 보내 달라 청해 마련을 딸려 보냈다. 마련이 보준을 낳았다. 22년(412년) 임자 7월, 마련이 글을 올려 돌아오길 청하자 보해와 함께 들어오게 하여 천성(天星)의 옛 궁에서 살게 했다(원문생략).’
 
서기 410년 복호와 혼인한 마련공주는 411년 복호의 아들 보준을 낳는다. 보준은 광개토왕의 외손자이다. 그렇다면 보준은 어떻게 해서 신라로 오게 되었을까?
 
다음은 ‘고구려사략’ <장수대제기>을 살펴보자. ‘5년(418년) 무오 정월, 눌지가 보해를 보내 달라 청해 허락했다. 마련이 보해와 2녀 1남(보준)을 낳고도 따라가지 않자 상이 부득이하게 명해 각언(角彦)의 처가 되게 했다. 10월, 눌지가 보해를 보내 조공하며 고하길 “미해(미시흔) 역시 왜에서 돌아와 신라에 대풍이 들었다” 했다.(五年 戊午 正月 訥祇請還宝海許之 馬連與宝海生二女一子而不從去 上不得已命爲角彦妻 … 十月 訥祇遣宝海入貢 言美海亦自倭歸 羅亦大豊 云).’
 
 
 
▲ 복호 가계도. [사진=필자 제공]
 
 
복호는 418년 5월, 고구려의 볼모 생활을 청산하고 신라로 귀국했다. 이때 보준을 낳은 마련공주는 복호와의 동행을 거부하고 고구려에 남아 각언(角彦)과 재혼했다. 그해 10월, 복호는 다시 조공사 자격으로 고구려를 방문했다. 
 
아마도 마련공주를 신라로 데려가기 위한 방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련공주는 이미 재혼한 상태라 대신 아들 보준을 데리고 귀국했다. 이때 마련공주는 청동호우를 보준에게 건네준다. 청동호우는 광개토왕의 외손자임을 잊지 말라는 일종의 증표이다.
 
‘신라사초’는 보준의 기록 자체를 아예 남기지 않고 있다. 보준이 신라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광개토왕의 외손자로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보준의 사망 시기는 호우총 조성 시기와 비교하면 대략 480년 전후한 70세 정도로 추정된다. 특히 호우총에서 출토된 허리띠(銙帶)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라 왕족이 주로 사용한 금제품이 아닌 한 단계 격이 낮은 은제품이기 때문이다.
 
 
▲ 호우총 위치. [사진=필자 제공]
 
   
복호는 신라왕실 혈통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내물왕의 적자(嫡子)인 복호와 성명(聖明)공주가 낳은 습보(習寶)가 지증왕(지도로)의 아버지이다. 신라왕통은 지증왕의 즉위로 눌지계에서 복호계로 바뀐다. 더구나 복호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딸 마련공주를 통해 보준을, 왜(야마토) 인덕왕의 딸 보미공주를 통해 장이(章伊)를 각각 얻었다. 두 사람은 비록 복호의 서자이지만 고구려, 왜 왕실과의 인연으로 경주 대릉원의 호우총(보준)과 천마총(장이)에 각각 묻히는 영광을 얻는다.
 
호우총은 복호의 서자이자 광개토왕의 외손자인 보준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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