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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지구촌 IN & OUT
21세기의 규칙... ‘강력한 팬층’은 혁신의 원동력
세상의 규칙은 어떻게 형성되고 변해 왔는가
국가와 의회가 규칙을 주도하던 시대는 지나
극성팬이 격렬히 만들어 가는 세상이 도래
이혁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21 09:37:03
 
▲ 이혁재 언론인·칼럼니스트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규칙(rule)’은 생겨나고 변화하고 사라져 갔다. 규칙을 무시하는 우리는 안 그렇지만, 세계는 규칙 덕분에 많은 참사를 모면했고 규칙 덕분에 행복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니 규칙을 안 지켜 한없이 혼란한 우리 사회도 규칙의 역사를 알면 조금은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규칙은 ‘놀이’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인간의 본능인 놀이를, 우김이나 싸움 없이 즐기게 만들려고 탄생한 것이다. 조금은 허무한 시작이다. 하지만 곧 스포츠의 탄생으로 연결되는 등 규칙의 끝은 창대해진다.
 
규칙은 국가가 생기면서 거창해진다. 인간의 감정을 억누르는 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이 대표적이다. 이때부터 규칙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오른다. 그러다가 상업사회·화폐경제 시대가 찾아오면서 ‘사람들의 욕구를 원만히 해결해 주는 것’이 규칙의 존재 이유가 된다. 이때부터 신성하기만 했던 규칙은 대전환점을 맞는다. 사람들의 욕구와 신용에 관한 교통정리가 필요해지면서 사업자금을 모으는 방법을 규정한 규칙이 탄생했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주식회사다.
 
규칙의 역사에 기념비적 혁신을 가져다준 것이 19세기에 탄생한 자동차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등장한 자동차에 대해 어떤 규칙을 갖고 대응했느냐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영국에서는 증기 자동차와 마차 사업자 간 갈등이 벌어졌고, 마차 사업자와 손잡은 의회가 1865년 악명높은 ‘붉은 깃발법(적기조례)’을 제정한다. 
 
이 규칙에 따라 한 대의 자동차에는 반드시 운전사·기관원·기수 등 3명이 있어야 했고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6.4km, 시가지에서는 3.2km로 제한됐다. 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 55m 앞에서 차를 선도하도록 했다. 붉은 깃발을 앞세우게 함으로써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게 만든 것이다. 30년간 시행된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규칙이자 시대착오적인 깃발 규칙 때문에 영국은 가장 먼저 자동차 산업을 시작했음에도 프랑스·독일·미국에 뒤처지고 만다.
 
반면 프랑스는 신묘한 수법으로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켰다. 규칙을 만드는 대신 ‘자동차 경주’라는 스포츠를 보급하는 방식을 택한다. 자동차를 오락거리로 만듦으로써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얻어 내는, 전혀 다른 형태의 규칙 제정 수법을 동원한 것이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미래의 도시에서는 도로가 포장돼 있어야 할 것이며, 그 포장은 신소재 아스팔트를 사용해야 한다”며 새로운 플랫폼을 창조하기까지 한다.
 
이 무렵부터 규칙에 대한 정의도 자리잡힌다. 규칙에는 △돈벌이가 목적인 ‘신용규칙’ △산업부흥을 위한 ‘창조규칙’ △신문물 보급을 위한 ‘보급규칙’ △기업을 육성하는 ‘육성규칙’ 등 4대 원칙이 있다는 이론이 정립되는 것이다. 영국은 신용·창조 규칙 제정에는 뛰어났으나 마차업자의 압력에 굴복해 나쁜 규칙을 만든 반면, 프랑스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프랑스식 규칙제정’ 방식을 창조해낸다.
 
19세기의 이 창조물은, 2세기가 흐른 21세기에도 정치·경제·사회·문화·체육 등 모든 면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도 이전과 다른 어떤 혁신적인 흐름이나 규칙을 만들려면 프랑스가 했던 것처럼 한다. 즉 거대한 지지세력이나 강력한 팬덤을 먼저 구축하고, 이들을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아 강력히 밀어붙이는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19세기의 프랑스식 규칙제정 수법이 21세기에 발현된 사례는 적지 않다. 최근에 대표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 드론이다. 드론은 초창기에는 안전 면이나 사생활 면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드론 팬층이 형성되자 사회적으로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고, 팬들의 지원을 비탕으로 드론의 ‘대선배’ 격인 항공법까지 손보려는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절대 신자’를 확보한 아이폰도 마찬가지고, 위험하다는 전동 킥보드도 이제는 도로교통 규칙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 큰 관심을 일으켜 강력한 팬층을 형성하는 것이 21세기에는 모든 문제를 풀어 주는 ‘요술방망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세계적 흐름에서 벗어나 ‘한국적으로’ 규칙을 만들고 있다. 전교조는 교육을 비교육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학생들은 진단평가라 불리는 ‘시험’도 못 본다. 택시업계는 여의도를 압박해 영국 의회와 거의 똑같은 깃발규칙을 만들었고,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는 망했다. 목소리 큰 소수가 한국적으로 규칙을 제정하자 택시 대란이 벌어졌고, 국민은 불편해졌고, 타다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택시 운수 사업은 택시 기사조차 외면하는 가장 낙후된 황무지가 됐다.
 
한국의 규칙 제정 수법은 한마디로 ‘X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아는’ 구석기 방식이다. 다만 ‘맹렬 팬’이 갖는 위력을 알게 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개딸들은 새로운 규칙의 효능과 노하우를 왜곡되게 이용하기 시작했다.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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