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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내을신궁에 대한 오해
김씨왕조 시조 내물왕의 제사 성소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1-17 10:44:07
 
▲ 정재수 역사 작가
   
‘내을신궁(奈乙神宮)’은 신라 소지왕 때 설치한 시조에 대한 제사 성소이다. ‘삼국사기’ 소지왕 기록이다. ‘9년(서기 487년) 봄 2월, 내을에 신궁을 설치했다. 내을은 시조가 처음 태어난 곳이다(九年 春二月 置神宮於奈乙 奈乙 始祖初生之處也).’
 
다만 ‘삼국사기’ <잡지> 제사편에는 지증왕이 시조 탄강지 내을에 신궁을 창립(第二十二代智證王 於始祖誕降之地奈乙 創立神宮)한 것으로 적고 있어 ‘삼국사기’조차 설치시기에 대해서는 다소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라사초’는 ‘삼국사기’ 소지왕 기록과 마찬가지로 설치시기를 소지왕 9년(487년)으로 적고 있다(九年 火兎 丁卯 二月 奈乙神宮成 行大祭).
 
신궁의 주신
 
신궁은 주신은 시조이다. 여기서의 시조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다. 첫번째는 박혁거세이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인 나정(蘿井)이 내을(奈乙)과 음이 유사한 점, 신라시대에는 부계(父系) 혈족집단이 관념이 강하지 않아 김씨 왕들도 이성(異姓)인 박혁거세를 시조로 모실 수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든다.
 
두번째는 박혁거세를 제사하는 시조묘(始祖廟)가 있는데 또 다시 신궁을 설치하는 것은 중복의 성격이 강하며 신궁 설치시기가 김씨에 의해 왕위계승이 이루어진 점을 근거로 김씨 시조로 보기도 한다. 다만 김씨 시조 중에서도 누구인가 대해서는 다시 김알지설, 성한설, 미추왕설, 내물왕설 등으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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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시조의 성격을 인간으로서의 역사적 시조가 아니라 역사를 초월한 신화적 존재 내지 신적 존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에 따라 신궁의 주신을 시조신이 아닌 ‘천지신(天地神)’ 또는 ‘천신(天神)’으로 보기도 한다.
 
내을신궁의 주신은 시조에 대해 다양한 견해와 해석이 있음에도 김씨왕조 마립간계열의 시조 내물왕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며 또한 유력하다. 내을(奈乙)은 ‘내물(奈勿)’을 가리킨다. ‘화랑세기’ <필사본>의 5세 풍월주 사다함 편에는 ‘내물신궁’으로 표기한 기록이 명확히 나온다(訥祗王乃命心凰爲奈勿神宮主).
 
신궁의 설치 장소
 
▲ 황남동 건물군 위치. [사진=필자 제공]
     
신궁의 설치 장소는 내물왕이 태어난 곳인 시조의 탄강지이다. ‘신라사초’ <내물대성신제기> 기록에 따르면 내물왕의 아버지 말구(末仇)각간과 어머니 휴례(休禮)궁주가 화림(花林)에서 만나 합환해 내물왕을 낳았다. 화림은 계림(鷄林)이다. 계림은 김씨왕조 원조인 김알지(흉노계) 신화의 발원지로, 미추왕(오환계)이 사망해 묻힌 대릉(119호분 쌍무덤)이 소재한 곳이고, 또한 내물왕(선비계)이 태어난 곳이다. 계림(화림)은 명실상부한 김씨왕조의 가장 신성한 장소다.
 
경주 월성 북쪽의 계림과 첨성대 사이 평지에는 대형건물지 2곳이 있다. 첨성대 남서쪽의 건물군과 남동쪽의 건물군이다. 이 중 남동쪽의 건물군은 황남동 건물군(황남동 123-2번지)이라 부른다. 모두 15개의 건물로 구성된 황남동 건물군은 북편 중앙에 중심건물을 배치하고 이어 동서 양쪽에 각각 3동씩 정면 10칸, 측면 2칸의 건물을 남북으로 길게 배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히 북편 중앙의 중심건물과 광장을 두고 맞닿은 남편에는 담장형 석렬을 쌓고 그 아래에 땅속의 나쁜 기운을 없애는 지진구(地鎭具) 5개를 일정한 간격으로 묻었다. 황남동 건물군은 신라 왕실이 특수목적으로 만든 매우 특별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황남동 건물군은 내을신궁이다. 특히 북편 중앙의 중심건물은 내물왕의 신주 또는 신상을 모셔놓은 신궁을 대표하는 중추 건물이며, 좌우편 남북으로 길다랗게 배치된 건물들은 모두 신궁의 부속건물로 추정된다.
 
▲ 황남동 건물군 배치 및 지진구. [사진=필자 제공]
     
신궁은 신국의 성소
 
우리는 으레 신궁(神宮)하면 일본을 먼저 떠올린다. 대표적인 일본의 신궁은 6세기 중반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 왕가의 시조 여성인 천조대신(天照大神·아마테라스오오카미)을 제사하는 이세(伊勢·이소노카미)신궁이다. 시기적으로 내을신궁 설치시기가 이세신궁보다 반세기 정도 빠르다. 이는 신라 신궁이 어떤 형태로든지 일본 신궁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신라는 왜 내물왕의 제사 성소를 ‘신궁’이라 표현했을까? ‘신라사초’는 시종일관 신라를 ‘신국(神國)’으로 기록한다. 신라는 남왕과 여왕이 공동통치하는 이성(二聖) 지배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신(神)의 나라’이다. 특히 여왕을 신후(神后)라 칭한 기록이 ‘신라사초’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어 신궁(神宮)의 표현 역시 같은 연장선으로 이해된다.
 
내을신궁의 주신은 마립간계열의 시조 내물왕이며 신궁이 설치된 장소는 경주 계림의 황남동 건물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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