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어마어마한 참사 중 하나가 2001년의 9·11 테러다. 30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6000명 이상이 부상했다. 당시 GE(제너럴 일렉트릭)가 보여 줬던 참사 수습 사례는 지금도 언급되고 있고, 책으로도 나왔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 때 왜 그렇게 못했냐”고, 혹은 “그렇게 해야 했다”고 비판하려고 GE 일화를 소개하는 건 아니다. 알아 두면 훗날 도움도 될 것 같아 소개할 뿐이다.
9·11테러가 발생한 2001년, GE의 CEO가 된 사람이 제프 이멜트다. 그는 테러 당일인 9월11일 화요일 오전 5시,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하며 TV를 켰다. 운동기구 앞에 부착된 모니터의 모든 채널은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화재 장면을 방영하고 있었다.
얼마 후부터 테러관련 정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비극의 모든 상황에 GE가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GE 엔진이 장착된 비행기가, GE의 보험에 가입한 세계무역센터 일대 건물을 파괴했고, 비극을 전하는 NBC는 GE 소유의 텔레비전 방송국이며, 세계무역센터 최상층에서 일하던 NBC 기술자와 추락한 비행기에 타고 있던 항공사 승무원은 모두 GE 직원이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 GE의 리더 제프 이멜트는 정보 파악에 죽어라 힘썼다. 당시 GE 경영진은 시애틀·보스턴·뉴욕·팜비치·로스앤젤레스에 흩어져 있었고 이들과 6시간마다 전화 회의를 하며 지혜를 짜냈다. 테러 때문에 이멜트가 CEO로 취임한 지 일주일 만에 회사의 시가총액이 90조 원 날라갔다는 점도 전화회의를 통해 밝혀졌다. 이멜트가 GE의 지도자로서 취한 비상조치 중 중요한 것을 순서와 무관하게 알아보자.
핵심 조언자 확보
이멜트 CEO는 GE 이사회의 멤버였던 마이컬슨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묻는다. 이멜트는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줄 참모가 절실히 필요했고 그녀를 선택한 것이었다. 마이컬슨은 남성 일색이던 콜럼비아 대학 로스쿨을 다녔고 메이시 백화점에서 노조 지도자들을 상대로 협상한 ‘거친 폭풍우’를 헤쳐 온 사람이다. 마이컬슨은 단호하게 조언했다. “당신의 결정은 어느 하나 잘못된 게 없다.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
광고 중단
GE는 계열 방송사 NBC에 광고 없이 방송하라고 지시한다. 테러로 나라가 얼이 빠진 상황에서 광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무광고 방송이 초래한 손해는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 GE는 대신 국민에게 용기를 주는 전면광고를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했다. 진지한 표정의 자유의 여신상이 한쪽 팔소매를 걷고 받침대에서 내려오는 사진 아래에 “이제 소매를 걷어붙이고 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절대 잊지 맙시다”는 문구를 붙였다.
가족 챙기기
이멜트 CEO는 회고록 ‘GE 리더십’에서 고백했다. “부인과 딸의 안전을 가장 먼저 확인했다. 이어 사망한 GE 직원들의 가족에게 연락했고, 죽음을 면한 사람들에게 격려의 이메일을 썼다. GE의 모든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객 보호
GE가 시급히 해야 했던 일 중 하나는 고객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고객은 항공기 엔진을 구입하고 비행기를 임대하는 항공사들. 주식 폭락으로 GE의 손실액은 이미 1000조 원을 넘고 있었지만 그해 12월1일까지 수백조 원을 항공사 고객들에게 빌려줬다. 이멜트는 “인간이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도와준 사람을 결코 잊지 않기 때문”이라고 회고록에 적었다.
이멜트 CEO는 회고록 말미에서 “최고의 지도자는 결코 당황하지 않으며 국민의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 등등 이태원 참사 당시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했던 ‘꼭 필요하지는 않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조언을 했다. 이 글에서 이멜트를 소개한 것은 그가 이러한 공자 말씀을 했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와 우리 정치인들에게 도움될 만한 ‘참사 속의 실질적인 지혜’를 언급한 것이 소름 끼쳐서다. 그는 이렇게 회고록에 남겼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다음 날 나는 NBC 방송의 2인자 앤디 락과 통화했다. 우리 둘이 내린 결론은 뉴욕의 소방관을 비롯한 구조 관계자 가족을 위해 1000만 달러를 기부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뉴욕 로돌프 줄리아니 시장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벨이 두 번 울린 뒤 비서 대신 줄리아니 본인이 직접 전화를 받았다. 용건을 말했다.
“익명으로 기부하고 싶네.”
줄리아니 시장이 호통쳤다.
“자네, 바보인가!”
그러면서 이런 참사 때는 ‘도덕주의’ 좀 버리고 GE라는 기업을 적극 이용해 먹어야 한다고 고함쳤다. 그로부터 2시간 만에 줄리아니는 기금을 설립해 우리 돈을 받았다. 떠벌이 줄리아니는 기자회견도 열어 떠들었다.
“기자 여러분, 감사하게도 GE가 무려 1000만 달러를 기부했네요.”
선수를 빼앗긴 다른 기업들이 줄 지어 달려왔고, 기부금은 단숨에 수억 달러로 팽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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