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감명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겠지만 많은 이가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들을 보며 마치 먼 나라로 여행 온 인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영국 남서부의 최극단 씰리 군도 트레스코 섬에 다다르며 느낀 첫인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니, 영국에 야자나무가 있다니!’
영국 본토의 남서부 땅끝은 프랑스 남부의 피한지 리비에라(Riviera)를 연상해 코니쉬 리비에라(Cornish Riviera)라 부른다고 한다. 이곳에는 이를 증명하듯 영국 본토에서 볼 수 없는 야자수들이 커다란 잎사귀를 흔들어 방문객을 환영한다. 여기서 좀 떨어진 영국 영토의 남서부 최극단 씰리 군도 중 하나인 프레스코를 가려면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스카이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스카이버스는 기장 한 사람과 탑승객 8명을 정원으로 하는 앙증맞게 생긴 작은 비행기다.
비행기 탑승객 정원이 고작 8명이라 해서 비행기 내부가 무척 협소하리라고 짐작은 했었으나 막상 탑승 수속절차를 밟기 시작하자 엄중해지는 현실에 긴장이 고조됐다. 우선 챙겨간 겉옷을 포함해 가져간 배낭 무게를 재는 것까지는 특별히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내원이, ‘저울에 올라가세요!’라고 명령하는 소리를 들으니 깜짝 놀라 귀를 의심하며 우물쭈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은 만약 몸무게 재기를 거절하면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안전비행을 위해 승객의 무게에 따라 좌석 배치를 해 비행기의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서란다.
엄중한 탑승절차를 마치고 호명하는 대로 비행기에 오르니 안내요원이 안전띠를 좌석에 꼭 조여주고는 ‘스카이버스 여행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며 비행기 문을 닫는다. 맨 뒷좌석에 배정받아 앉았는데도 기장 앞에 있는 창문을 통해 전망을 눈앞에 훤히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옆과 앞 승객들의 숨소리가 들려와 불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행기가 일단 이륙하자 바퀴 아래로 보이는 시퍼런 바다 풍경과 마치 가랑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 진동하는 비행기의 전율에 압도되어 20분간 딴생각을 할 수 없었다.
스카이버스는 세인트 메리(St. Mary’s)에 착륙했고 트레스코로 향하는 나룻배를 타러 항구로 가니 20명이 넘는 여행객이 이미 승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룻배가 출발하자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던 날씨가 변해 갑자기 이슬비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나룻배는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있었고 느림보 거북이처럼 운항하는데 바람은 한점 없어 비옷을 준비하지 않았던 우리는 20분 동안 쏟아지는 이슬비를 고스란히 맞아야만 했다.
이슬비는 바다에만 내렸던 것일까? 트레스코에 도착하자 날씨는 거짓말같이 개었다. 선창을 벗어나자 자동차나 건물은 보이지 않았고 섬 전체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정원인 듯했다. 아비 정원(Abbey Gardens)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들어서자 천년을 살아왔을 고목들이 하늘을 가리고 울타리를 치며 초행자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트레스코는 갖가지 새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희귀한 열대 식물과 꽃들을 정원에 수집해 놓고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같이 영국의 트레스코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것을 한가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풍이 지나간 후 트레스코 섬의 해변에는 불행하게도 난파를 당한 선박의 조각들이 밀려온다고 한다. 따라서 이것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 있어 찾았는데 대포를 비롯해 닻 등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놀랍게도 눈에 번쩍 띤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색깔도 선명하게 ‘코리아(Corea)’라고 쓰인 간판이었다. 영국의 남서부 끝에 있는 섬 트레스코의 박물관에서 한국의 옛날식 영어 이름 표기판을 발견하리라곤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던 여행이었다.
Get on the scales! We must know your weight to allocate your seat.
(저울에 올라가십시오! 당신의 좌석을 정하려면 몸무게를 알아야만 합니다.)
I can’t believe there are palm trees in England!
(영국에 야자수가 있다니 믿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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